美 PGA 재패 ‘양용은 신드롬’의 모든 것
‘타이거 잡은 양’의 비밀 전격 공개
2009-08-25 이수영 기자
대한민국 ‘바람의 아들’이 황제 호랑이를 격침시켰다. 미국 남자프로골프투어 역사상 아시아계 선수로는 최초로 우승컵을 품에 안은 프로골퍼 양용은(37·테일러메이드)을 둘러싼 돌풍이 미국과 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휩쓸고 있다. 지난 17일 PGA챔피언십에서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를 누른 양용은의 깜짝 활약에 세계 스포츠 매체의 시선이 집중된 것. 특히 우즈의 ‘역전불허’ 아성을 보기 좋게 무너뜨린 양용은의 활약은 김연아, 박태환을 잇는 대한민국 스포츠영웅의 탄생을 담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특히 남자프로골프투어 메이저 대회를 재패한 첫 동양인이라는 점에서 양용은의 주가는 치솟고 있다.
시상식이 끝난 뒤에도 세계 골프계는 여전히 ‘양용은 쇼크’에 허덕이고 있다. AP와 AFP 등 주요 외신들은 시상식이 끝난 지 이틀 뒤인 지난 18일(한국시간)에도 양용은 관련 기사를 쏟아내며 그의 돌풍을 집중조명 했다.
AP통신은 보도에서 “양용은의 우승이 ‘글로벌 골프’의 면모를 새롭게 했다” “양용은의 우승으로 아시아 골프가 영감을 받았다”는 등의 꼭지 기사를 통해 이번 대회 결과가 세계 골프계에 미칠 영향을 다각도로 짚었다. 미국인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골프가 양용은의 우승으로 인해 세계적인 스포츠로 발돋움했다는 내용이다.
AP는 또 제주발 기사를 통해 ‘PGA 챔피언은 19세에 골프를 시작한 농부의 아들’이라는 기사를 통해 양용은의 부모님과 형제들 증언을 바탕으로 양용은의 골프 인생을 조명했다.
AFP통신 보도에는 양용은이 ‘타이거의 아킬레스건’으로 표현됐다. 이 통신은 ‘양용은은 타이거의 아킬레스건’이라는 기사로 두 번이나 우즈를 꺾은 양용은의 과거 경력을 소개했고 로이터통신 역시 ‘양용은의 우승이 골프의 세계적인 저변을 더 두텁게 했다’고 보도했다.
‘태극낭자’ 그늘에 가려진 속사정
해외 웹사이트에서도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글로벌 포탈사이트 야후가 골프팬을 대상으로 ‘올해 4대 메이저 가운데 최고 명승부’를 꼽는 설문 조사를 벌이자 양용은이 우즈를 상대로 역전승을 거둔 PGA챔피언십이 현재 1위에 올라 있다.
양용은의 PGA 깜짝 우승은 골프계에서 그야말로 이변이자 기적으로 통한다. 특히 세계골프 무대에 진출한 아시아인 가운데 유독 남자선수들의 활약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게 사실. LPGA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태극낭자’들이 잇단 낭보를 알려올 때 상대적으로 남자선수들의 어깨는 처질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뭘까.
2년 전 ‘탱크’ 최경주는 PGA투어 메모리얼토너먼트와 AT&T내셔널을 휩쓸며 전성기를 맞았다. 메모리얼토너먼트는 잭 니클로스가 주최하는 대회로 톱스타들이 총출동하고 AT&T내셔널은 타이거 우즈가 주최한 신생대회였다.
외신들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최경주는 “남자와 여자는 동·서양 간 체격조건이 다르다. 또 한국남자는 군대를 다녀와야 한다. 공백기가 생긴다”고 말해 남녀 선수 간 성적 차이가 벌어지는 이유를 설명했다. 여자는 동·서양 체격이나 근력차이가 크지 않지만 남자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는 얘기다.
그로부터 2년 만에 양용은이 PGA챔피언십에서 미국 투어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하고 충격적인 메이저 우승을 차지했다. 아시아 남자 최초 메이저 석권으로 ‘아시아인은 절대 메이저에서 우승할 수 없다’는 미국·유럽인의 인식이 깨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물론 남자프로골프 무대에서 아시아인이 가지는 불리함은 여전하다. 그러나 양용은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선구자를 자처했다. 미국남자프로골프 무대가 더 이상 ‘아시아인이 넘을 수 없는 산’이라는 인식을 깨부쉈기 때문이다.
