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노성일에게 처절하게 당했다”
2006-02-15 이수향
두 사람의 ‘악연’은 1998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업이 바빠 독신으로 살던 한씨에게는 항상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TV에서 노씨의 병원광고(당시 영동제일병원)를 보게 된 한씨는 ‘내 아이를 가질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으로 그해 10월 12일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당시 임신 가능 여부에 대해 노씨는 ‘난소를 절제해 그 속에 있는 난소 세포를 이용해 남성 정자와 수정시켜 임신하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고 한다. “환자분은 일을 하다 임신하는 것이 늦었다니 마침 좋은 방법이 있는데 시도 한번 해 볼래요?”“어떤 방법으로 시도하는 건데요?”“방법은 간단해요. 난소를 적출해서 그 속에 있는 난소 세포를 연구한 다음에 그 부분에 남성 정자를 결합하여 다시 환자 몸속에 임신시키는 거예요.”
야누스의 얼굴 ‘청천벽력’
엄마가 될 수 있다는 희망에 한씨는 노씨의 권유대로 난소를 제거하고 정자를 냉동보관하는 등의 조치에 응했으나, 그 이후 노씨는 연구나 시술에 대해 연락조차 없었다. 기다리다 못해 2005년 9월 7일 노씨를 찾아갔으나, 그는 쳐다보지도 않으며 마치 빚독촉하러 온 사람 대하듯했다는 것. “선생님, 연구는 어떻게 되어가는 거죠?”“무슨 연구요?” 끝까지 고개조차 들지 않고 그는 무슨 생뚱맞은 말이냐는 듯 응대했다.“제 난소 떼서 연구하신다는 거 말이에요. 너무 오래 지나지 않았나요?”“어허… 이봐요. 그런 연구는 있을 수 없어요. 난소를 떼서 연구하는 건 불법이에요.”무슨 소리란 말인가. 이제 와서 뭐가 불법이고 왜 안된다는 건가.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뭐가 불법이란 거죠?” ‘잘못 들은거겠지’ 나는 억지웃음을 띠며 되물었다.
“난소를 떼서 거기에 남성 정자를 넣는다는 그 자체가 불법이에요. 나는 일만 벌이고 원래 수습은 안 해요. 그까짓 거 불법 안하는 사람 어디 있나요. 불법하고 해결하는 방법이 있지 않습니까.” 이죽거리며 말하는 노 원장을 보면서 미칠 것 같은 심경을 억누를 수 없었다.“아프지도 않은 난소를 노원장님이 권유해서 떼어 냈고, 연구를 기다리다 너무 지쳤어요.”“참 내… 떼어 낸 거 폐기처분하는데도 돈 들어요. 폐기처분 안한 것 만해도 고맙게 생각해요.” 한씨는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토록 태연스럽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라며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더 이상 임신을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한 한씨는 자신의 진료기록을 가지고 다른 병원을 찾았다가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난소뿐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팔관까지 적출당했다는 사실이었다.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에 노씨를 믿고 8년을 기다린 대가는 참혹했다.
나는 마루타가 아니다
한씨는 노이사장을 ‘한 여자의 절박한 소망을 이용해 일생을 무참하게 짓밟아 버린 사람’이라며 ‘내 인생의 파괴자이자 인권마저 마음대로 도륙한 용서받지 못할 인간’이라고 말하고 있다. 자신의 몸은 그동안 마치 물건처럼 다뤄졌으며, 인체실험으로 사용됐다는 생각마저 들었다는 것이 한씨의 고백이다. “멀쩡한 난소를 노원장의 권유대로 떼어 주고 3,000일이 넘는 시간을 벙어리로 살았다”는 한씨는 “난소를 떼어 낸 후 후유증에 시달리면서도 아기가 생긴다는 희망 하나로 참아왔으며, 노원장이 이야기하던 연구성과가 TV에 나올 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그는 현재 “과배란제 후유증으로 심신이 피폐해지는 상황에서도 노씨를 믿고 의지했던 결과가 고작 이런 것이었단 말인가”라며 끓어오르는 분노와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노씨의 추악한 행태에 침묵할 수 없다
한씨는 난소를 증여 혹은 기증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임신을 시켜 준다는 조건으로 한 조건부 적출”이었다는 것. 그러나 시술의 일인자임을 자신하던 노씨는 태도를 바꿔 단 한번의 시술시도조차 해보지 않은채 ‘불법’이란 말만 했다고 한다. 현재 진행중인 소송건에 대해 노씨는 말을 아끼고 있다. 그는 “당시 44살이었던 한씨에게 ‘폐경을 앞둔 고령이라 시험관 아기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했으며 “‘앞으로 난소세포를 이용해 수정하는 기술이 발전하면 가능성이 있다’는 말에 한씨가 난소 채취에 동의한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한씨는 “어느 누가 희망 없고 가능성 없는 일에 자신의 중요 부분을 떼어 주는 오류를 범하겠는가”라고 반박하고 있다.난생 처음으로 자살까지 생각했다는 한씨는 “노원장은 의사로서 최소한의 양심도 없으며,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도 없는 사람’이라 비난했다. “노원장의 추악한 행태를 여성이라는 점 때문에 부끄러워 표면화하지 못했다”는 그는 “숨어서 흐느끼고 있을 피해 여성들을 위해서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자신의 소송이 금전적인 목적이 아니라고 강조한 한씨는 “그의 만행과 인권에 대한 유린을 세상의 심판대에 올려야 했다. 그의 진심어린 참회의 눈물과 사죄를 받아 낼 때까지 나는 이 모든 상황들을 이겨낼 것”이라고 전했다.
