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검 통해 마음을 닦는 ‘참 무술’ 의 경지”
일본 검도의 본류 거합도를 찾아서
2008-05-29 이수영 기자
검도는 몸과 마음을 수련하는 무도(武道)다. 하지만 요즘은 생활스포츠로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건강을 가꾸고 정신 수양은 물론, 호신술까지 겸할 수 있는 다목적 운동이라는 점이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이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최근 불고 있는 검도 열풍 가운데 ‘거합도’가 있다. 날카롭게 다듬어진 진검 수련을 기본으로 하는 거합도의 기원은 15세기 일본 전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만큼 일본 검도의 본류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거합도를 본격적으로 수련하는 곳은 정태룡(청해 이도재)선생이 운영하는 국제거합도연맹 한국지부가 대표적이다. 진검 수련을 하지만 적을 베지 않고 제압하는 ‘상생의 검술’, 거합도의 모든 것을 들여다봤다.
거합도는 고대 일본 무사 집단의 호신과 정신교육, 심신수양을 목적으로 발전돼 왔다. 원래 ‘거합(居合)’이란 정좌해 있다 일어서면서 적을 벤다는 뜻을 갖고 있다. 즉 전국시대 무사들이 자객의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칼집으로부터 빠르게 검을 빼는 동시에 상대를 베는 동작을 말한다.
일격에 적을 쓰러트리는 기술
이처럼 거합도는 언제라도 적의 공격을 받았을 때 즉시 대응하고 적을 제압하는 기술이다. 이런 점에서 거합도와 칼을 뽑아 맞서 싸우는 일반 검도는 다르다. 불시에 당하는 습격을 막기 위한 검술이므로 갖추는 보호 장구도 거의 없다. 무거운 호구와 죽도로 대표되는 대한검도와 달리 거합도는 진검(또는 목검)과 가벼운 도복만이 필요할 뿐이다.
수많은 검도인들이 거합도에 매력을 느끼는 것도 검도 본래의 진검을 맛보고자 하는 태생적 욕구와 무관하지 않다.
일본에서는 1956년 전일본검도연맹 산하에 거합도 가맹 본부가 발족돼 연사, 교사, 범사의 칭호와 초단~10단까지의 단증이 마련됐다.
거합의 수련은 정좌한 자세를 기본으로 한다. 똑바로 앉은 자세에서 상대를 공격하거나 방어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어떤 자세나 위치에서도 공격과 방어가 가능하도록 시뮬레이션화한 형(形)을 갖추고 있으며 시대가 흐를수록 계파별로 더욱 다양하고 세련된 형(形)이 만들어지고 있다.
거합도의 역사가 450년에 이르는 만큼 다양한 계파가 존재한다. 일본에는 40여 류에 이르는 다양한 분파가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거합도 계파는 방계인 중산박도(나카야마 하쿠도)가 창시한 ‘몽상신전류’와 정통파인 ‘무쌍직전영신류’가 대표적이다.
국제거합도연맹 한국지부장으로 무쌍직전영신류를 이끌고 있는 정태룡 (창해 이도재)선생은 당수도와 유도, 검도 등을 섭렵한 무도인으로 한국 거합도의 산증인이나 다름없다.
정 선생은 “오늘날 검도의 중추적 모태가 된 일반적 고류검술이 검을 검집에서 빼낸 뒤 승부에 중점을 두는 반면 거합도는 불의의 기습을 받았을 때를 대비해 수련하는 검법”이라고 소개했다.
매년 4월 대회·세미나 개최
그는 또 “거합의 진정한 의미는 앉아서 사람을 베는 기술이 아니다. 진짜 거합은 검이 검집 안에 있을 때를 최우선으로 한다. 어떤 공격에도 단 일격에 상대를 제압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칼 쓰는 법이 아니라 마음의 차분함과 담력 등 정신수양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고 전했다.
정 선생에 따르면 거합도는 매우 정적이면서도 동적이다. 상대를 타일러 무리한 공격을 억제해 먼저 제압하는 것이 기본인 만큼 진검을 쓰지만 상대를 해치기 위한 검술이 아닌 ‘상생의 검술’로서 의미가 깊다.
국내에 거합도 전문 도장으로 이름을 내건 곳은 흔치 않다. 있다하더라도 정통계파에 의한 수련이 아닌 진검 수련 모습만을 본뜬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4월 26일 국제거합도연맹한국지부에서 한민족 고류검도 대회와 승단심사가 열렸다. 이 행사는 거합도 및 고류검도 대회뿐 아니라 거합도에 관심을 가진 무도인들과의 관련 세미나를 겸하고 있다. 일본연맹 국제심사위원들이 참석, 회원 수련회를 겸한 행사는 매년 4월 열린다. 진검 수련과 거합도의 매력에 빠진 동호인들의 발걸음도 매년 이어지고 있다.
대회 주최자인 정 선생은 “현재 거합도를 수련하고 있는 동호인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늘어나는 추세다. 연맹 선배이신 야마자끼(82·범사9단) 선생을 비롯해 70~80대 검사들도 노익장을 과시할 만큼 열정이 대단하다”고 전했다.
한편 거합도에 대한 정확한 상담과 수련을 위해 많은 동호인들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이용하는 추세다. 거합도를 배우고자 하는 초보자·동호인은 몽상신전류를 수련하는 대한거합도연맹과 정 선생이 이끄는 국제거합도연맹한국지부 홈페이지를 통해 문의와 상담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