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조각 난 프로야구’ 선수노조 추진 내홍
“연봉 수억원 개인 사업자가 노조라니?!”
2009-05-06 이수영 기자
프로야구 선수들이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팔뚝질을 하는 쇼킹한 장면이 조만간 언론을 탈지도 모를 상황이다. WBC의 감동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국내 프로야구계가 두 조각날 위기에 빠졌다. 지난달 28일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회장 손민한·이하 선수협회)가 “단체행동권과 협상권을 보장 받기 위해 노조를 설립할 때가 왔다”는 뜻을 공식적으로 천명했다. 이에 각 구단과 한국야구위원회(KBO)는 “개인사업자가 노조를 만든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지난 2000년 ‘선수협회 파동’으로 한바탕 내홍을 겪었던 프로야구가 9년 만에 또 다시 분규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민주노총이 프로야구선수 노조 창립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사태는 이념 논쟁으로까지 번질 태세다. 이미 만신창이가 된 중계권 협상문제로 골머리를 썩어 온 프로야구가 ‘노사 갈등’이라는 카운터펀치까지 맞을 경우 500만 관중 돌파로 탄력을 받던 야구 열풍에 찬물을 끼얹는 꼴이 될 것이라는 비관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
선수협회의 노조설립 추진에 대한 팬들의 반응은 반반이다. ‘손민한(선수협회 회장)은 데모할 생각 말고 팀부터 살려라’는 비난성 발언부터 시작해 ‘열악한 처우에 고생하는 대다수 선수들을 위해서도 노조는 필요하다’며 지지의사를 밝힌 팬들도 상당수다.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는 팬들 사이에서는 선수들의 권익 향상이라는 기본 전제에는 찬성하지만 시즌 중 갑자기 노조 이야기를 꺼낸 선수협회 지도부의 행동은 다소 성급했다는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선수협회가 밝힌 노조 추진의 배경은 지난해부터 줄기차게 요구한 KBO와 8개 구단에 선수 권익을 위한 11개 사항이 철저히 묵살 당했다는 것이다. 선수협회의 주요 요구사항은 ▲대리인 제도 도입 ▲비 활동기간 훈련금지 ▲일방적 트레이드 반대 ▲군 복무 선수 보류수당 등으로 선수들의 복지와 권익 향상에 근간을 두고 있다.
노동부 “80년대 유권해석 따르면 선수협이 불리”
선수노조를 둘러싼 가장 큰 쟁점은 ‘자영업자’로 여겨지던 프로선수들을 노조결성 자격을 갖춘 근로자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이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에서 정의된 근로자가 아니라면 노조를 설립하거나 합법적인 노조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KBO와 각 구단 관계자들은 이 같은 이유를 들어 선수협회의 요구가 터무니없는 발상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이상일 KBO 운영본부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선수는 근로자가 아닌 개인 사업자다. 개인사업자는 노조를 설립할 수 없다”는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이는 2000년 선수협회가 설립될 당시 KBO측이 법률 자문을 구한 결과다.
그러나 선수협회는 “선수들이 개인사업자가 된 것은 구단들이 4대 보험과 퇴직금 문제 등 복잡한 사안을 피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라며 “2000년 당시 노동부에서는 노조설립에 문제가 없다는 의견을 냈다.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고 노조설립에 자신감을 보였다.
그동안 프로야구 선수들이 노조를 결성할 자격이 있는 근로자인지에 대해 노동부의 직접적인 유권해석이 내려진 적은 없다. 하지만 1983년 10월 모 프로야구 선수단이 산업재해보험 가입 여부를 두고 근로자성을 주장하는 질의에 따른 간접적인 유권해석은 있었다.
언론에 따르면 노동부는 당시 회신문에서 “프로야구 선수는 감독과 사용종속 관계에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근로자로 볼 수 없다”는 뜻을 밝혔다.
프로선수는 구단주와 감독의 지휘아래 있지만, 이는 경기의 흥행성공을 위한 각 선수의 능력을 기술적으로 결합하기 위한 것이어서 근로기준법상 노사관계에 기초한 지휘·감독과 동일시할 수 없다는 것.
