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도박에 빠진 프로야구 선수들 ‘뒷이야기’

미모의 룸살롱 마담 ‘도박 유혹에 당했다’

2008-12-17     이수영 기자
2008년 500만 관중 몰이 대기록을 세운 프로야구계가 ‘도박 광풍’에 휘말렸다. 삼성과 한화, 롯데 등 3개 구단 현역 선수들 16명이 검찰 수사선상에 오른 가운데 이들을 도박판에 끌어들인 주인공이 미모의 ‘텐프로’ 여성 A씨라는 주장까지 불거져 나왔다.

소문이 사실이라면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프로 선수들이 룸살롱 출입도 모자라 수억원대 불법 도박까지 저질렀다는 점에서 해당 선수들은 ‘특단의 조치’를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한편 일부 언론과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도박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되는 삼성 소속 고참급 선수들의 특징과 실명 등이 유포된 것과 관련해 명예훼손 소송도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구설수에 오른 선수들이 “절대 도박을 한 사실이 없다. 법적 대응도 불사할 것”이라며 구단에 SOS를 요청한 것이다.

지난 8일 국내 한 일간지 보도에 따르면 검찰은 이달 초 서울 강남 소재의 ‘텐프로’ 룸살롱에서 일하는 30대 여성 A씨를 소환해 조사했다. A씨는 스포츠계와 연예계 스타를 통틀어 폭넓은 인맥을 자랑하는 미모의 여성으로 알려졌다.


A씨, 스포츠·연예계 마당발?

업소 중간마담인 A씨는 단골손님으로 드나드는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를 도박업자들과 연결한 혐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때문에 A씨의 업소 단골인 일부 연예인들 사이에선 검찰 수사가 두려워 몸을 사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이번 프로야구 선수 도박 연루 사건에도 A씨가 깊게 관계돼 있을 것이란 추측이 우세하다. A씨가 단골 선수들을 상대로 도박 사이트를 알려준 ‘몸통’이라는 얘기다. A씨가 이번 사건에 핵심인물이라는 것이 수사결과 드러날 경우 A씨 업소에 자주 드나드는 연예인 전체를 대상으로 한 검찰 수사도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한 연예 관계자에 따르면 A씨는 이번 혐의와 관련돼 또 한 차례 조사를 앞두고 있다. 그가 검찰에서 어떤 이야기를 털어놓느냐에 따라 사건의 후폭풍이 스포츠계를 넘어 연예계까지 휩쓸 가능성이 적지 않다.

서울중앙지검 마약조직범죄수사부(부장 김주선)는 인터넷 도박사이트를 통해 1인당 수백만~수억원씩 송금해 상습적으로 도박을 한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스 소속 선수 13명 등 현역 선수 16명의 혐의를 확보하고 소환 조사를 앞두고 있다.

가장 많은 선수가 연루된 삼성과 각각 2명, 1명씩의 선수가 적발된 한화, 롯데 등은 구단차원에서 진상조사가 한창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역시 수사기관과 각 구단에서 문제의 선수 명단을 확보하는 즉시 출전 정지 등 물리적인 징계 수위를 결정할 전망이다.


S, K, L 선수가 범인?

사건의 파장이 커질수록 문제를 일으킨 ‘고참급 선수’가 누구냐는 궁금증도 함께 커지고 있다. 한 언론사는 지난 8일 ‘삼성 소속으로 검찰 소환 명단 후보로 거론되는 선수들’이라며 몇몇 선수들의 특징과 이니셜을 나열했다.

문제는 야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해당 선수들의 실명을 예상할 수 있을 정도로 상세한 설명이었다. 기사를 접한 네티즌들은 해당 기사 댓글을 통해 몇몇 선수들의 실명을 거론했고 이는 인터넷에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이 같은 추측에 휘말린 선수들 본인은 구단을 통해 ‘억울하다’는 심정을 잇달아 전했다.

문제의 선수로 지목된 양준혁은 자신의 미니홈피 인사말에 ‘내 취미는 낚시와 바둑’이라고 밝히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다른 선수들도 구단을 통해 언론사와 네티즌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도 불사할 것이라는 강경한 입장을 드러냈다.

