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빨 빠진 호랑이를 깨워라!

2007-07-05     남장현 
야구 명가 KIA 타이거즈의 추락
“대체 뭐가 문제다냐…. 옛날 호랑이는 어디 갔는가?” KIA 팬들의 푸념이다. 한국 프로야구를 호령한 전통의 명문 KIA 타이거즈에선 더 이상 위용은 찾아보기 힘들다. 페넌트 레이스 반환점을 찍은 6월 말까지 KIA는 66경기를 치러 25승(40패 1무)밖에 챙기지 못하며 최하위를 달리고 있다. 승률이 0.385에 불과, 4할에도 못 미친다. 올 6월은 KIA에 악몽이었다. 지난 6월24일 잠실에서 열린 두산과의 경기에서 11-2 승리를 거둘 때까지 7연패를 거듭, 끝없는 추락을 맛봤다. 15억원이 넘는 거액에 영입한 최희섭의 부진도 여기에 한몫했다. 올 시즌 꼴찌는 이미 결정됐다는 혹평도 피하기 어렵다. 이빨도, 발톱도 모두 빠진 약골 호랑이, KIA는 언제쯤 되살아날 수 있을까.



◆ 최희섭, KIA 함께 죽었다

부산(롯데)과 함께 국내 프로야구 최다 팬층을 자랑했던 광주는 요즘 우울하다. 이곳을 연고로 둔 KIA 타이거즈의 부침이 계속되는 탓이다. 흔히 특정 팀의 부진을 언급할 때 ‘원인모를’이란 수식이 붙지만 KIA의 경우는 워낙 뻔해 4할에도 못미치는 승률이 더욱 쑥스럽다.

특히 KIA 유니폼을 입자마자 부상으로 엔트리서 빠진 최희섭의 영향이 컸다는 지적이다.

작년까지 MLB서 활약한 최희섭을 모셔오기 위해 KIA가 지불한 금액은 총 15억5000만원. 빠듯한 살림에 이같은 액수를 지급한 것은 단순히 마케팅 효과를 원한 이유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성공으로 여겨진 최희섭 영입은 대실패였다. 그는 이렇다할 활약없이 곧바로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타순을 바꿔가며 최희섭을 배려한 서정환 감독도 머쓱해한다. 최희섭이 1군에서 빠지자 예전 타순으로 되돌렸지만 오히려 팀 분위기만 해치는 결과를 낳았다.

단장부터 말단 직원까지 KIA 프런트들은 최희섭 관련 얘기나 기사만 나오면 화들짝 놀랄 정도로 극심한 노이로제에 시달린다. 한 프런트는 “최희섭 소식이 인터넷에 오르는 게 가장 무섭다”고 하소연한다.

코칭스태프도 할말이 없다. 그저 “후반기나 돼야 복귀할 것 같다”고 앵무새처럼 반복할 뿐, 정확한 복귀 시일을 말하길 꺼려한다. 한 코치는 “1군에 와도 (주전을)솔직히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해설위원, 기자 등 대다수 전문가들은 최희섭이 최소 두 자릿수 홈런과 함께 2할8푼 이상의 타율, 100타점 이상을 해줘야 본전으로 생각한다. 적어도 용병만큼은 해야 한다는 것.

티 베팅으로 조금씩 감각을 조율하던 최희섭은 25일부터 본격적인 프리베팅을 시작했다. 컨디션이 90%까지 올라왔단다. 하나 체중이 문제다. 타격코치는 “앞으로 10kg 이상 줄여야 한다”며 고개를 내젓는다. 정상이 아니란 의미다. 복귀해도 몸쪽 볼에 약한 최희섭이 변화구가 잦은 국내 무대서 제 몫을 하기란 어렵다.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게 허무한 결론이다. 결국 자신감 잃은 호랑이의 중심에는 최희섭이 있었다.


◆ KIA만의 색깔을 찾아라

때아닌 ‘색깔론’에 휘말린 KIA다. 누구에게 물어봐도 대답은 똑같다. 올시즌 KIA는 자신들만의 독특한 특성을 잃어버렸다. 끈끈하고 화려한 팀 플레이, 강한 응집력과 ‘누구에게도 지지 않겠다’는 정신력은 해태 시절부터 내려온 그들만의 자랑스런 전통이었다.

하지만 KIA는 시즌내내 부진과 추락을 거듭하며 광주 팬들에게 희망은커녕 실망을 안겨주고 있다. 공식 홈페이지, 팬 카페, 포털사이트 게시판 등을 보면 온통 선수들과 코치진, 프런트를 비롯한 스태프를 성토하는 글들로 가득하다. 부산의 롯데가 자주 그들의 비교대상이 돼 KIA 관계자들의 마음을 더욱 아리게 한다.

