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최강의 ‘탱고군단’…영원한 우승후보
2006-06-01 구명석
대회마다 우승 후보로 손꼽히기에 새삼스럽지 않다. 전통의 강호라는 후광도 있지만 전력 자체가 우승 후보로 평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하지만 C조에 속해 있는 아르헨티나는 오렌지군단 ‘네덜란드’, 아프리카 최강 ‘코트디부아르’, 철벽 수비의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등 그야말로 우리가 흔히 잘 알고 있는 ‘죽음의 조’다. 아르헨티나는 이번 독일월드컵에 임하는 각오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기대하고 있는 아르헨티나가 에르난 크레스포(첼시), 카를로스 테베스(코린티안스), 리오넬 메시(FC바르셀로나), 하비에르 사비올라(세비야) 등의 뛰어난 공격진을 앞세워 우승후보로서 명예회복을 할 수 있을지 다시 한번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 명단(23명)▶GK=로베르토 아본단시에리(보카 후니오르스), 레오 프랑코(AT 마드리드), 오스카르 우스타리(인데펜디엔테) ▶DF=로베르토 아얄라(발렌시아), 가브리엘 에인세(맨체스터 Utd), 파브리씨오 콜로치니(데포르티보), 가브리엘 밀리토(레알 사라고사), 니콜라스 부르디소(인테르 밀란), 레안드로 쿠프레(AS 로마), 리오넬 스칼로니(웨스트햄 Utd), 후안 파블로 소린(비야레알) ▶MF=하비에르 마셰라노(코린티안스), 에스테반 캄비아소(인테르 밀란), 루이스 곤살레스(포르투), 후안 로만 리켈메(비야레알), 파블로 아이마르(발렌시아), 막시 로드리게스(AT 마드리드) ▶FW=에르난 크레스포(첼시), 카를로스 테베스(코린티안스), 하비에르 사비올라(세비야),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 로드리고 팔라시오(보카 후니오르스), 훌리오 크루스(인테르 밀란)
‘발다노의 후계자’ 에르난 크레스포
아르헨티나의 86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던 스트라이커 호르헤 발다노는 은퇴 이후에도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과 단장직을 역임하며 축구계에서 심심치 않게 그 이름을 접할 수 있는 인물이다. 현역 시절에 파워풀하면서도 재기 넘치는 플레이를 펼쳤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 그에게 ‘후계자’라 칭할만한 선수가 90년대 중반에 나타났다. 리베르 플라테에서 무한한 잠재 가능성을 선보였고, 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는 득점왕을 차지하며 은메달을 목에 걸었던 ‘에르난 크레스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후 파르마에서 ‘스트라이커들의 무덤’ 세리에 A 리그 적응을 시작한 그는 상당한 실력을 뽐냈고, 1998~99 시즌에는 파르마를 3관왕(UEFA컵, 이탈리안컵, 이탈리안 슈퍼컵)에 이끌면서 많은 구단들로부터 러브콜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라치오로 ‘거액’을 받으며 이적한 뒤 인테르 밀란, 첼시 (AC밀란 임대 1시즌) 등을 거치며 활약하고 있고, 이미 세계적 거물로 성장했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그에게 발다니토(‘Valdanito)’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184cm, 79kg의 당당한 체격 조건을 갖추고 있는 크레스포는 얼핏 보면 전형적인 파워 스트라이커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재능이 미치는 영역은 더욱 광범위하다. 순식간에 수비수 2~3명을 제치는 개인기를 보여주기도 하고, 예측 불허의 상황에서 유연한 동작으로 슈팅까지 연결시키는 모습들은 보는 이들에게 마치 ‘시한폭탄’과도 같은 이미지를 선사한다. 크레스포는 98, 2002년 월드컵 때 팀 선배 바티스투타에게 밀려 주전으로 뛰지 못했지만 이번 독일 월드컵에서는 에이스로서 활약할 전망이다. 유연한 볼 컨트롤과 ‘일발필살’의 골 결정력을 발휘해 아르헨티나의 상위권 진출을 견인할 것으로 기대된다.
