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한 내홍에 시달리고 업무는 정지
2007-05-23 남장현
K리그와 함께 한국 프로축구를 대표하는 내셔널리그가 심한 내홍을 겪고 있다. 연초부터 제대로 풀리는 일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여러 악재가 끝없이 이어지며 축구인과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다. 기대를 모은 고양 국민은행의 K리그 승격 불발을 시작으로 IT기업 오메가 텐더와 관련한 서산 시민구단 문제, 연고지 합의 및 병역비리 문제로 난항을 겪는 ING클럽(전 여수FC) 사태 등 잡음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내셔널리그 스폰서인 생명과학기업 STC라이프 사태까지 불거져, 기업 총수이자 내셔널리그 회장을 맡고 있는 이계호 회장 거취 문제가 화두에 올랐다. 바람 잘 날 없는 내셔널리그. 과연 해결책은 있는 것일까. 이슈가 되고 있는 3가지 쟁점을 사안별로 정리했다.
쟁점1 STC 기업 사태
“이계호 STC 회장의 개인 문제를 내셔널리그와 연계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김기복 내셔널리그 부회장은 공식 스폰서인 생명과학기업 STC라이프(회장 이계호)와 관련한 문제가 리그 운영까지 영향을 미쳐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분명히 했다.
이계호 내셔널리그 회장이 총수로 있는 STC는 지난 주말 MBC 모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대대적인 공격을 받았다. 발단이 된 것은 STC가 상품화한 ‘에너지워터’와 ‘에너지솔트’의 효능 문제. 암이나 당뇨 등 난치병 환자들이 명시된 효능과는 달리 이 약품을 복용한 뒤에도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또 이 회장이 수여받았다는 학위와 경력을 확인한 결과, 허위로 입증됐다고 덧붙여 심각한 파문을 예고했다.
이 때문에 내셔널리그가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이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약 한달 전 사표를
낸 이 회장이 사무국에 나타나지 않은지 꽤 시간이 흘렀으나 사표는 수리되지 않은 채 여전히 직함을 유지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이 방영되기 한주 전, 미리 이 회장과 만나 내셔널리그 운영과 관련해 긴밀한 대화를 나눴다”는 김 부회장은 “이 회장이 직함을 앞으로도 유지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또 김 부회장은 이 회장이 사표를 낸 시점부터 지금까지 리그 운영에 필요한 서류와 업무 추진방안에 대해서도 팩스와 전화통화 등을 통해 간접 결재를 받아왔다고 했다. 회장 공석으로 리그 파행을 걱정하던 언론 보도와는 정 반대되는 의견을 밝힌 것.
프로그램을 보지 못했다고 전제한 김 부회장은 “STC가 어떤 형태의 기업이든지, 내셔널리그 발전에 많은 공헌을 했다”면서 “설사 문제가 있더라도 축구와는 관계없으니 팬들과 축구인들이 이해했으면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연히 내셔널리그는 특별한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고 밝힌 김 부회장은 “만약 이 회장 논란이 계속된다면 내셔널리그 긴급 이사회나 대한축구협회 대의원 총회를 열어 원만한 해결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결국 지금 당장은 이 회장 거취를 논하지 않다가 향후 문제가 발생한 뒤에야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뜻을 던진 셈이다.
쟁점2 리그 사무국 ‘대책 무’
내셔널리그는 하부 구조가 튼튼하지 못하다. 올 초 새로운 도약을 목표로 인력까지 충원하며 의기투합했지만 사정은 암울하다. 리그 운영의 뿌리라고 볼 수 있는 각 구단부터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서산 시민구단과 ING클럽.
IT 화상 정보업체 (주)오메가 텐더(CEO 김상용)가 재정난을 겪으면서, 작년 9월 구단 운영관련 계약을 체결한 이후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하는 서산 구단(감독 최종덕)은 아예 존폐 위기에까지 몰려있고, ING클럽(감독 김영호)은 리그 가입비조차 완납하지 못할 정도로 재정난을 겪는데다 병역특례업체 INGNEX사장이자 축구 단장이었던 최지원씨가 구속 수감되고, 선수들의 병역 문제까지 겹쳐 곤욕을 치르고 있다.
본지는 681호를 통해 ‘오메가 텐더의 전횡과 존폐 위기에 몰린 서산 시민구단’과 관련한 내용을 상세히 보도한 바 있다. 기사화된 이후에도 오메가 텐더측에서는 가타부타 해명조차 없다. 5월 말이 되면 몇몇 대기업과 영상 관련 ‘빅딜’이 성사되니 그때쯤 재정적 지원을 해주겠다는 구두 약속을 최종덕 감독에게 했을 뿐이다. 확신없고, 기약없는 약속을 바라보며 무작정 기다려야하는 상황.
김기복 부회장은 “오메가 텐더와 서산 구단의 사정은 잘 알고 있다”면서 “일단 서산시와 긴밀한 협조를 하라고 지시했다”고 했으나 뚜렷한 대책은 없다.
한편 ING클럽 사태도 심각하다. 여수시(市)와 연고지 협의조차 이뤄지지 않아 올시즌 전반기 내내 원정경기만 치르는 지경에 내몰렸다. 단장도 없다. 무자격 에이전트 활동을 했던 최지원 전단장은 고교 선수 3명에게 “대입 문제를 해결해주겠다”며 접근, 1억3,000여만원을 착복한 사실이 드러나 구속됐다.
