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우, 부상투혼 뛰어넘은 ‘아름다운 청년’
2008-02-04 기자
제2의 중흥기를 맞고 있는 배구코트에 유난히 빛나는 이름이 있다. 프로배구 현대캐피탈의 라이트공격수 박철우(23). 하얀 얼굴에 가늘고 긴 목은 여리게만 보여도 높은 곳에서 내리 치는 스파이크와 상대진영에 정확히 꽂아 넣는 서브는 불꽃을 품고 있다.
박철우는 지난 3라운드까지 코트에 자주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평지를 걸어도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기흉’선고를 받고 지난해 수술대에 오른 게 네 번째.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는 병이므로 몸을 만드는 게 우선이었다.
“몸을 사리니까 오히려 경기가 더 잘 풀리던걸요.”
지난달 27일 특급용병 팔라스카를 앞세운 LIG손해보험을 상대로 토종으로만 팀을 꾸린 현대캐피탈은 3대 0 완승을 거뒀다. 3세트를 통째로 소화하며 팀 승리를 이끈 건 박철우였다. 그는 16득점으로 팀에서 가장 많은 점수를 따내며 팀 해결사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경기 뒤 만난 박철우는 “오히려 부상 덕에 기량이 늘었다”고 웃는다. 그는 “무리하게 힘을 쓰지 않고 영리하게 대처하는 시야가 넓어졌다”고 말했다. 젊은 선수답지 않은 여유다.
지난 6월 재발한 기흉으로 국가대표팀 일정 중 한국으로 돌아온 그에게 팀은 방출에 가까운 조건을 제시했다. “치료가 끝날 때까지 몸 상태를 지켜본 뒤 재계약을 결정하겠다는” 것.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프로에 뛰어든 ‘배구소년’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박철우가 배구를 포기할 수 없다고 버티자 팀은 대한배구협회(KOVO) 소속 전문의사의 종합소견서를 요구했다. 그 때 윤강섭(보라매병원 부원장) 박사는 “직업선수로 활동이 어렵다. 꽈리모양의 기포를 없애는 수술을 받고 운동해야 한다. 수술해도 재발가능성은 있다”고 진단했다. 의사도 고개를 가로저은 것이다. 곧 ‘은퇴가 임박했다’ ‘2008시즌을 통째로 날렸다’는 등 암울한 보도가 줄을 이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그의 손을 잡아준 건 김호철 감독이었다. 그는 삼성화재의 7년 연속독주를 막고 현대캐피탈을 챔피언에 올린 명장.
김 감독은 “재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뿐 선수생활을 아주 접어야 한다는 건 아니다”며 박철우에게 힘을 보탰다.
오히려 “철우가 몸 상태를 조절하며 운동을 계속할 수 있게 돕겠다”고 나섰다.
‘명장’의 예감은 적중했다. 쉴 틈 없는 강행군으로 망가진 무릎, 발목, 허리 등은 쉬는 동안 말끔하게 나았다. 휴식기에만 하는 웨이트트레이닝을 꾸준히 한 덕분에 근력과 체력은 훨씬 좋아졌다. 휴식이 약이 된 셈이다.
“경기를 할 땐 모르겠는데 끝나고 나면 가끔 숨이 찰 때가 있어요. 그럴 땐 최대한 움직임을 느리게 하고 숨을 고르는데 집중하죠.”
박철우의 부상은 완치가 불가능한 고질병이 됐다. 숨까지 참아가며 경기에 나서야만 하는 그는 ‘부상투혼’이란 흔한 말로 담기엔 차고 넘친다. 그는 왜 그렇게까지 코트에 서고 싶은 걸까.
“운동선수는 경기에 나가야 멋있으니까요.” 스물 셋 청년은 멋을 이야기 했지만 그 속엔 ‘프로’란 자부심이 가득하다. 시련을 뛰어넘은 박철우가 아름다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