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환 두 번째 스승과도 결별
박석기 감독 “세계적 선수로 키운 대가 고작 300만원”
2008-01-11 이수영 기자
‘마린보이’ 박태환이 두 번째 시련을 맞았다. 지난해 초 수영용품업체 스피도와 후원계약을 맺으며 10년 스승 노민상 감독과 헤어진 뒤 11개월 만에 박석기 감독과도 남남이 된 것. 박감독은 물론 웨이트 트레이너 김기홍 박사와 엄태현 물리치료사도 박태환 곁을 떠났다. 7개월 앞으로 다가온 베이징올림픽 준비에 차질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호주로 전지훈련을 떠난 박 선수를 위해 후원사인 스피도는 최대한 빨리 새 코치진 인선을 약속했지만 끝이 개운하지 않다. 박 감독은 박태환이 유명그룹의 여가수와 데이트를 즐긴 사실까지 입에 올리며 ‘위기론’을 펼쳤다. ‘임금 100%인상’ 등 돈 문제로 신경전을 벌였던 양쪽의 감정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셈이다.
“어떤 코치든 내가 얼마나 의지를 갖고 훈련하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초심으로 돌아가 열심히 하겠습니다.”
지난 12월 29일 호주 전지훈련을 떠나기 전 인터뷰에서 박태환은 애써 충격을 참는 듯 보였다. 박태환은 두 명의 훈련파트너, 후원사 스피도의 손석배 마케팅 팀장만 데리고 먼 길을 떠났다. 새 코치진을 구할 때까지 박태환은 오전엔 시드니 아쿠아틱센터에서 한 시간에 30달러짜리 레인하나를 빌려 쓰고 오후엔 근처 수영장에서 혼자 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 호주 수영 국가대표 감독인 토니 쇼 코치의 지도를 받고 있지만 전담팀 만큼의 위력을 기대하기 힘들다.
“임금 100% 인상 요구 뒤 해고당해”
‘박태환 전담팀’이 박살난 가장 큰 이유는 돈 때문이다. 손석배 스피도 마케팅팀장은 “지난 12월 20일 코칭스테프가 100% 급여인상을 요구했다. 들어주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부득이 코치진을 바꾸기로 했다”고 밝혔다. 급여 등 처우문제를 이야기 하는 과정에서 박 감독은 박태환의 아버지인 박인호씨와도 사이가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박 감독의 월급은 300만원. 트레이너와 물리치료사는 250만원 정도를 받았다. 세금을 떼기 전 금액이다.
박 감독은 “다른 사람들은 내가 연봉 1억원 쯤 받는 줄 안다. 하지만 올해 좋은 성적을 많이 냈어도 그 흔한 포상금 한번 없더라. 돈줄을 쥔 후원사는 적자가 심해 20% 이상은 올려줄 수 없다고 해 갈등이 심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태환 쪽의 “선수를 볼모로 감독이 돈 장사를
했다”는 주장은 억지라고 항변했다.
그는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트레이너, 물리치료사와 임금인상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100%인상에 대한 건의를 손 팀장에게 전했다. 손 팀장이 ‘요구한 만큼 급여를 올려주지 않으면 전지훈련을 못 가겠다는 거냐’고 물었다. 그래서 ‘그럴 수도 있겠다’고 말한 것이다”고 설명했다. 또 “스피도에서 20%인상을 제의했지만 그 정도라면 차라리 안 받고 전지훈련을 떠나겠다고 했다. 처음부터 마치 전지훈련을 안 간다고 버틴 것처럼 알려진 건 잘못됐다”고 덧붙였다.
“대표팀도 이런 특급대우 안 해”
반면 후원사 스피도와 박태환 부모 입장은 강경하다. 박 선수 아버지 박인호씨는 호주로 떠나기 전 인터뷰에서 “박 감독과 전담팀에게 대표팀 이상의 최고대우를 해줬다”고 강조했다. 박씨는 “열악한 처우로 그만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월 300만원이면 대표팀 감독과 비슷한 수준이다. 또 신년에 새 계약을 통해 임금인상을 약속했다”고 말했다. 오히려 “코치진이 전지훈련을 앞두고 급여 100% 인상을 주장하며, 1%라도 충족되지 않으면 전지훈련을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밝혀 박 감독과 날선 신경전을 벌였다.
