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영-AS모나코 ‘물밑협상’ 내막
2008-09-11 이수영 기자
‘축구천재’ 박주영(23)의 AS모나코행을 도운 인물이 따로 있다? 베이징 올림픽 예선탈락으로 자존심을 구긴 박주영이 르샹피오나(프랑스리그) 진출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런 가운데 극비리에 이뤄진 박주영의 전 소속팀 FC서울과 AS모나코의 협상과정을 놓고 갖가지 뒷말이 적지 않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AS모나코 구단주와 절친한 한국인 사업가가 박주영을 한국 축구계의 유망주로 추천한 끝에 이적이 성사됐다는 주장이다. 지난 5월 중순경 한 유명 축구관련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온 관련 내용은 박주영의 프랑스행이 확정된 뒤 뒤늦게 축구팬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이 글을 작성한 네티즌에 따르면 AS모나코 구단주에게 박주영을 소개한 한국인 사업가는 축구 지식이 거의 없는 일반인이다. 소식을 접한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AS모나코 정도의 명문구단이 아마추어 추천에 수십억원을 쏟아 부었다는 건 말도 안 된다’는 입장과 ‘언론에서조차 언급이 없던 특정 팀의 영입 포지션과 당사자를 수개월 전에 정확히 맞춘다는 게 가능한 일이냐’는 주장이 맞서 치열한 논쟁이 한창이다.
해당 게시물은 지난 5월 21일 인터넷에 올라왔다. ‘pitto’라는 이름의 네티즌이 작성한 글은 AS모나코에서 뛸만한 한국의 젊은 공격수를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담고 있다. 글쓴이의 지인인 한국인 사업가 A씨가 평소 사업관계로 가까운 AS모나코 구단주에게 직접 한국선수 추천을 부탁받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석 달 전 징조 있었다
글쓴이는 “AS모나코 구단주가 한국 선수에 관심 있다고 해 축구지식이 얕은 A씨가 당시 국가대표로 유명한 ‘모 선수’(박주영)를 추천했다”며 “하지만 요즘 그 선수(박주영)의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아 더 나은 유망주를 회원님들이 추천해 달라”고 적었다.
축구팬들은 프랑스 명문팀 AS모나코를 언급하는 글에 진위여부를 반신반의하면서도 유망주 추천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었다. 이상호, 이청용, 이근호, 조동건 등 K리그에서 두각을 드러낸 젊은 선수들의 이름이 거론됐다.
그럼에도 가장 유력한 후보로 낙점 받은 것은 역시 박주영이었다. 2005년 세계청소년대회를 거쳐 K리그 신인왕 수상과 2006 독일월드컵을 경험한 객관적인 커리어가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이다.
글쓴이에 따르면 AS모나코가 원하는 인재는 ▶스트라이커(공격수)이며 ▶잠재력 있는 젊은 선수였다. 제법 구체적인 조건과 선수실명이 거론된 탓에 박주영의 AS모나코 입단이 확정된 시점보다 무려 3개월이나 앞서 작성된 이 글에 촉각이 곤두서는 것은 당연하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AS모나코가 박주영의 소속팀인 FC서울에 영입의사를 타진한 시점은 지난 6월. 처음 문제의 글이 올라온 시점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지난 1일 박주영의 AS모나코 입단이 확정된 직후 이 게시물은 조회수 1만4700회를 넘길 만큼 큰 관심을 끌었다. 축구팬들은 해당 게시글을 ‘박주영 앞날을 예언한 성지글’ ‘신에 가까운 예지력’이라고 치켜세우며 열광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에이전트는 “감독, 코칭스텝과 상의 없이 구단주가 일반인의 추천만 믿고 선수를 사들이는 일은 불가능하다”면서도 “구단주가 추천을 근거로 구단 소속 에이전트를 통해 객관적인 검증을 받은 뒤 영입 물망에 올렸을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AS모나코가 나를 택했다”
반면 FC서울 측은 “전혀 근거 없는 낭설”이라고 선을 그었다. 서울구단 관계자는 “지난 6월 AS모나코로부터 영입 의사가 있다는 뜻을 전달 받은 것은 맞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주영의 해외진출에 한국인 사업가 추천이 있었다는 말은 금시초문”이라고 밝혔다.