이후부터 김영호 감독이 사실상 단장 역할까지 떠맡고 있다. 여기에 선수들의 병역비리 문제까지 불거졌다. 조사받은 9명 모두 무혐의 처리를 받았음에도 검찰에서는 수사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매달 3,500여만원의 운영비가 소요되는 ING클럽은 서산 구단처럼 지난 4, 5월 임금이 지급되지 못했다. INGNEX에서 원정 때마다 몇푼씩 지원하는 게 고작이다. 그동안은 모아둔 스폰서(GS칼텍스, 전남드래곤즈) 비용으로 어렵게 꾸려왔지만 미래는 예측하기 어렵다. 이달 말 박광식 여수축구협회장 주재로 열릴 여수시와 연고지 협의에 희망을 걸고 있다.
내셔널리그는 여수 구단에 대해서도 관망하는 실정이다. 김 부회장은 “연고지 합의가 잘 이뤄질 것”이란 애매한 대답을 내놨을 뿐, 운영 형편에 대해서는 설명을 못했다.
산하 클럽의 실정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내셔널리그의 모습에 그저 긴 한숨만 나올 뿐이다.
쟁점3 내셔널리그 승격 문제
선진 프로축구와 한국 프로축구의 가장 다른 점이 무엇일까. 바로 ‘승격-강등’제도다. 유럽이나 남미는 물론,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까지도 이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 프로축구 K리그가 일본, 중국과는 달리 외국에서 정식 리그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도 모두 이 때문이다. 한국 축구를 인정하고 어필하기 위해선 ‘승격-강등‘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그러나 한국 축구의 실정은 불행하다. 리그가 파행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제도 도입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예정대로라면 내년쯤 이 제도가 시작돼야 하지만 가능성은 거의 없다. 대부분 대기업의 지원을 받는 프로팀들이 내셔널리그 강등을 원하지 않는데다 내셔널리그에서 프로에 참여할만한 재정을 가진 팀이 드문 탓이다.
지난 2007년 초는 내셔널리그에 있어 잊지 못할 시간이었다. 06시즌 우승팀 자격으로 고양 국민은행이 승격 자격을 얻었으나 ‘금융팀은 프로화 전환이 불가능하다’는 제도에 막혀 K리그 승격을 거부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 더 이해할 수 없는 일은 국민은행이 여자 프로농구단을 운영한다는 점. 국민은행은 “세미 형태인 여자 농구와 프로축구는 다르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석연찮은 구석이 없지 않았다.
승격 거부에 격분한 이계호 내셔널리그 회장은 ‘국민은행을 리그에서 퇴출시키겠다’며 강하게 비난했으나 오히려 축구인들은 국민은행을 잔류시키자는 쪽으로 가닥을 모았다. STC 문제로 어려움을 겪던 이 회장이 사태 해결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김 부회장에게 사표를 전한 것도 바로 이 시점이다.
이같은 상황이라면 온전한 제도 정착은 불가능하다. 그저 국민은행이 우승하지 않기를 바라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다. 재정적으로 비교적 안정된 국민은행이 이 모양인데 대체 누구를 프로리그로 올릴 수 있을까. 실업축구 때부터 내셔널리그를 지켜본 한 축구 원로는 “작지만 단단한 사무국과 리그를 구성한 뒤 (승격제를)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딜레마에 빠져 항로를 이탈, 표류중인 내셔널리그가 어떻게 각종 사태들을 마무리 지을지 궁금하다.
#차범근 상종가, 귀네슈 하한가
프로축구 판도가 달라졌다. 시즌 초만 해도 터키 출신 세뇰 귀네슈 감독이 이끄는 FC서울이 우세했으나 4월을 기점으로 무너지던 차범근 감독의 수원삼성이 힘을 내고 있다.
잘 나가던 서울의 발목을 잡은 것은 선수들의 줄부상. 이민성이 오른쪽 무릎 부상으로 이탈한 뒤 박주영(왼발등), 정조국(왼손등), 두두(사타구니) 등 주력 8명이 전력에서 제외됐다.
귀네슈 감독은 “K리그는 너무 거칠다”고 하소연한다. 성적도 3승5무2패로 리그 6위까지 추락했다. 5월12일 전북전(1-1)에서 이상협이 득점할 때까지 정규리그 6경기 무득점 행진을 이어갔고, 7경기 연속 무승(5무2패)을 기록했다.
반면 ‘레알’이란 닉네임을 얻을 정도로 막강한 전력과 대조되는 부진한 모습으로 실망을 사던 수원은 예의 힘을 되찾으며 가파른 도약세를 보인다. 차범근 감독 특유의 ‘기도 세리머니’도 계속되고 있다. 수원은 정규리그 3연승을 내달려 6승3무1패로 2위에 랭크됐다. 센터백으로 보직을 바꾼 김남일의 활약과 김대의, 이관우 등 공격진들의 활약이 어우러져 호조를 이어가고 있다.
‘극과 극’의 행보를 거듭하는 서울과 수원이 어떻게 흐름을 이어갈지 추이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