그는 “돈 문제라면 내가 사비를 털어서라도 부담할 수 있다. 문제는 선수를 볼모로 협박한 코치진의 태도”라며 꼬집었다. 일단 전지훈련을 가고 계약협상이 끝나면 나머지 인상분을 소급해 주겠다고 약속했다는 것. 하지만 코치진이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전엔 전지훈련을 안 가겠다”고 버텼고 선수부모로서 용납할 수 없는 문제였다고 주장했다.
박씨는 덧붙여 “대표팀도 못해주는 최고대우를 전담팀에 해줬다. 훈련을 가면 특급호텔을 잡아줬고 추가경비에 대해서는 법인카드로 지급했다. 국가대표팀은 해외전지훈련을 가면 모텔급 숙소에 묵는 게 보통”이라고 말했다.
1년 지원금 30억원 어디로?
가장 민감한 급여문제로 전담팀이 해체된 것에 미심쩍은 부분도 크다. 박태환의 훈련비는 후원사인 스피도로부터 아낌없이 지원되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스피도는 지난해 1월 후원계약을 맺으며 “수영연맹 전체 예산과 맞먹는 수준의 후원금을 준비했다. 30억원쯤 된다”고 김태원 스피도코리아 사장이 직접 나서 호언장담했다. ‘박태환 프로젝트’에 회사 사활을 걸고 최고의 ‘드림팀’을 만들겠다는 약속도 했다.
여기에 지난해 5월 SK텔레콤이 박태환의 훈련비를 책임지는 계약도 맺었다. 이때 받은 돈은 3억원. 여기에 매달 모교인 경기고 후원회로부터 받는 지원금과 대한수영연맹으로부터 받는 월 50만원 등 들어오는 돈은 많아도 사용처가 오리무중이다. 이번 사태가 단순히 돈 문제만은 아니라는 반증이다.
때문에 훈련방식을 놓고 박 감독과 부모 사이에 갈등이 깊어져 결국 ‘감독 바꾸기’란 극약 처방을 내렸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박 감독은 “지난 11월 20일 월드컵을 마치고 귀국하기도 전에 외국인코치를 구하겠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스피도 손 팀장과 학부모 사이에 밀담이 있었던 것”이라며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외국에서도 오히려 나한테 배우겠다고 한다. 태환이 아버님께서 마치 ‘총감독’을 자처하신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 훈련방식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몰라도 이런 식으로 물러나게 돼 유감”이라고 덧붙였다.
고교 졸업하기 전 ‘차 운전’
한편 박 감독은 “이대로는 절대 금메달을 딸 수 없다”며 ‘박태환 위기론’을 펼쳐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됐다.
팀이 깨진 다음날인 지난 12월 28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쇼트코스월드컵을 마치고 돌아와 연말 무렵 한 달 내내 훈련을 거의 못했다. 지금 박태환의 몸 상태는 훈련을 전혀 소화하지 못할 정도”라고 꼬집었다.
박 감독에 따르면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박태환은 손 팀장 차를 빌려 직접 운전하고 있다.
이 차를 타고 인기그룹 여가수와 자정 가까이 데이트를 하고 집에 돌아와 새벽까지 통화를 해 다음날 훈련에 지장을 받았다는 것.
그는 “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하는 선수에게, 거기다 고등학교도 졸업하기 전에 운전대를 잡게 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또 지난 연말 서울 송파구 올림픽수영장 재개장 기념식을 예로 들며 “고작 200m 시범경기를 하고 팔꿈치 통증을 호소했다. 그만큼 훈련이 안 됐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일주일에 10번은 수영훈련을 해야 하지만 5번도 못 채웠다며 지나친 행사로 자기관리를 못한 탓이라고 지적했다.
박태환의 스케줄을 관리하는 스피도 쪽은 “국가에서 진행하는 의미 있는 행사만 골라 참석했다. 선수를 볼모로 임금협상을 한 것도 모자라 제자 험담까지 하는 것은 상식 밖”이라고 맞섰다. 열애설에 휘말린 여가수와도 “교회에서 알고 지낸 친구사이”라고 못 박았다.
올림픽개막 전까지 남은 기간을 외국에서 혹독한 훈련으로 보내야 하는 박태환. 가족같이 어울리며 모든 일정을 함께한 전담팀이 깨진 상황에서 낯선 사람들과 새 호흡을 맞추는 것이 금빛 물살의 새 변수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