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생순 신화’ 파벌싸움에 흔들리나?

여자 핸드볼 대표팀 ‘벽 산파 vs 비벽산파’ 정면충돌

2008-07-24     이수영 기자

올림픽을 한 달도 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대표팀서 낙마한 여자핸드볼 간판 공격수 이상은(33)의 퇴촌 이유를 놓고 핸드볼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그의 낙마 이유가 표면적으로는 무릎부상이지만 속사정이 따로 있다는 언론 보도 때문이다. 모 신문은 지난 14일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핸드볼 관계자의 말을 인용, 이상은이 대표팀 내 파벌 다툼에 말려들어 팀을 나갈 수밖에 없었다고 보도했다. 이 관계자는 인터뷰를 통해 “(선수가)임영철 감독을 선두로 한 대표팀 내 ‘벽산건설파’에게 따돌림을 당해 적잖은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태릉에서 짐을 싼 것”이라고 주장했다. 핸드볼계에서 여자팀은 ‘벽산건설 vs 비(非)벽산건설’, 남자팀은 ‘경희대 vs 한체대’의 파벌이 일정부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 때문에 소식을 접한 팬들은 대한핸드볼협회 등을 통해 철저한 진상조사는 물론 임 감독의 사퇴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임영철 대표팀 감독은 물론 이상은 본인조차 ‘보도 내용 자체가 사실무근’이라며 발끈하고 나서 파문은 진실게임으로 번질 전망이다. 이들은 “감독과 선수 사이를 이간질 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있다”며 인터뷰에 응한 관계자가 누구인지 밝혀 내야한다는 강경한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1995년 세계선수권 우승을 비롯해 세 번의 올림픽에서 주포로 활약한 이상은의 하차는 ‘제2의 우생순 신화’를 목표로 한 대표팀에 적잖은 공백이 될 전망이다. 2004 아네테올림픽 당시 무려 44점을 올리며 팀 내 최다 득점 선수로 우뚝 선 이상은의 퇴촌은 금메달 사냥에 나선 대표팀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벽산건설 입단 안 한 게 화근”

여기다 이상은의 퇴촌이 임영철 감독과 벽산건설 출신 선수들의 ‘냉대’때문이라는 기사는 충격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모 일간지 보도에 따르면 문제가 된 이상은의 무릎 부상은 그리 심각한 수준이 아니었다.

익명의 관계자는 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주치의가 대표팀 코칭스태프에 ‘실전을 뛰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는 의견을 보냈다”고 말했다. 지난 2월 수술을 받은 부위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새벽 산행은 피하는 것이 좋다’는 소견을 전했지만 임 감독과 대표팀은 이상은을 전혀 배려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부상을 악화시켰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이상은은 지난달 스페인 이트삭스와 계약을 해지하면서까지 베이징올림픽을 위해 한국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벽산건설이 아닌 서울시청과 계약을 하면서 임 감독의 눈 밖에 난 것이 화근이었다. 이상은이 감독과 선수단 1/3(18명 중 6명)을 차지하는 벽산건설 출신 선수들의 극심한 ‘텃세’에 시달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또 “여자핸드볼 대표팀 내에 벽산파와 비벽산파가 나뉘어 팀 분위기도 그다지 좋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대표팀 내 파벌 다툼의 폐해가 비단 이번 사건 만이 아님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이 일간지는 ‘이상은이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어 지난 12일 대표팀을 떠난 뒤 식음을 전폐하고 있다’고도 전했다.


팬들 “올림픽 안 보겠다” 분노

문제의 보도가 나간 뒤 팬들의 반응은 격렬했다. 대한핸드볼협회를 비롯한 관련 기관 홈페이지에는 성난 누리꾼들의 방문이 이어졌다.

송동석씨는 “베이징올림픽을 관람하기 위해 직접 중국으로 떠날 예정이었다. 여자핸드볼 기대하고 비싼 돈 주고 티켓도 샀다. 하지만 (파벌싸움)기사가 사실이라면 티켓 헐값에 내놓고 아예 경기를 안 보겠다”고 말했다.