‘기부천사’ 양용은, 챔피언은 달랐다
세계프로골프 역사를 다시 쓴 양용은을 진정 ‘챔피언’으로 각인시킨 것은 그의 남다른 선행도 한 몫 했다. 무명 시절부터 어려운 이웃과 골프 꿈나무를 위해 꾸준히 기부와 선행을 이어온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며 주위를 훈훈하게 하고 있는 것.
양용은은 2005년 1월 서울의 한 골프클럽에서 골프클리닉을 열고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성금을 모아 동남아시아 쓰나미 피해자를 도운 것을 시작으로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해 받은 부상과 상품 모두를 쓰나미 피해자를 위한 성금으로 내놓았다.
또 2006년 홍콩에서 열렸던 HSBC챔피언스에서 우승한 이후 아버지를 통해 자신의 모교인 제주고등학교(옛 제주관광산업고)에 학교운동부 발전기금으로 써달라며 금일봉을 전했고 이듬해인 2007년 4월에는 직접 모교를 찾아가 금일봉과 함께 골프채 한 세트, 골프모자 등을 기증했다. 넉넉하지 못한 살림의 무명 선수였지만 유난히 베풀기에 인색하지 않았던 것.
제주도골프협회 김영찬 전무는 “양 선수가 유명해지기 전부터 시즌이 끝나면 고향에 내려와 모교는 물론 오라골프장 등 자신이 연습했던 곳을 찾아가 자주 후배들을 격려했고 도내에서 학생들을 위한 골프대회가 열릴 때마다 적잖은 장학금을 내놓아 자리를 빛내줬다”고 전했다.
양용은의 기부릴레이는 올해도 이어졌다. 지난 3월 PGA투어 혼다클래식에서 우승한 뒤 최경주 재단에 1억원을 쾌척, 모교와 무의탁 노인 요양 시설인 ‘푸른마을 영암 자비암’, 장애아동시설 사회복지법인 혜정원 ‘아가의 집’ 등에 성금을 전달하는 등 고향의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 앞장서왔다.
아가의 집 관계자는 “2006년 11월에도 당시 외국에 체류하던 양 선수를 대신해 가족들이 시설을 찾아오셨다. 운영비로 쓰라며 선뜻 500만원을 맡기셨다”며 양 선수의 선행을 추억했다.
최경주 벙커샷 vs 양용은 드라이버샷
‘골프황제’를 누른 양용은의 필살기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300야드 이상의 비거리를 자랑하는 막강한 드라이버샷은 양용은의 최대무기로 꼽는다. 벙커샷에 탁월한 감각을 뽐내는 최경주와 더불어 그의 퍼팅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위력적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양용은은 하체가 상당히 안정돼 있는데다 체구가 당당해 엄청난 폭발력을 퍼팅에 담아낼 수 있다. 여기에 지난 몇 년간 장타와 함께 볼을 제어하는 특별 훈련도 병행했다.
2007년 처음 미국 무대에 진출한 뒤 코스 적응에 실패해 1년 내내 부진의 늪을 헤맨 양용은은 무조건 멀리 날리기보다 원하는 곳에 공을 떨어트리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최근 PGA 투어 주최 측이 코스 정비에 막대한 투자를 벌이고 있지만 좁은 페어웨이와 깊은 러프는 반드시 극복해야할 문제였던 것.
그 결과 올 시즌 양용은의 평균 드라이버샷 비거리는 292.1야드로 투어 평균인 288야드를 넘어섰다. 페어웨이 적중률 역시 60.64%(60위권)로 좋은 편이다. PGA챔피언십이 벌어진 미국 미네소타주 채스카의 헤이즐틴 내셔널 골프장(파72ㆍ7674야드)은 역대 메이저대회 최장코스였다. 양용은은 320야드가 넘는 폭발적인 장타를 뽑아내며 파5홀에서 투온에 성공하곤 했다.
길고 정확한 퍼팅과 더불어 양용은의 최대 강점은 능란한 바람 샷의 달인이다. 헤이즐틴 내셔널골프장은 겔러리들 사이에서 ‘바람의 계곡’이라 불린다. 바람은 모든 골퍼들이 가장 싫어하는 변수다.
그러나 제주 출신인 양용은은 유독 바람에 강했다. 맞바람이 심하게 불 때에도 드라이버샷을 3m 높이로 띄워 캐리로만 200m를 똑바로 보낼 수 있을 정도다. 맞바람에 유용한 넉다운샷도 잘 때린다.
골퍼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바람에 대한 스트레스가 덜하다는 것은 양용은에게 있어 두 번째 필살기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