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주기관차처럼 그라운드 질주…“2010 월드컵 넘겠다”

2006-08-04     구명석 
짧은 머리에 어떤 치장도 없고 맺음을 분명히 하는 말투까지 요즘 신세대 같지 않은 모습의 조원희. 투박해 보이는 외모며 소탈한 성격으로 서울 사람 같지 않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유년시절부터 서울 강남에서 살아왔던 서울 토박이다. 투박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솔직한 면과 사람들 관계 속에서 정이 많은 것이 그의 매력이다. 또 과묵해 보이는 첫인상과는 전혀 다르게 수다를 떨듯 이야기를 쏟아내며 친밀감을 한껏 높였다. 월드컵이 끝난 지금, K-리그 우승을 위해 태극전사 이운재, 김남일, 송종국 선배들과 수원 삼성에서 열심히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조원희 선수를 만나 보았다.

수원 삼성의 미드필더 조원희(23)는 지난해 10월 12일 서울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이란의 대표팀 평가전에서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A매치 데뷔골을 터뜨리면서 자신을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A매치 데뷔전에서 데뷔 골을 쐈다는 기록만으로도 충분히 주목을 받을 만했고, 지칠 줄 모르는 스태미나로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누비는 저돌적인 모습도 축구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래서 운동 밖에 모르고 축구만 외곬으로 하는 선수일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축구선수들에게서는 보지 못한 다양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조원희였다. 조원희는 평소에도 피아노를 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투박한 느낌이 짙은 축구선수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게 했다.

“피아노, 쇼트트랙 다재능 축구선수”

조원희가 중학교 때 체르니 40번까지 칠 정도로 피아노 실력이 대단하다는 것은 우리에게 잘 알려졌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누나를 따라 시작한 피아노는 축구 때문에 꾸준히 하지는 못했지만, 재미를 제법 붙여 요즘도 가끔씩 건반을 두드린다. 요즘도 틈이 나면 어린 시절 다니던 피아노 학원을 찾아가 레슨을 받기도 한다. 어머니께서 500원짜리 가요 악보를 사다주시면서 가요를 많이 쳤는데, 가장 자신 있는 곡은 농구 드라마 주제가 ‘마지막 승부’다. 같은 운동선수로서 그 가사가 남다르게 다가왔기 때문이란다.조원희의 또 다른 특기 중 하나인 쇼트트랙과 스키 실력도 수준급인 것으로 확인됐다.

쇼트트랙 역시 누나가 하면서 덩달아 배우게 됐다. 이에 따라 그의 폭주 기관차 같은 돌파와 지칠 줄 모르는 체력, 빼어난 안목의 원천이 쇼트트랙과 스키에 있는 것이 아니냐는 흥미로운 분석이 나오고 있다.조원희의 어머니 최병숙(51)씨는 “원희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1년 넘게 서울 잠실 롯데월드와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쇼트트랙 선수로 활동했다”며 “5학년 때 서울시대회에 출전해 금메달을 2개 딴 적이 있다”고 밝혔다.

최씨는 “당시 원희보다 2살 위인 누나를 함께 데리고 빙상장을 찾았는데 원희가 스케이트를 신은 지 20분만에 코너를 쉽게 돌아 당시 코치가 크게 놀랐다”고 말해 조원희가 어릴 때부터 탁월한 공간 감각을 갖고 있었음을 드러냈다. 최씨는 또 “원희는 4학년 겨울방학 때부터 스키를 타기 시작해 지금은 난코스도 쉽게 소화하는 등 수준급의 실력을 갖고 있다”고 귀띔했다.한편 조원희는 미8군에서 일주일에 세 차례씩 영어공부를 해 기초적인 회화가 가능한 상태다. 한자도 900자를 익혔다. 조원희가 지난해 10월 이란전에서 위력적인 측면 돌파, 날카로운 킬패스와 크로스, 최전방과 최후방을 넘나드는 폭넓은 공간 활용, 지능적인 센스를 자랑한 바탕에는 어릴 때의 다양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철저한 무명에서 특급 스타로 조원희가 축구를 시작하게 된 것은 지금은 현장을 떠난 차경복 전 성남 일화 감독 덕이 컸다. 논현초등학교 5학년 때 축구부 창단 멤버로 들어가면서부터다. 당시 옆집에 살던 차병민이라는 친구와 함께 축구부에 들어갔는데 병민이 바로 차경복 전 성남 일화 감독의 손자다. 이때 축구의 매력에 빠져들며 쇼트트랙을 그만뒀다. 배재중학교와 배재고등학교를 졸업 하고 대학진학을 꿈꾸던 그는 좌절을 겪는다.

