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해안포 사격 가려진 진짜 속내

이명박-김정일 극적 만남 ‘극대화 전략설’

2010-02-01     윤지환 기자

북한이 지난달 27일 오전과 오후, 저녁에 걸쳐 백령도와 대청도 인근 북방한계선(NLL)의 북한쪽 해상으로 100여 발의 해안포를 발사해 남북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정부는 북한의 해안포 사격을 정치적 목적을 띤 ‘통상적인 행위’로 규정하고 차분하게 대응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하지만 이번 포사격은 전례 없이 많은 수가 발사돼 청와대와 국방부는 내심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는 분위기다. 중요한 것은 북한이 왜 여러 차례에 걸쳐 포사격을 가했는가하는 점이다. 일각에선 긴장 고조를 통해 미국을 ‘평화협정 회담’의 테이블로 끌어내려는 의도라고 분석하고 있다. 또 다른 일각에선 NLL의 긴장 조성은 미국이나 남한이 아닌 중국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서해상 포사격으로 국제사회의 이목이 한반도로 쏠리고 있는 가운데 북한군 총참모부는 사격훈련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경우에 따라 한동안 진전되는 듯 보였던 남북관계가 다시 급냉각 될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는 북한이 이날 오전 포사격 당시 백령도와 대청도 인근 NLL 북한쪽 해상에 각각 20~30여발을 쏜 것으로 보고 있다. 오후에도 수십 발의 포성이 식별되어 100여발 가량을 발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이 NLL을 향해 해안포를 발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이 실탄 포사격을 했다고는 하지만 사격지점으로만 보자면 지금까지 사실상 큰 문제는 없다.

합참 관계자는 이날 “북한군이 오늘 오전 9시 5분부터 10시 16분까지 해안포 30여 발을 백령도와 대청도 인근 NLL 해상으로 발사했다”며 “탄착지점은 전날 북한이 선포한 2곳의 항행금지구역내이며 NLL로부터 북한 해상 1.5마일 가량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또 군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북한의 포사격이 NLL 이남으로 탄착된 정황은 포착되지 않았다. 말하자면 남측에 크게 위협이 되는 정도의 사격은 아니라는 것이다.


‘일제타격식’ 포사격 의도

북한은 백령도와 대청도, 연평도 사이 NLL로부터 2~2.7km의 북한 해상 수십 곳에 100여발의 각종 포탄을 쏟아 부었다. 이를 TOT(일제사격) 방식이라고 하는데, 이들 지점에는 130mm 해안포(사정 27km)와 240mm 방사포(사정 60km), 170mm 자주포(사정 54km) 등이 동시에 탄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사격구역(목표구역)으로 비교적 정확하게 포탄을 집중시킨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런 정밀타격 능력은 그동안 드러난 적 없기 때문에 군 당국은 예의주시하고 있다.

북한이 이 방식으로 NLL을 향해 집중 포격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이는 북한의 속내가 드러나는 대목이라고 북한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타격능력을 과시함으로서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북한이 최근 정밀타격 훈련을 통해 전진 배치된 야포의 성능향상과 포병의 전투력 향상을 꾀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이번 포사격을 분석한 결과 이번 북한의 포사격은 매우 정확한 편에 속한다. 이는 지금까지 명중률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리의 분석과는 다른 부분”이라면서 “이 정도의 정확성이라면 야포의 성능이 전 보다 많이 개량된 것 같다. 아마 이번 포사격은 개량된 야포의 성능테스트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북한의 권력구도에 미묘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북한이 이를 감추기 위해 포사격으로 외부의 시선을 돌리고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최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악화로 북한의 권력이동과 체제 변화가 은밀히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김 위원장의 건강이 악화돼 내부 권력이 재편성되고 있으며, 군부의 핵심간부들도 새로운 직책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한다.