박주영의 해외진출 가능성은 유럽리그의 여름 이적시장 마감일을 일주일여 앞둔 지난 8월 말부터 불거지기 시작했다. 잉글랜드의 위건 어슬레틱이 박주영의 영입 가능성을 언론에 흘리면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 것.
위건은 한국 기업을 스폰서로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내년 초나 여름 쯤 박주영을 데려가겠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밝혔다. 위건의 이런 작태는 한국에서 스폰서를 얻기 위한 얄팍한 상술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일각에서는 갑작스런 위건의 ‘액션’에 AS모나코가 자극을 받아 생각보다 빠르게 계약이 성립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박주영 본인도 지난달 31일 프랑스로 떠나기 전 인터뷰를 통해 “갑자기 연락이 와 당황스럽다”는 반응이었다. 9월 1일 이적시장 마감 시한 직전에 계약이 급물살을 탔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일부 언론은 박주영이 계약을 마무리 짓기 위해 베이징 올림픽 경기를 마친 뒤 두 번 정도 프랑스를 찾았다고 보도했지만 FC서울은 이마저도 부인했다.
서울 구단의 또 다른 관계자는 “공항 출입국 사무소에 알아보면 금방 사실을 확인 할 수 있다. (박주영이)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프랑스를 오갔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박주영의 모나코행과 관련해 일련의 사실을 정리하면 이렇다. 지난 6월 젊은 스트라이커를 원하는 AS모나코가 한국의 박주영을 유력한 물망에 올리고 FC서울과 접촉했다. 올림픽 참가로 여유가 없는 박주영 본인 대신 소속팀 FC서울과 담당 에이전트가 극비리에 약 2개월에 걸쳐 협상을 마무리 지었다.
지난달 말 잉글랜드 위건이 언론을 이용해 박주영 쟁탈전에 끼어들었지만 이미 박주영 측의 마음은 AS모나코로 완전히 기울어 있었다. 지난달 31일 ‘세부 계약 사항을 조율하러 떠난다’는 명목아래 박주영은 모나코행 비행기를 탔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박주영의 AS모나코 이적은 완전 합의가 이뤄진 상태였다. 즉, 박주영의 모나코행은 언론에 보도만 안됐을 뿐 수개월 전부터 진행된 사항이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한편 박주영은 모나코 현지 인터뷰를 통해 “내가 팀을 선택한 게 아니다. AS모나코가 날 선택했다”고 밝혔다.
AS모나코와 4년 동안 연봉 40만유로(약 6억5천만원)에 계약한 박주영은 200만유로(약33억원)의 이적료를 전 소속팀에 안겨주며 톡톡한 이름값을 해냈다. 더구나 팀에서 받은 등번호는 10번. 이는 전통적으로 팀의 간판 공격수에게 주어지는 배번이다.
‘한국인의 무덤’서 살아남기
이런 기대감에 발맞춰 박주영은 이달 초 일시귀국 하려던 계획을 바꿔 곧바로 AS모나코의 실전 훈련에 투입됐다. 박주영을 영입하기 전까지 4경기에서 3골을 터트리는데 그칠 정도로 ‘킬러’에 목마른 AS모나코 공격진은 젊은 선수들을 주축으로 하고 있다. 이들의 평균연령은 19.8세.
상대적으로 경험은 적지만 이들은 모두 각국 청소년 대표를 거친 걸출한 신예다. 그만큼 박주영의 주전경쟁은 상당히 험난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올 시즌 연속 선발출전 기록을 세우고 있는 프레드릭 니마니(19·프랑스)를 비롯해 파블로 피뇨(21·콜롬비아), 미국의 ‘축구신동’ 프레디 아두 등이 박주영의 경쟁상대다. 박주영은 빠르면 14일 FC로리앙과의 5라운드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를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리그를 뜻하는 ‘르샹피오나’는 한국선수들에게 있어 쉽지 않은 무대다. 르샹피오나에 진출한 한국인 선수는 최순호 울산미포조선 감독을 비롯해, 서정원, 이상윤, 안정환 등이 있다. 박주영은 르샹피오나에 진출한 다섯 번째 한국인 선수다.