‘작은토끼’ 하비에르 사비올라
18살의 나이에 아르헨티나 프로 무대에 데뷔, 곧바로 득점왕에 오를 만큼 천재적인 출발을 보인 그는 프리메라 리가 데뷔 시즌에도 17골을 몰아치며 만족스러운 첫 시즌을 보냈다. 2001년 세계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서 아르헨티나의 우승을 이끌며 득점왕과 MVP를 독식, 국제무대에 화려한 등장을 알린 하비에르 사비올라는 이미 아르헨티나 리그 시절부터 각광받았던 준비된 신예였다. 그러나 2002~2003년 시즌에 이르러 루이스 반 할 감독의 스타팅 멤버에서 제외, 예상 밖의 시련을 겪어야 했으나 안티치 감독의 부임 이후에는 주전으로 복귀하여 클라이베르트와 함께 위력적인 투톱 콤비를 선보였다.
‘작은 토끼’라는 별명을 가진 사비올라는 168cm의 신장에 61kg이라는 왜소한 체구임에도 상대 수비수들의 압박에 쉽게 무너지지 않는 강한 보디 밸런스를 갖추고 있으며 거구의 장신 수비 숲을 흐트러놓는 무서운 속력과 간결하고 깔끔하게 볼을 다룰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도 자신보다 한 뼘 이상이나 큰 수비수들을 상대로 머리를 디밀고 끊임없이 전진 압박을 구사하는 모습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의 투지는 최전선에서 그의 체구를 전혀 작아 보이지 않게 한다. 그리고 20세가 채 되지 않은 나이에 아르헨티나 리그에서 88경기에 출장, 46골을 몰아친 골 결정력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그의 최대무기이다. 사비올라는 바르셀로나에서 활약한 3시즌 동안 105경기에 출장해 44골을 기록했다.
무서운 골폭풍을 몰아치며 바르셀로나의 후반기 상승세를 주도했던 사비올라는 2003~2004년 시즌에도 호나우딩요와의 하모니를 통해 리그 준우승을 주도하는 등 제 몫을 다해내는 모습을 보였다. 폭발적인 스피드와 간결하면서도 폭이 좁은 스텝을 동반한 드리블, 순도 높은 골 결정력을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골문 근처에서의 경이적인 기회 포착 능력을 갖추고 있다.다만 사비올라가 2006년 월드컵 대표팀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클럽레벨에서 좀 더 꾸준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다가오는 2005~2006 시즌이 사비올라의 축구인생에 있어 매우 중요한 시기가 될 거라는 사실이다.
‘폭발적인 선수’ 카를로스 테베스
카를로스 테베스는 적어도 포워드 포지션에 있어서는 현재 남미 최고급이고, 리오넬 메시가 따라올 수 없는 무게감이 더 느껴지는 선수다. 현재 ‘코린치안즈’에서 활약하면서 그들을 우승으로 이끌기도 했으며, 어린 나이에도 주장 완장을 찬 것 이상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팀을 떠맡을 수 있는 리더십과 책임감이 ‘득점력을 겸비한 선수’에게 주어진다면 그것은 그를 전설로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2003년부터 3회연속 남미 올해의 선수에 뽑혔다. 세계적인 축구의 대륙 남미에서, 그것도 호나우딩요(Ronaldinho), 카카(Kaka), 리켈메(Riquelme), 아드리아누(Adriano) 등 쟁쟁한 유럽파 선수들을 따돌리고 3회 연속 선수상을 수상했다는 것은 정말 그를 한마디로 ‘폭발적인 선수’라고 할 수 있다.