문제가 불거지자 해당 언론사는 기사를 삭제했지만 이미 개인 블로그와 커뮤니티 등을 통해 기사문이 상당히 퍼져나간 상태라 선수들의 억울한 호소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 수사 선상에 오른 선수들이 즐긴 인터넷 도박은 ‘바카라’ 게임이다. 유명 선수들이 이 같은 인터넷 도박에 빠진 이유는 공개된 장소에 모일 필요 없이 인터넷을 통해 혼자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폐쇄성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이들은 도박사이트에서는 전화번호와 통장번호 등 간단한 자료를 운영자 측에 알려준 뒤 개좌를 개설하고 돈을 입금해 게임을 즐겼다. 원정경기가 많은 프로야구 선수들이 시합과 훈련이 끝난 뒤 개인 노트북 등을 통해 즐기기엔 최적의 놀이문화였던 것이다.


90년대부터 뿌리 깊은 ‘도박 문화’

프로야구가 도박 문화에 물든 것은 지난 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 전지훈련을 떠난 선수들이 대표적 오락게임으로 통하는 ‘파친코’에 빠지면서부터다. 도박이나 다름없는 사행성 게임이지만 우리나라의 PC방만큼 흔하고 영업시간도 오후 10시까지로 제한돼 일본 현지에서는 오락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그러나 한국으로 들어온 파친코는 더 이상 단순한 오락거리가 아니었다. 영업제한 시간이 없을 뿐 아니라 큰 돈을 잃고 집중력을 잃는 선수들이 속출한 것.

1999년 롯데의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놓고도 뒷말이 많았다. 야구계에선 롯데의 선전이 구단의 ‘빚보증’ 덕분이었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돌았다. 사연인즉 롯데는 1990년대 중반 호주 골드코스트로 전지훈련을 떠났는데 대부분의 선수들이 가까운 카지노에 출입했던 것.

서울 모 구단에서 트레이드 돼 온 모 선수를 비롯해 그를 따라 도박장에 나섰던 선수들 대부분이 큰 돈을 잃었다. 한 선수는 도박 빚 탓에 이혼까지 하게 됐고 빚에 시달리던 선수단이 경기에 집중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구단이 나서 선수들의 빚보증을 서주기에 이르렀고 덕분에 롯데의 팀 분위기가 살아났다는 이야기다.

2006년 불거진 ‘바다이야기’ 사건에서도 야구계는 빠지지 않았다. 당시 정부의 허가로 우후죽순 생긴 ‘이종 파친코’ 바다이야기에는 선수들 뿐 아니라 코칭스태프까지 휘말렸다. 베테랑과 유망주 등 굴비처럼 엮인 도박자 명단에 당시 선동렬 삼성 감독은 ‘도박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삼성 뿐 아니라 피해를 입은 몇몇 구단은 구단 관계자들을 모아 훈련장 주위 오락장을 ‘순찰’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일부 기자들은 “혹시 가게에서 선수들을 발견하면 꼭 제보해 달라”는 구단의 협조 공문을 받기도 했다.

한편 검찰은 적발된 선수 가운데 극소수만을 소환해 형사처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도박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16명 가운데 도박 액수가 크고 죄질이 불량한 3~4명만 입건하겠다는 얘기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지난 10일 “1억원 이상을 도박 업자에게 송금한 3~4명의 선수만을 소환 조사한 뒤 처벌 수위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형사처벌 대상이 아닌 선수들에 대해서는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구단에 이들의 실명을 공개하지는 않기로 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일부 선수들의 실명이 도박 사건과 관계돼 유포되고 있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며 “언론의 지나친 추측 보도는 자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프로야구 최대 축제인 골든글러브 시상식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등 굵직한 행사를 앞두고 불거진 불미스러운 사태에 야구계는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삼성 구단이 ‘이번 사건에 연루된 선수 대부분을 제명할 것’이라는 소문도 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