안민영씨는 “핸드볼협회가 밥그릇 싸움이나 하는 단체로 전락할 판이다. 대표팀 감독이라는 분이 오랫동안 인연을 맺은 선수를 죽이는 악질로 보일 수 있다”며 “대한핸드볼협회는 사태 파악을 위해 1분이라도 빨리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상은 “파벌싸움? 절대 아니다”

자신도 핸드볼 선수라고 밝힌 설경현씨는 “이상은 선수는 국가를 위해 유럽팀과 계약도 포기하고 왔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벽산건설 선수들은 꼴도 보기 싫다”며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하지만 대한핸드볼협회는 문제의 언론 보도가 지나치게 과장됐다며 팬들의 걱정은 기우일 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협회 관계자는 “관련 보도를 읽어 봤지만 사실로 확인된 것은 하나도 없다”며 “사실 확인도 안 되는 익명의 관계자 말을 인용해 가장 중요한 시기에 대
표팀을 흔드는 저의가 뭔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대표팀 내 일은 당사자인 본인과 임 감독에게 직접 확인하는 게 가장 빠르지만 협회 입장에서 파악했을 때 (보도내용과 같은)이런 문제는 전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대표팀이 파벌싸움에 내홍을 겪고 있다는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는 데 협회뿐 아니라 당사자들도 입을 모으고 있다. 보도가 나간 지 반나절도 채 되지
않아 파문의 중심에 선 이상은이 직접 입을 열고 해명에 나선 것.

이상은은 또 다른 언론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관련 보도는 전혀 사실 무근이라고 밝혔다. 그는 “내가 파벌싸움에 희생됐다거나 훈련 중 혹사당했다는 것은 절대 사실무근이다.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아테네 때 은메달에 그쳤던 것을 이번에는 만회하는 것이 개인적인 욕심이었는데 안타깝게 됐다. 다른 선수들이 힘을 내 꼭 금메달을 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심경을 밝혔다.

문제가 된 무릎 부상 정도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밝혔다. 이상은은 “태릉에서 다른 선수들과 똑같은 훈련을 해보려고 했지만 무릎이 안 좋아 따라갈 수 없었다. 결국 올림픽에 나가는 게 팀에 보탬이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상의 끝에 임영철 감독 등 코칭스태프들이 일찌감치 퇴촌할 수 있도록 배
려해주셨다”고 밝혔다.

임영철 감독 역시 관련 기사 내용에 분통을 터트린 것으로 알려졌다. 임 감독은 “이상은이 지난 2월 무릎 수술을 받았는데 완쾌되지 않은 상태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받다보니 자꾸 뒤쳐지게 됐다”며 “스스로 힘들어서 대표팀을 나가겠다고 찾아왔던 것일 뿐 팀 내 불화 따위는 결코 없다”고 못 박았다.

결과적으로 파벌싸움의 가해자와 피해자로 지목된 이들이 모두 ‘사실이 아니다’며 손사래를 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와 관련, 문제의 발언을 처음 내뱉은 ‘핸드볼 관계자’가 누구냐는 데 또 다른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상은 파동’이 개연성은 높지만 실체가 없는 사건이 돼버린 탓이다.

‘대한체육회 산하 거의 모든 종목에 내부 파벌 다툼이 있다’고 할 정도로 형태와 내용은 다르지만 어느 스포츠 단체건 파벌이 존재한다. 또 그로 인한 내홍이 적지 않다는 것은 한국 체육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2006년 쇼트트랙 간판스타 안현수의 아버지가 공항 한복판에서 협회 고위층의 멱살을 잡은 사건은 한체대와 비한체대 사이의 빙상계 파벌 싸움이 원인이었다. 최근 천영석 회장이 탄핵 시비 끝에 자진 사퇴한 탁구협회 역시 회장파와 비회장파의 세력 다툼이 외부로 불거진 사건이다.

핸드볼계가 얽힌 이번 사건 역시, 전혀 근거 없는 보도는 아니라는 것이 많은 이들의 생각이다. 한국 스포츠가 경기장 안에서의 페어플레이보다 경기장 밖에서의 페어플레이가 더 중요해졌다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