최근 한 유명 포털사이트 스포츠 게시판에는 ‘KIA, 광주의 이름에 먹칠하지마라’는 제목의 장문의 글이 올라와 한동안 누리꾼들 사이에서 회자됐다. 작전 실패를 거듭하고, 연전 연패하는 모습이 마치 연예인 야구리그를 보는 것 같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심지어 일부 열성팬들은 서정환 감독의 경질을 가정한 채 자신들이 직접 코치진을 선발하는 등 자신들의 안타까운 심경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팬들의 불만은 온라인상에 그치지 않고, 오프라인서도 이어졌다. 두산과의 원정 3연전이 열린 24일 잠실구장에는 한 대형 걸개가 내걸려 KIA 코치진과 선수들을 자극했다. 지난 04년 선수 구타와 관련한 불미스런 일로 팀을 떠난 옛 사령탑 김성한 MBC-ESPN 해설위원을 그리는 「호랑이 명 조련사-김성한」이란 대형 플래카드가 장식된 것.

당시 현장에는 김 전감독도 해설을 위해 찾아와 묘한 분위기가 감지되기도 했다. 당연히 KIA는 졌고, 7연패에 빠졌다. 25일 모처럼 타선이 폭발해 9점차 승리(11-2)를 했으나 여운은 계속됐다.

사실 광주 팬들이 타 지역에 비해 극성스러운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지역 고교팀이 10개가 넘을 정도로 야구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스타들도 맥을 이어 꾸준히 배출된다. 프렌차이즈 스타 최희섭을 영입한 것도 이에 기인한다.

그러나 올시즌은 최악이다. 평균 4000여명을 간신히 웃돈다. 때론 3000여명도 채 안될 때도 있다. 프로야구 인기가 되살아났다지만 광주와는 관계가 없다.

이날 두산전을 지켜본 KIA의 한 열성팬은 “팀이 우리가 뭘 원하는지 잘 모르고 있다”고 전제한 뒤 “패배나 우승은 중요하지 않다. 예전의 끈끈한 타이거즈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그리고 재미있는 야구를 한다면 불만이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또다른 팬은 “구타나 폭력은 당연히 사라져야 한다”면서도 “불미스레 팀을 떠난 이순철과 김성한 등 왕년 스타들을 바라는 것은 이들이 무너진 KIA의 위상을 되살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 밝혔다.

부진한 팀 성적도 아쉬우나 KIA는 결코 없어선 안될 ‘팬들의 사랑, 관심’이란 부분까지 조금씩 잃어가고 있다.


◆ 서정환 리더십 논란

“대체 어떤 부분을 강조하고, 어디로 방향을 잡고 있는지 통 갈피가 안잡혀요.”

올시즌 KIA의 경기를 지켜본 야구팬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박진감 넘치는 승부는 옛 추억으로 남았을 뿐, 이젠 KIA의 플레이는 역대 최악으로 비쳐진다.

한국 축구가 부진할 때마다 책임론에 휩싸이는 베어벡 감독처럼 KIA의 지휘봉을 잡고 있는 서정환 감독의 리더십이 가장 먼저 도마에 올랐다.

지역색 강한 전라도 팬들과 선수들을 사로잡는 카리스마가 부족하다는 평가가 심심찮게 나오고, 온화하고 부드러운 지도자는 KIA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얘기도 종종 들려온다.

4강 진입이란 목표가 거의 불가능해진 냉혹한 현실에 스트레스가 극심했을 터. 두산전을 앞두고 잠실구장서 만난 서 감독은 “팀 분위기가 조금씩 좋아진다”고 애써 웃음을 보였지만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KIA가 정말 안풀린다는 사실은 6월7일 두산과의 광주 홈경기 도중 나온 한 장면에서 살필 수 있었다. 평소 점잖은 이미지의 서 감독은 심판 판정에 불복, 배트를 부러뜨리고 의자를 집어던지며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결국 퇴장. 이 모습은 TV 화면에도 그대로 잡혀 한동안 아구계 핫이슈가 됐다.

수년째 KIA를 취재해온 한 기자는 “서 감독은 05년 10월 사령탑에 오른 뒤 선수들을 리드하는 통솔력과 모험을 감수하는 승부사 기질이 부족했다”면서 “이날 그의 행동은 일부러 연출한 행동”이라고 평가했다.

실패한 세대교체도 KIA 부진에 영향을 끼쳤다. 구단은 최근 몇해 동안 이종범, 심재학, 김종국 등 고참들의 쇠퇴를 바라만 봤다. 1~2군을 오가는 멤버 몇몇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성적을 끌어올리는데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여전히 이종범이 뛰는 모습은 광주 팬들에게 절망으로 다가온다.

확실한 원투 펀치도 없고, 경기의 맥을 짚는 포수도 없다. 물방망이 타선도 서글프다. 꾸준히 두자리 승수를 올려 에이스로 자리매김한 김진우의 잦은 부상은 투수 로테이션에 치명적이었다. 주전 포수 김상훈은 볼배합이 제대로 안된다. 2년차 투수 윤석민이 선전하나 그가 등판할 때면 공교롭게 타선은 늘 침묵한다. 평균 타율 1.68. 타선이 2점을 못따는데 별 도리가 없다.

조범현 전 SK 감독을 수석코치로 영입하고 서 감독을 제외한 나머지 코치진을 모두 교체했어도 ‘탈꼴찌의 꿈’은 멀게만 느껴진다. 한 해설위원의 지적이 정곡을
찌른다.

“1승 이후 5연패, 다시 1승 뒤 7연패를 하는데 무슨 해답이 있습니까. KIA는 시즌을 포기하더라도 확실한 중장기 플랜을 작성해야 해요. 시간을 너무 지체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