울산 현대팀에서 연습생으로 야망을 키우던 그는 고교 때부터 유심히 지켜보던 이강조 광주 상무 감독의 배려로 일찌감치 군에 입대했다. 이때부터 오른쪽 풀백으로 기용되며 경기에 나서게 됐고 진가를 인정받으며 청소년대표 감독이던 박성화 감독의 눈에 들기도 했다. 박 감독은 그에게 포백 수비에 대해 전술적으로 이해를 시켜준 은인이기도 하다. 군에서 제대하고 곧바로 현재 소속팀인 수원 삼성으로 이적한 조원희는 차범근 감독의 집중조련을 받으며 수원의 믿음직한 주전급 선수로 성장했고 결국 아드보카트 감독으로부터 낙점을 받았다. 그야말로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조원희가 여러 지도자들의 부름으로 꽃이 된 셈이다.

“차두리 형은 나의 훈련 메이트였다”

조원희와 차두리 둘의 인연은 1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6년 차두리가 배재고 1학년이던 시절 조원희는 배재중 1학년이었다. 이둘은 엄격히 말하면 고교 선후배 사이다. 3년 선후배로 같은 학교에서 선수로 호흡을 맞추지는 못했지만 각별한 인연이 있다. 차두리가 고교 1학년 때 아침운동에 앞서 1시간 전에 나와 운동장에서 운동을 하고 있으면 잠시 후 중학생 선수 한명이 나와서 개인 훈련을 하곤 했는데, 이 때 나타난 중학생 선수가 조원희였다.

새벽부터 운동장에 나와 훈련하는 차두리를 보고 조원희도 함께 훈련을 하기 시작했고 아무도 없던 운동장에서 새벽 공기를 마시며 서로 공을 주고 받으면서 둘은 교감을 나눴다고 한다. 지금은 차두리의 아버지 ‘차붐’ 차범근 수원 삼성 감독 휘하에 몸담고 있는 조원희는 ‘차붐’ 부자와의 각별한 인연에 대해 “가끔씩 감독님이 훈련시키는 패턴을 따라하다 보면 두리형과 함께 했던 훈련이 생각난다. 난 이미 감독님의 훈련법을 두리형을 통해 익혔기 때문이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지금도 조원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를 주고받을 정도로 차두리와는 각별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

“여자친구 얘긴 일급비밀이에요”

조원희는 피아노 치는 축구선수라는 타이틀도 쑥스러운데, 여자친구 얘기는 더 못하겠다고 수줍어했다. “어릴적부터 알고 지낸 사이기 때문에 만난지는 좀 됐다”며 여자친구의 존재에 대해서는 말을 꺼냈지만, 여자친구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에는 말끝마다 웃으며 “비밀이에요”라며 공개를 꺼려했다. 여자친구가 어디가 좋으냐는 질문에 조원희는 “마음씨가 착해서 좋다”고 말했다.

또 부모님께서도 마음에 들어 하시고 좋아해주신다고 한다. “어머니는 여자친구와의 데이트비용을 위해 얼마 전부터 용돈을 10만원 인상해주셨다”며 기뻐했다. 누가 배우자가 될지는 모르지만, 결혼은 27살쯤에나 하고 싶고, 어릴 때부터 아기를 너무 좋아해서 결혼하면 아이는 둘은 낳고 싶다고 한다. “아들 딸 하나씩도 좋고, 이쁜 딸 둘도 좋을 것 같다”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최근엔 여자친구와 놀이공원에 놀러갔는데 정말 귀엽고 예쁜 꼬마 아이가 있어 그 꼬마를 어루만져줬더니 울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난처했다며 실제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부드럽고 온화한 남자라고 항변했다.

“은퇴 후 나의 꿈은 기자 ”

학창시절 새벽마다 집 앞 대모산을 “점령했다”고 할 정도로 활동적이고 말도 참 씩씩하게 잘 한다. 만일 축구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그는 기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조원희는 “어린 시절 기자가 그냥 멋있어 보였다”고 말했다. 어머니도 그런 조원희에게 기자가 되라고 권하셨다. 축구선수로 태극마크까지 단 지금도 기자가 되고픈 마음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인터뷰 중에도 “어떻게 하면 기자가 될 수 있어요? 축구선수는 기자하면 안되나요? 똑똑해야 되나요?”라는 등 여러 가지 질문을 하며 기자에 대한 관심을 내보였다. 35살까지는 원 없이 그라운드를 누비고, 먼 미래의 일이겠지만 은퇴 후 꼭 기자에 도전해볼 작정이란다. “풍부한 선수경력으로 축구전문기자가 되고 싶다. 기자가 아니라면 지도자의 길을 걷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각오를 내비쳤다.