위기의 노성일
한씨가 낸 소송은 아직 진행중으로 진위는 가려지지 않은 상태. 지난해 12월 중순, 서울대조사위의 중간보고 발표이후 노이사장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이 나라의 도덕이 바로 서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한씨의 주장대로라면 ‘도덕’을 강조했던 노이사장은 ‘모성’의 본능을 이용, 애초부터 임신시킬 의사와 능력도 없으면서 거짓말을 해, 한 여성의 소중한 꿈을 부수고 발뺌하는 세상에 둘도 없는 ‘파렴치한’인 셈이다. 한씨의 말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노씨가 불임시술의 최고 권위자로 쌓아온 명성은 물론 도덕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될 것이 분명하다. 최악의 경우 노씨는 의사로서는 물론 사업가로서도 ‘사형선고’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 한씨가 밝히는 판교프로젝트 ‘실체’“판교프로젝트 로비스트 활동 제안받았다”
한씨는 노씨가 자신에게 ‘재미있는 제안’을 했다고 밝히고 있다. 한씨가 세계를 무대로 하는 글로벌 기업인이라는 점, 재산이 상당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던 노씨는 ‘판교에 유명행정인사와 생명공학연구소를 세우려고 하니 로비스트로 활동을 해 달라’는 부탁을 했왔다는 것. “판교라는 지명에 생소했던 내게 노원장은 그 지역 행정인의 이름을 들먹거리며 나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해외로부터 펀딩을 받는 것은 시간문제니, 나에게 100억만 투자하라고 끊임없이 종용하기도 했다.”한씨는 황교수가 밝힌 ‘판교 로비설’에 대해 ‘충분히 그랬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자신의 병원을 찾아와 진료를 받는 환자에게 그런 제안을 하는 사람이라면 ,황교수는 ‘골든 키’와 같은 존재였을거라는 것.
최근 판교프로젝트는 구체적인 내용이 적힌 노씨의 자필 메모장이 공개되면서 그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2004년 7월경 노씨는 한씨에게 판교프로젝트 내용이 담긴 15장 분량의 자필 메모를 건넸다. 이는 한씨의 수기에도 나와있듯 투자금을 유치하려는 목적이었다.메모장은 2만평을 경기도로부터 헐값으로 불하받아 1,100억원 규모의 영리법인 병원을 세운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는데, 프로젝트의 전모를 포함, 국내외 투자유치자 명단, 1천억원대에 달하는 투자자금 분담내역, 성남시장과 경기도 손학규 지사를 움직이기 위한 로비법까지 나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씨는 외자유치를 부탁하는 과정에서 ‘손학규 경기도지사는 선친이 아끼던 사람이고 나와 경기고 동문’이라며 친분을 과시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씨의 말을 믿은 한씨는 일본의 한 건설업체 회장을 상대로 투자유치에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고. 일본에서 마당발로 통하는 회장은 ‘손지사가 참여하면’이라는 전제조건을 내걸고 투자유치에 참여할 뜻을 내비쳤다고 한다. 그러나 노씨는 지난 7월 21일 경기도 경제투자관리실 이재율 투자진흥관을 만나 판교프로젝트를 설명하며 손지사와의 면담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것들이 모두 사실이라면, 노씨는 한씨를 상대로 부적절한 임상실험을 한 것도 모자라, 실체도 없는 판교프로젝트 투자금 유치를 위해 로비까지 벌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