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박축구는 ‘공통점’ 전술은 ‘큰차이’

2006-02-14     구명석 
2006년 독일월드컵에 대한 축구 팬들의 기대만큼이나 네덜란드축구 감독으로 세 번째 부임한 딕 아드보카트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또 아드보카트 감독이 한국 A대표팀 사령탑으로 부임하면서 거스 히딩크 감독과 비교하는 일도 부쩍 잦아졌다. 두 사람은 모두 네덜란드대표팀 감독을 역임했고, 강력한 카리스마와 지도력을 가지고, PSV 에인트호벤에서도 감독생활을 하며 국제무대 경험이 많은 면에서는 서로 공통점을 가진다. 그러나 지도방식이나 성격 등에서는 차이점도 있다. 그리고 더욱이 중요한 것은 주최국의 입장이었던 2002년 프로구단들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1백여 일이 넘는 소집기간의 혜택을 입었던 히딩크에 비해 아드보카트 감독은 1월 전지훈련 40여 일이 전부라는 면에서 차이점이 있다. 두 지도자의 특징을 항목별로 비교해본다.

선수현역 시절 공격형 미드필더 VS 수비형미드필더

딕 아드보카트 감독과 거스 히딩크 감독의 선수시절 두 사람 모두 ‘열심히는 했지만 크게 빛을 보지는 못하고 네덜란드대표팀의 오렌지색 유니폼을 입는 데는 실패했다. 그리고 아드보카트 감독은 수비형 MF로 네덜란드 1부리그 451경기에 출전했다. 선수시절 ‘황소’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키는 작지만 당당한 체구에 엄청난 체력과 저돌적인 플레이가 주 트레이드 마크였다. 히딩크 감독은 선수시절 공격형MF였다. 공격형 선수로서 빠른 선수는 아니었지만 영리하고 지능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스타일이었고, 지능적인 반칙에도 능했다. 당시 대표팀에 뽑히지는 못했지만 명문이었던 PSV 에인트호벤에서 선수생활을 할 만큼 꽤 재능이 있는 선수로 평가되고 있다.

성격 따져보고 실행 VS 실행하고 생각

선수시절의 이미지는 아드보카트와 히딩크 감독의 성격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네덜란드 언론에서는 아드보카트 감독의 캐리커처를 나폴레옹의 복장을 하고 있는 경우의 그림이 많다. ‘작은 장군’이라는 뜻의 별명 ‘리틀 제너럴’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지만 나폴레옹의 당당함과 다분히 다혈질적인 면모를 표현한 것이다. 그는 비판적인 여론에 대해서는 상당히 신경을 쓰는 편이며 자기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금세 얼굴을 붉힌다. 또 그는 자신의 의견을 끝까지 굽히지 않는 성격으로 일단 저질러 놓고 보는 스타일이다. 선수들도 상당히 엄하게 대하는 지도자로 잘 알려져 있다.

이에 비해 히딩크 감독은 상당히 유연하다. 물론 히딩크 감독도 강력한 카리스마를 자랑하는 지도자임에 틀림이 없는 만큼 자기주장이 강하고, 꽤 다혈질적인 구석도 있다. 그러나 아드보카트 감독과 확연하게 비교되는 부분은 자신의 감정을 좀체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궁지에 몰렸을 경우에는 재치를 발휘해 유머러스한 표현으로 종종 넘어가는 경우가 있고 정면대응을 피하는 스타일이다. 또 주위 참모들의 얘기를 경청하며 합리적이라고 판단하면 자신의 뜻을 접는다. 베어벡 수석코치의 인터뷰에서 “히딩크가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아드보카트는 먼저 실행에 옮긴다” 는 말과 통한다.

팀운영 및 전술훈련 전술 훈련 VS 체력 훈련

전술적인 면에서 보면 아드보카트 감독은 직선적인 성격과는 달리 팀 운영에 있어서는 상당히 안전위주의 팀 운영과 전술을 선호하는 스타일이다. 스타플레이어를 인정하며, 젊은 유망주를 유심히 지켜보고, 대표팀에 뽑기는 하지만 그들을 곧바로 그라운드에 올려 시험하는 모험을 즐기는 편은 아니다. 그리고 축구의 시작은 수비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어서 전술적인 면에서도 아드보카트 감독은 수비를 먼저 챙기는 스타일이다. 수비를 강조한다고 해서 꼭 수비적인 축구를 한다는 뜻은 아니며, 훈련시 공격보다는 수비전술에 더 많이 신경을 쓰는 편이다. 전지 훈련 출발 전부터 “늘 해오던 3-4-3도 좋지만 상황에 맞게 4백 수비도 쓰겠다” 고 했다.

전술을 즐겨 쓰고, ‘토털사커의 계승자’답게 강한 체력과 빠른 스피드를 갖춘 팀을 만들기 위해 애쓴다. 이러한 면은 아드보카트 감독과 히딩크 감독의 닯은 점이다. 반면 히딩크 감독은 선수선발이나 선수기용에 있어서 아드보카트 감독보다 휠씬 모험을 즐기는 스타일이다. 자신이 새로 뽑은 신인선수들에게 과감하게 기회를 주는 편이며 웬만한 비난에는 꿈쩍도 하지 않고 유망주가 경험과 기회를 갖도록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리고 히딩크는 5개월 남기고 체력 훈련에 주안점을 뒀다. 월드컵 직전 대표팀은 LA 현지에서 오전에는 그라운드에서 뛰게 하고 오후에는 호텔에서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체력 기르기에 주안점을 뒀다.

당시 1월 15일에는 공개적으로 선수들 체력 테스트를 실시하기도 했다. 반면 아드보카트는 상대적으로 전술훈련에 중점을 둔다. 이는 아드보카트가 체력을 소홀히 한다기보다는 훈련 기간과 상관관계가 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히딩크 시절에는 긴 시간 동안 선수들을 조련할 여유가 있었지만, 지금 남은 시간이 얼마 안 되고, 이 안에 모든 걸 해야 한다.” 아드보카트는 오전, 오후 모두를 그라운드에서 전술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두사람 모두 ‘정신력 강조’강력한 카리스마로 팀 장악


히딩크 감독이 월드컵 4강을 이룰 수 있었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바로 그라운드 어느 곳을 가리지 않는 압박 축구의 힘이었다. 체력 훈련에 중점을 두며 상대보다 한발 더 뛰게 한 히딩크 감독은 미드필드에서 강한 압박을 통해 볼 점유율을 높이므로 결국 승리로 팀을 이끌었다. 그러나 2002년 월드컵이 끝난 이후 쿠엘류와 본프레레 감독을 거치면서 선수들의 정신력이 무뎌지면서 한국축구에서 압박이 사라졌다. 즉, 선수들이 적극성을 가져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압박의 전제조건을 보면 히딩크 감독과 같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가 필요했다. 특히 한국대표팀 감독으로 네덜란드 압박축구의 후계자인 아드보카트 감독이 부임한 것은 더할 나위없는 탁월한 선택이란 게 축구계의 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