미래를 바라보며 4년 후를 기약

“나중에라도 꼭 대학에 가 체육교육학과를 전공하고, 모교인 배재고에 서고 싶은 마음이다.”조원희 그는 대학에 대한 꿈을 저버릴 수 없다고 했다. 축구 선수로서 좌절을 맛봤던 대학진학의 실패가 아직도 남아 있는 듯, 조만간 대학 진학의 꿈을 이루겠다고 선언했다.

해외진출에 대한 또 다른 꿈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잉글랜드나 스페인, 이탈리아 등을 꿈꾸지만 그는 거칠고 선이 굵으며 강한 인상이 풍기는 독일 분데스리가가 매력이 있어 “반드시 분데스리가 경기만 본다”고 말했다. 독일월드컵 얘기를 꺼내자 조원희는 실망감과 아쉬움을 내비쳤다. 송종국 선배와의 주전 경쟁에서 밀려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는 단 1분도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에 돌아온 후 한동안 휴대폰을 꺼 놓는 것으로 꿈에 그리던 월드컵 본선 무대에 오르지 못한 아쉬움을 나타냈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상처는 아물기 마련. 이제 독일에서의 아쉬움은 뒤로하고 그는 다시 축구화 끈을 조여매고 있다. “내가 부족해서 경기에 나서지 못했던 것이다. 4년 후에는 그런 일이 없도록 지금부터 노력하겠다” 지금부터 4년 후를 준비하겠다는 조원희. 그의 몸과 마음은 이미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향해 달리고 있다.



# 홍명보 코치제의 전격 수락베어벡호 승선…대표팀 코치진 확정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37)가 베어벡호에 코치로 승선했다. 독일월드컵축구 이후 새로 출범한 베어벡호의 코칭스태프로 기존 압신 고트비(42)와 홍명보코치가 임명됐다.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25일 “핌 베어벡 감독의 추천을 받은 뒤 기술위원회 승인을 거쳐 대표팀 코칭스태프로 고트비와 홍명보 코치를 정식으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홍 코치는 “한국 축구가 어떤 식으로 흘러가 실패했는지 모두 알고 있다. 전철을 밟지 않는 게 중요하다”며 젊은 선수 육성과 세대교체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향후 대표팀 감독에 대한 욕심을 묻는 질문에는 “지금은 그런 능력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 더 많이 배우고 공부해야 할 것 같다”고 답했다.

현역 은퇴 후 행정가를 꿈꾸다가 지도자 길을 이어가는 것에 대해선 “행정가든 지도자든 경험이 중요한 것 같다”면서 “이번 경험도 나에겐 중요한 일이 될 것”이라고 했다.두 코치의 임기는 베어벡 감독과 같은 2008년 8월까지로 2년간이다. 베어벡 감독은 대만과의 아시안컵 예선전(8월16일)에 대비한 대표팀 명단을 발표하고 준비에 들어간다.

아시안컵에 대비한 선수 선발에 대해 홍 코치는 “베어벡 감독이 5∼6명 선수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면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팀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선수들에게 많은 기회를 줘야 한다”고 밝혔다.대표팀은 8월6일 파주 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에 소집되며 ‘1기 베어벡호’에는 유럽파를 제외하고 국내파와 J리거들이 대거 기용될 것으로 보인다.

유럽파가 빠지게 되는 1기 베어벡호에서 문제로 떠오른 포지션은 왼쪽 윙백. 이영표(토튼햄 핫스퍼)를 대신했던 김동진(제니트)이 러시아로 떠나면서 포지션 공백이 생기게 됐다. 이 자리에는 독일월드컵 예비명단에 이름을 올렸던 장학영(성남 일화)이 후보로 떠오르지만 베어벡 감독이 포백을 잠시 멈추고 스리백으로 복귀할 경우 빠질 수도 있다. 이을용(서울)이 K리그로 복귀하면서 김정우(나고야), 백지훈(FC서울), 김남일(수원 삼성), 김두현(성남), 송종국(수원) 등 막강 미드필더 라인을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은 베어벡 감독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또 최전방에도 조재진(시미즈 펄스)과 더불어 이천수(울산 현대), 정경호(광주 상무), 박주영(서울) 등을 활용할 수 있다. <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