그러나 앞선 선배 공격수들이 별다른 성적을 거두지 못한 채 귀국길에 오르는 바람에 르샹피오나는 ‘한국선수의 무덤’으로 불릴 만큼 코리안리거와 질긴 악연을 자랑한다.
최순호 감독은 지난 1992~ 1993시즌 프랑스 2부리그 소속 레데즈에서 18경기 2골을 터트렸고, 서정원은 그 뒤를 이어 1997년 한국선수 최초로 프랑스 1부리그 무대를 밟았다. 스트라스부르 소속의 서정원은 데뷔전인 올림피크 리옹과의 경기에서 첫 골을 터트리며 성공적인 신고식을 치렀다. 그러나 1998~1999시즌 감독이 교체된 뒤 출전기회를 잡지 못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의 주역 이상윤은 FC로리앙에 입단해 화제가 됐다. 하지만 불과 4경기에 불과한 초라한 출전기록만을 남겨 실망감을 안겼다.
반면 안정환은 르샹피오나에서 가장 안정적인 활약을 펼친 한국인 선수다. 2000년 페루자에 입단해 2002년 한일월드컵 직후까지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했던 안정환은 일본 J리그를 거쳐 지난 2005~2006 시즌 FC메츠에 입단했다.
그러나 리그 개막전에서 재기골을 터트리며 성공적인 두 번째 유럽진출의 성공신화를 쌓는 듯 보였음에도 그의 활약은 오래가지 못했다. 리그적응 실패와 팀 텃새로 갈 곳을 잃은 안정환은 시즌 중 독일 분데스리가를 거쳐 지난해 한국무대로 돌아온 바 있다.
모나코 이적 전까지 한국에서 긴 슬럼프의 시간을 보낸 박주영은 축구인생에서 엄청난 전환점에 서있다. IQ150의 천재는 ‘한국인의 무덤’에서 어떤 생존전략을 펼쳐 보일까. 올림픽 졸전으로 싸늘한 국내팬의 마음을 달굴 천재의 부활이 어느 때보다 기대되는 가을이다.
#르샹피오나와 AS모나코, 정말 명문일까
박주영이 뛰게 된 프랑스 리그 르샹피오나와 AS모나코의 수준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르샹피오나는 자국에서 치러진 98년 월드컵 우승과 유로2000 재패 등의 기록에서 보듯 1990년대~2000년 초반까지 세계 축구 최정상급에 속했다.
르샹피오나는 세계 3대 축구리그로 꼽히는 프리미어리그(잉글랜드), 프리메라리가(스페인), 세리에A(이탈리아)에 비해 수준은 열세지만 클럽시스템과 프로그램 면에서 축구 선진국으로서의 면모를 완벽하게 갖췄다고 볼 수 있다.
20개 팀이 격돌하는 르샹피오나에서도 AS모나코를 비롯해 파리 생제르맹FC(PSG), 올림피크 리옹, 올림피크 드 마르세유 등이 명문으로 꼽힌다. 특히 AS모나코는 정규리그 7회 우승(준우승 5회), FA컵 5회 우승(준우승 4회), 리그컵 1회 우승(준우승 1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1회 등 다수의 우승 경력을 갖춘 전통의 명가다.
AS모나코를 거쳐 간 스타플레이어로는 단연 티에리 앙리(21·바르셀로나FC)가 최고로 꼽힌다. ‘프랑스 킹’으로 꼽히는 앙리는 98프랑스 월드컵 우승 주역으로 ‘아트사커’의 핵심멤버였다. 45골로 프랑스대표팀 가운데 최다골 기록을 세운 앙리는 지난해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앙리 뿐 아니라 이탈리아 유벤투스에서 뛰고 있는 트레제게(프랑스)와 스페인 발렌시아 멤버인 페르난도 모리엔테스(스페인), 2006년 아스널로 이적한 아데바요르(토고) 역시 AS모나코 출신 빅리거다.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