테베스의 가장 돋보이는 이력서는 바로 2004 아테네 올림픽 득점왕(8골)이다. 당시 그는 중요 순간마다 골을 터뜨리며 아르헨티나에 사상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안겨줬다.테베스의 문전에서의 움직임은 놀라울 정도로 상대 수비수들이 따라가기 힘들 정도의 순간적인 동작에 이은 슈팅을 보여준다. 게다가 이 작은 선수는 어찌나 위치 선정이 좋던지 세트플레이 시에 루즈볼을 골로 연결하는 것이나, 장신의 숲 속에서 껑충 뛰어올라 직접 헤딩으로 연결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들어온다. 화려한 슈팅 기술과 컴퓨터처럼 세밀한 슈팅 정확도는 월드컵에 출전할 공격수들 중에서도 톱클래스로 꼽힌다. 공격형 미드필더로도 뛸 수 있고 다양한 방식으로 공격작업을 전개, 리퀠메와 크레스포 사이의 연결고리 역할도 충분히 잘해주고 있으며 패스도 대단히 정확하고 빠르다. 이번 독일월드컵에서는 크레스포와 함께 투톱으로 나설 가능성이 높다.
‘제2의 마라도나’ 리오넬 메시
바르셀로나는 ‘될성부른 떡잎’ 리오넬 메시를 13살 때 이미 유소년 팀에 입단시키며 4년간 자신들이 직접 완벽한 성인 선수로 길러냈다. 2004년, 17살의 나이로 프리메라 리가 공식 데뷔전을 치른 그는, 2004~2005년 시즌에 챔피언스리그 1경기를 포함해 총 6경기에 출장해 1골을 기록했다. 메시가 국제적인 스타로 떠오른 것은 2005 세계 청소년 선수권 대회. 18세의 나이로 2년 후에도 세계 청소년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나이의 메시는, 자신보다 2살이 많은 선수들 가운데서도 에이스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아르헨티나 우승의 중심에 있었다. 메시는 우승으로 가는 길목에 최대 고비였던 라이벌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환상적인 선제골을 집어넣었으며, 나이지리아와의 결승전에서는 선제골과 결승골을 몰아치며 세계 청소년 선수권 대회 7경기에서 6골을 기록, 득점왕을 차지했다.
이어서 메시는 대회 MVP마저 수상, 우승컵을 비롯해 세계 청소년 대회의 개인 타이틀을 휩쓸며 최고의 별로 떠올랐다. 타고난 신체능력보다는 영리한 두뇌로 볼의 흐름과 상대 수비의 무게중심을 파악하고 스피드를 살려내는 능력, 남미 선수 특유의 빼어난 기술과 경기장 전체를 아우르는 넓은 시야와 그 시야를 바탕으로 한 촌철살인의 스루 패스 능력에 정교한 왼발 킥력까지. 그동안 아르헨티나 축구에 줄곧 혜성처럼 나타났다 힘없이 사라져갔던 ‘제2의 마라도나’라는 별명이 메시의 앞에서 마지막으로 사용될 것이라는 게 아르헨티나 축구 팬들의 중론이다. 최전방 공격수에서부터 처진 스트라이커, 왼쪽 윙, 공격형 미드필더까지 공격 포지션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그는 빼어난 기술을 가진 선수답지 않게 동료 선수를 이용한 간결한 패스 구사와 반 박자 빠른 템포 축구를 구사한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2004~2005 시즌, 알바세테와의 34라운드 경기에서 호나우딩요로부터 연결받은 스루패스를 환상적인 로빙골로 연결지으며 리그 데뷔골을 폭발시킨 메시는 바르셀로나 클럽 역사상 최연소 프리메라 리가 득점 기록을 세웠다. 2005~2006 시즌, 18세의 나이로 바르셀로나의 주전 공격수로 활약하며 눈부신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으며, 2006 독일 월드컵 출전의 물망에도 올랐다.