노동부는 또 선수들의 경기 출장과 관련해서도 “프로 운동경기는 대중인기에 영합함으로써 흥행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활동이라는 점에서 가치를 창출하는 생산 활동인 순수한 의미의 노동이라고 볼 수 없다”고 해석했다.
이 같은 과거 노동부의 입장은 프로선수들이 노조를 설립할 수 없고 파업과 같은 쟁의행위를 한다면 업무방해 등으로 형사 처벌되거나 구단과 계약한 내용에 따라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 하필 지금인가
선수협회의 노조전환은 프로야구계에서 상당히 민감한 사안 가운데 하나다. 지난 1989년 선수협회 결성을 이루려던 롯데 최동원과 김용철 등이 강제 트레이드라는 강경수에 막혀 뜻을 이루지 못했고 9년 전인 2000년 역시 선수협회 창설 파문으로 야구계가 한 바탕 전쟁을 치룬 바 있다.
그런데 선수협회는 왜 하필 WBC 후광이 한창 영향력을 발하는 시즌 초 이 같은 민감한 카드를 꺼내든 것일까. 2000년 선수협회가 첫 삽을 뜰때도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비시즌 때였다.
먼저 각 구단 지도자들의 반응은 예상보다 훨씬 껄끄럽다. SK 김성근 감독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선수 노조 창설은 시기상조”라는 반대 입장을 확실히 밝혔다. 김 감독은 “지금은 아니다. 선수들은 야구를 하고 유니폼을 입고 있는 지금이 행복하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며 “모든 건 순수하고 솔직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선수협회는 더 이상 시기를 미룰 수 없다며 관철 의지를 확실히 했다. 반면 KBO와 구단 관계자들은 당분간 사태를 관망하겠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선수협회의 노조 전환 선언 자체가 이를 이슈화시켜 공론을 모으는 데 목적이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당장 눈에 보이는 노조 단체를 만드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유리한 여론을 선점하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것이다.
한편 선수협회가 노조 설립을 서두르는 이유는 KBO와 구단을 상대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고자 함이다. 선수 노조가 법적으로 인정되면 KBO와 구단을 상대로 제안했던 협의가 정식 협상으로 구속력이 강해진다. 만약 양 측이 벼랑 끝 싸움을 이어갈 경우 최악의 경우 선수 파업도 가능하기 때문에 야구계에서 선수들의 권한이 상당부분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프로야구선수 노조 미국과 일본은 어떻게?
야구 종주국 미국과 일본은 이미 선수 노조가 결성돼 활동하고 있다. 물론 과정은 쉽지 않았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구단들은 선수들의 독립적인 권한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고 선수들이 실제 파업을 벌이는 일도 벌어졌다.
미국은 1885년 노조의 전신인 ‘선수동맹’을 결성했다. 그러나 구단의 방해와 선수들의 무관심으로 유명무실했던 선수동맹은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6년에야 ‘아메리칸베이스볼 길드’가 만들어지면서 실효를 거두기 시작했다. 연봉 하한제와 연금제를 관철시킨 길드는 1953년에야 비로소 노조로 정식 출범할 수 있었다.
미국 야구는 1966년 마빈 밀러가 노조대표를 맡으면서 큰 변화를 겪었다. 자유계약선수(FA)와 연봉조정신청제도가 도입된 것. 그가 재임했던 1966∼1982년에 메이저리그 평균 연봉은 1만9000달러(약 2500만 원)에서 24만 달러(약 3억2000만 원)로 12배 넘게 올랐다.
노조는 1981년 50일간 파업을 주도했고 1994년에는 샐러리캡(연봉상한제) 도입에 반대해 파업을 벌여 월드시리즈를 무산시키는 저력을 보이기도 했다.
일본은 이보다 늦은 1980년 선수회를 발족시킨 뒤 5년 뒤 노조로 재정비됐다. 1983년 롯데 구단이 소속선수를 일방적으로 해고하면서 촉발된 노조결성 움직임은 2년여에 걸친 투쟁 끝에 1985년 정식 노조를 출범하며 결실을 맺었다.
일본의 선수회는 사단법인과 노조로 이원 운영된다. 사단법인은 유소년 야구교실 등 공익사업을 하고 노조는 선수들의 처우 개선 업무를 전문적으로 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