北 NLL 포사격 노림수

또 중국과의 관계 변화도 이번 포사격의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북한은 NLL 긴장 조성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도 품고 있다고 이 소식통은 전했다. NLL지역은 남한뿐 아니라 북한 어민들에 있어 매우 중요한 어장이다. 하지만 최근 중국 어선들이 자주 이 지역을 침범해 남한 어민들은 물론 북한 어민들도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 이 때문에 얼마 전에는 북한이 NLL을 침범한 중국어선을 나포하는 일도 있었다.

아울러 미국에 모종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시각도 있다. 평화체제 협상을 비핵화 협상과 병행하자는 자신들 요구를 미국이 수용토록 압박하려는 포석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인도를 국빈방문중인 이명박 대통령은 이 소식을 접하고 즉시 정정길 대통령실장에게 긴급 안보대책회의 소집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청와대는 정 실장 주재로 김태영 국방장관, 현인택 통일장관, 관계 비서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1시간가량 긴급 안보대책회의를 열고 상황을 점검했다. 박선규 청와대 대변인에 따르면 청와대는 회의에서 북한이 화해 제스처를 취하면서 이 같은 도발을 한 의도와 북한 내 특이 동향 여부 등에 대해 집중 논의했다.

북한 포사격 소식이 들리자 정치권에서는 심상치 않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포사격을 앞두고 청와대와 북한의 사전조율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것이다. 최근 정치권에 남북정상회담 개최임박설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북측의 NLL 포사격이 있었기 때문에 이 같은 의혹이 불거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포사격과는 별도로 민간교류는 계속 허용하고 있는 점도 이런 의혹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북한은 포사격 뒤인 지난달 29일 오전 의약품원료와 밀가루 등 대북 지원물자를 선적할 북한 화물선 동남1호를 인천항에 보냈다. 또 민간단체의 방북도 별다른 제약 없이 그대로 허용했다. 이런 점을 들어 정치권 일각에서는 북한의 강온양면책, 이른바 ‘투트랙 전술’이 정부와의 사전 교감을 밑바탕에 두고 있다고 보고 있다.

한편 6월 선거와 세종시 문제 해법제시를 앞두고 정부가 북한과 깜짝쇼를 벌일 수 있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야당의 한 인사는 “세종시 문제로 내홍을 겪고 있는 한나라당이 정책론으로는 도저히 해법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며 “그 돌파구는 다름 아닌 북한과의 정상회담개최”라고 말했다.

수개월 전 우리 측 고위 인사가 싱가폴에서 북한과 비선접촉을 했을 때, 남북고위급 인사가 정상회담에 관한 논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일요서울]은 “남북고위급인사가 2월중 정상회담 개최 논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 밖에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날 준비가 항상 되어 있다”며 “한반도 평화와 북핵 해결에 도움이 될 상황이 되면 연내라도 안 만날 이유가 없다”고 말해 남북 정상회담개최추진설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윤지환 기자] jjh@dailysun.co.kr


#포사격 북한군 총참모장의 작품

이번 ‘일제타격식’ 포사격은 포병 출신으로 알려진 리영호(대장) 북한군 총참모장(남한의 합참의장)의 작품일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KIDA의 다른 전문가는 “리영호는 포병전문가로 중구경인 해안포를 대구경으로 교체한 장본인”이라며 “이번 포사격은 리영호가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리영호 총참모장은 작년 2월과 3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포병부대 포사격훈련 참관 때 수행했다. 지난 15일 평양 인근 서해안에서 240mm 방사포와 전투기 등이 동원된 가운데 진행된 육.해.공군 합동훈련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작년 12월 23일 평양 4.25문화회관에서 열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군 최고사령관 추대 18주년 기념 중앙보고대회 보고를 통해 미국이나 남한이 북한의 ‘자주권 행사’를 훼방하거나 영역을 침범할 경우 “예측할 수 없는 보복타격으로 침략의 아성을 무자비하게 짓뭉개 버릴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