# 아르헨티나 연이은 ‘죽음의 조’ 편성 ‘울상’20년만의 정상탈환에 ‘올인’
화려한 공격진 내세워 징크스 탈출한다 남미최강 아르헨티나 축구는 1990년대 디에고 마라도나가 대표팀을 떠나면서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5위였던 아르헨티나는 스웨덴(당시 23위), 잉글랜드(6위), 나이지리아(28위)와 함께 ‘죽음의 F조’를 이뤘다. ‘득점기계’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에르난 크레스포 등을 앞세워 우승후보로까지 거론되던 아르헨티나는 잉글랜드에 0-1 패배를 당하며 조 3위(1승1무1패)로 16강 진출에 실패. 2006 독일월드컵은 4년을 기다린 아르헨티나를 또 다시 죽음의 조로 몰아넣었다.
아르헨티나는 우승후보 네덜란드(피파랭킹 3위), 아프리카의 복병 코트디부아르(32위), 유럽 지역예선 1위로 올라온 세르비아-몬테니그로(46위)와 함께 C조에 편성됐다. 아르헨티나는 지난 15일(한국시간) 23명의 독일월드컵 최종 명단을 발표하며 에르난 크레스포(첼시), 카를로스 테베스(코린티안스), 리오넬 메시(FC바르셀로나), 하비에르 사비올라(세비야) 등의 이름을 공격진에 포함시켰다. 또 이들의 득점을 도울 미드필드 라인에는 후안 로만 리켈메(비야레알), 파블로 아이마르(발렌시아) 등이 포함됐다.
다들 한번쯤은 ‘제2의 마라도나’라는 찬사를 받았던 선수들인 만큼 개인 기량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물론 선수만 보자면 “16강 진출을 걱정하는 팀이 맞나?” 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화려하다. ‘에르난 크레스포, 하비에르 사비올라, 카를로스 테베즈, 리오넬 메시’ 중 누굴 선발로 내세울지 호세 페케르만(57) 감독이 머리 좀 아프게 생겼다. 그만큼 선택의 폭이 넓다는 얘기다. 이렇듯 공격진만 봐도 아르헨티나가 죽음의 C조에 포함된 만큼 이번 독일 월드컵을 준비하는 자세도 남다르다.
아르헨티나의 호세 페케르만 감독은 4-3-1-2의 포메이션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최전방 투톱을 처진 스트라이커 개념의 공격형 미드필더가 지원하는 식의 공격라인을 구축하고 있다. 투톱 라인은 장신에 파워를 갖춘 크레스포와 화려한 개인기를 앞세운 테베스가 조합을 이룰 가능성이 크다. 크레스포는 올시즌 첼시에서 활약하며 10골을 성공시켜 팀 우승을 이끈 주역으로 문전에서 강력한 슈팅과 탁월한 득점 감각을 뽐낸다. 지난 2004아테네올림픽 득점왕 출신의 테베스는 최근 3년 연속 남미 최우수선수로 선정된 아르헨티나 축구의 미래다.
이 둘의 조합은 투톱의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의 궁합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바르셀로나의 주전 공격수로 활약하고 있는 메시와 엄청난 스피드와 골감각을 보유한 사비올라가 지키는 벤치진도 세계 정상급이다. 명실상부한 아르헨티나 축구의 에이스인 리켈메는 투톱 라인을 지원하며 공격의 첨병 역할을 한다. 리켈메는 날카로운 패스와 함께 정확하고 강력한 중거리슛 능력까지 지녀 브라질의 호나우딩요와 함께 이번 월드컵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꼽히고 있다.
리켈메의 활약 여부에 따라 아르헨티나 공격진의 무게감이 달라질 게 뻔하고 더 나아가 이번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의 운명이 좌우될 전망이다. 명예 회복을 노리며 막강한 공격력을 앞세워 우승에 도전장을 내민 아르헨티나. 네덜란드, 코트디부아르, 세르비아-몬테네그로 등의 강팀들과 또 다시 죽음의 C조에 속하는 불운을 맞았지만 1986년 월드컵 우승 이후 20년만에 다시 한번 세계 정상에 서겠다는 그들의 각오만은 하늘을 찌를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