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장 복서의 ‘마지막 투혼’ 대한민국을 울렸다

2008-01-04     이수영 기자

축복 가득한 2007년 성탄절, 한국 복싱의 마지막 자존심이 무너졌다. 전 WBC(세계복싱평의회)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 최요삼(33·주몽담배)이 인터콘티넨탈 타이틀 1차 방어전에서 도전자의 주먹을 맞고 생사의 기로에 선 것. 최요삼은 지난달 25일 서울 광진구 자양동 광진구민 체육회관 특설링에서 열린 WBO(세계복싱기구) 인터콘티넨탈 플라이급(50.8Kg) 타이틀 1차 방어전에서 헤리 아몰(24·인도네시아)에게 경기가 끝나기 직전 오른손 스트레이트를 맞고 쓰러졌다. 끝까지 경기를 마쳐 3대 0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을 거뒀다. 하지만 상태는 심각했다. 서울 한남동 순천향대학병원으로 옮겨진 그는 뇌출혈로 긴급수술을 받았으나 곧 혼수상태에 빠졌다. 기적적으로 회복한다 해도 그의 선수생명은 끊겼다. 복싱을 ‘천직’으로 믿고 마지막 불꽃을 태운 노장복서의 최후는 2007년을 보내는 대한민국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팬들이 원하는 게 뭔지 압니다. 화끈한 KO승을 노려 무너진 프로복싱을 일으키겠습니다.”

‘복싱챔피언’ 최요삼의 마지막 경기가 돼버린 지난 25일 경기를 앞두고 공식인터뷰에서 그는 말했다. 최용수, 지인진 등 다른 챔피언들이 배고픈 생활을 못 이겨 이종격투기로 떠나는 것을 지켜본 그다.

수많은 팬들도 더 박진감 있는 K-1과 이종격투기로 눈을 돌렸다. 서른 세 살의 노장복서는 글러브끈을 꽉 조여맸다. 무너진 자존심을 세워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탄 것이다.


“버티기만 해도 이길 수 있었다”

최요삼은 열 살이나 어린 도전자를 시작부터 몰아붙였다. 11라운드까지 세 번이나 슬립다운을 뺏으며 마지막 라운드만 버티면 쉽게 이길 수 있었던 것.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화끈한 KO승’을 하겠다는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려 이를 악물었다. 상대와 거리를 두는 ‘아웃복싱’을 하지 않고 철저히 ‘강공’으로 맞선 최요삼은 마지막 5초를 남기고 불의의 일격을 당했다. 두 번이나 상대방 머리에 얼굴을 부딪치고 양쪽 훅을 자주 허용해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강력한 오른쪽 스트레이트로 결국 다운됐지만 그는 곧 정신을 차리고 끝까지 경기를 마쳤다. 결과는 3대 0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 승리를 확인하자마자 쓰러진 최요삼은 병원에 옮겨졌다. 진단결과는 교정맥 파열. 뇌출혈로 응급수술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날 오후 5시 김라선 주치의 집도아래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5시간 예정의 수술은 2시간 만에 끝났다. 왼쪽 뇌가 많이 부었고 뇌압이 높아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었던 것.

혼수상태에 빠진 최요삼을 지켜보며 그의 프로모터인 전광진 HO스포츠매니지먼트 회장은 “멋있는 시합을 위해 마지막까지 부딪친 게 불행을 가져온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무너진 집안 일으킨 ‘장한 아들’

아버지가 서울에 여러 채의 집을 갖고 있을 정도로 부유한 집안의 둘째였던 최요삼. 하지만 외환위기로 큰 형이 사업에 실패하자 가세는 급격히 기울었다.

1999년 WBC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에 오른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대전료 1억 5천만원과 저축 5천만원을 털어 어머니를 모실 아파트를
산 것. 세 살 터울의 남동생이 뉴질랜드에서 프로골퍼자격증을 딸 때까지 10년 동안 뒷바라지 한 것도 최요삼이었다.

동생은 결국 골프선수 꿈을 접었지만 형의 매니저로 활약하며 밤낮없이 일했다. 오는 5월 결혼을 앞둔 동생 경호씨.

역시 미혼임에도 동생부터 챙긴 최요삼은 이번 경기가 동생 앞길에 축포가 되길 원했다고 한다.

경호씨는 형의 상태를 묻는 기자들 질문에 “의사에게 솔직하게 말해달라며 ‘죽겠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신이 아니라 확답을 못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며 눈물을 쏟았다. 그는 또 “의사들은 다 어렵다고 하지만 1%의 가능성만 있다면 끝까지 지켜볼 것이다. 형이 고생을 많이 했는데 제발 살아만 줬으면 바랄 게 없다”고 말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졸지에 아들 병수발을 들게 된 노모의 속은 더 타들어간다. 어머니 오순이 씨는 “(요삼이가) 꼭 이겨낼 거다. 하나님이 꼭 살려주실 거라 믿는다”며 희망의 끈을 잡고 있다.


한국 복싱 ‘마지막 자존심’ 지다

최요삼은 천부적 재능을 가진 복서였다. 1994년 복싱을 시작, 그 해 라이트플라이급 신인왕에 오르며 화려하게 데뷔해 1년 만에 같은 급 한국챔피언에 올랐고 1996년엔 동양챔피언에 이름을 올렸다.

1999년 10월 태국의 복싱영웅 사만 소루자투롱을 꺾고 마침내 WBC 세계챔피언에 등극했다.

하지만 복싱인기가 곤두박질치며 스폰서가 끊겼고 3년 동안 단 네 번의 경기밖에 치를 수 없었다. 결국 2002년 7월 호르헤 아르세에게 타이틀을 뺏기며 슬럼프에 빠졌다.

그러나 2006년 9월 WBO 인터콘티넨탈 플라이급 타이틀을 따내며 재기에 성공한 최요삼은 이번 1차 방어전을 마치고 새해 3월 세계챔피언에 도전할 계획이었다.

“절대 돈 때문에 싸우는 게 아닙니다. 할 줄 아는 게 권투밖에 없어 돌아왔습니다. 미국에서 세계챔피언타이틀을 따 후배들 길을 열어주고 싶습니다.”

과거의 영광이 무너진 한국복싱 위에서 후배들의 앞을 밝혀주려 홀연히 일어섰던 ‘챔프’. 그 장렬한 최후에 대한민국이 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