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 남현동 일대 32만평 숨겨뒀다”
전주 이씨 종산 수상한 등기 변경 통해 남의 땅으로 둔갑
2009-12-29 윤지환 기자
박정희 정권, 특히 유신시대의 대표적인 권력자였던 고(故)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이 지난 10월 31일 노환으로 별세한 직후 그의 재산문제가 사회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 전 부장은 박 정권 당시 2인자의 자리에 머무르며 막대한 재산을 축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1월 일부 언론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이 전 부장이 모은 돈은 수조원대에 이른다. 하지만 그 실체가 분명치 않다. 소문에 따르면 그가 막대한 재산을 해외로 빼돌려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또 이 전 부장은 해외뿐 아니라 국내에도 엄청난 재산을 분산관리하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이런 소문을 증명이라도 하듯 서울과 수도권 일대 노른자위 땅 주변에선 이 전 부장의 부동산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이 중 귀를 솔깃하게 하는 부분은 이 전 부장이 생전에 문서조작을 통해 막대한 부동산을 챙겼다는 주장이다. [일요서울]은 2007년부터 지금까지 이 전 부장의 부동산을 추적해 왔다. 이 과정에서 “이 전 부장이 내 땅을 빼앗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여러 명 만날 수 있었다. 최근에는 대대로 남현동에서 을 살아온 한 노인이 이 같은 주장을 하고 나섰다. 이에 [일요서울]은 이 노인의 증언을 토대로 의혹을 집중 추적했다.
이 전 부장의 삶은 정보부장이라는 그의 직함에 걸맞게 사망 직전까지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이 전 부장은 생전에 막대한 부를 챙긴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자신의 재산에 대해 “남들보다 조금 잘사는 정도”라고 말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이 전 부장의 재산이 정확히 얼마인지에 대해선 알려진 바 없으나 천억원대에 이른다는 말도 있고 수백억원대일 것이라는 소문도 있다. 어느 쪽이든 일반인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큰 액수다.
사라진 일제 수용 땅
직계 가족이외에 이 전 부장의 정확히 얼마인지 아는 사람은 없다. [일요서울]이 2년간 추적한 바에 따르면 그의 재산 대부분은 차명으로 관리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베일에 가려져 있을 수밖에 없다.
그의 재산이 차명으로 관리되고 있음을 뒷받침하는 정황들은 적지 않다. 과거 이 전 부장의 차를 몰았던 운전기사가 강남의 소문난 땅부자로 살고 있다거나 그의 측근으로 보이는 인물이 불분명한 이유로 어느날 갑자기 막대한 부동산을 소유하게 된 사실 등 미심쩍은 내용들이 하나 둘 아니다.
최근에는 관악구 남현동에 거주하는 이모씨가 대대로 소유해온 32만평의 부동산이 부당하게 이 전 부장의 손에 넘어갔다고 주장해 눈길을 끈다. 이씨의 말을 들어보면 이렇다.
이씨는 전주이씨 우곡공파(愚谷公派)로 조선시대 때부터 대대로 남현동에 살아왔다. 일제강점기 당시 이씨 집안이 소유하고 있던 땅은 모두 일제 총독부에 수용조치 됐다. 남현동 일대 32만평은 산으로 일제는 이 산에서 광산을 개발해 무기제조에 쓰이는 특수 광석을 채굴했다고 했다. 일제가 이 산에 뚫은 광산개발 흔적은 지금도 남아 있다.
이씨는 “남현동의 산은 우리 집안의 종산이었다. 그것은 조선왕조기록에도 있을 정도로 공문화 돼 있는 것”이라며 “해방이후 우리 집안 어르신들이 이 땅을 되찾기 위해 예고등기 조치를 했는데, 이것이 싹 무시되고 엉뚱한 사람들 손을 거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씨 집안의 부동산은 정체불명의 사람 소유로 넘어가더니 연달아 주인이 바뀌었다.
이씨는 “나중에 등기를 떼어 보니 하루에 한 번씩 땅 주인이 바뀌었다. 그렇게 4일 동안 주인이 네 번 바뀐 것으로 등기에 기록돼 있다. 앞서 예고등기를 해 놓은 것도 버젓이 기록돼 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씨가 말한 산은 이씨 말대로 과거 이 일대 전주이씨의 종산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산에는 조선시대 전주이씨 우곡공파 조상들의 무덤이 곳곳에 있어 종산임을 증명하고 있다. 원래대로라면 해방 후 이 땅은 원래 주인에게 돌아가야 맞다.
이씨는 “이 일대에선 이 땅이 이후락씨 소유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이곳에서 오래 살았던 사람들은 모두 이 땅을 이후락씨 소유라고 알고 있다”며 “지금 이 땅의 주인이라고 돼 있는 사람이 이후락씨의 재산관리인 중 한 사람이라고 한다. 내가 따로 추적해 본 바에 따르면 4번 바뀐 땅 주인들 중 일부는 이후락씨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게 확실하다”고 말했다.
국내외 부동산 부자
이런 재산 은닉 의혹에도 불구하고 이 전 부장은 사망 전 그리 넉넉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소유했던 경기 하남시 자택과 땅은 보험회사 대출금을 갚지 못해 1999년 8월 경매로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일각에선 이 소문을 믿을 수 없는 루머라고 단정하고 있다. 그의 아들 이동훈씨가 제일화재 회장이고 며느리는 한화 김승연 회장의 누나라는 점을 들어 금전적으로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또 이 전 부장은 서울과 수도권 일대에 막대한 부동산을 소유한 땅부자로 잘 알려져 있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땅부자 이후락’이라는 말이 정설처럼 굳어져 있다. 강남역 부근과 학여울역 부근 그리고 용인 하남 일대에 적지 않은 땅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알려진 것처럼 그가 상당한 부동산을 소유했다면 불우한 말년을 보냈을 리 만무하다. 그의 말년에 대해선 추측이 부분하지만 [일요서울]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 전 부장은 말년에 불우하지도 않았고 곤궁한 삶을 살지도 않았다. 10년 넘게 이 전 부장의 옆을 지킨 A씨의 증언에 따르면 이 전 부장이 치매에 걸렸다는 소문이 한참 시중에 나돌때 실은 멀쩡했다고 한다.
A씨는 “어르신(이 전 부장)은 정신도 멀쩡하고 거동도 아무 문제 없었다”며 “자신의 사생활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꺼려해 주변 사람들에 대한 단속이 심했다”고 말했다.
또 이 전 부장이 궁핍한 생활을 했다는 소문에 대해 A씨는 “터무니없는 소리다. 끝도 모를 정도로 재산이 많은 분이 왜 궁핍하게 살겠나”며 “말년에 건강이 안 좋아져서 요양원에 들어가기 위해 집을 처분했는데 그게 빚에 쫓겨 그렇다는 식으로 소문이 나 기가 막혔다”고 말했다.
A씨에 따르면 이 전 부장의 가족들이 해외에 막대한 재산을 사들인 것은 일부 사실이라고 한다.
A씨는 “미국의 은닉 부동산이 있다는 신문보도를 본 적 있다. 내가 알기론 그게 대부분 사실일 것”이라며 “해외에 굉장히 많은 재산이 있다고 들었다. 해외 재산은 대부분 가족들이 관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국내 재산은 신뢰할 만한 측근들이 관리한다고 하는데 누군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일부 언론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이 전 부장의 딸 내외가 미국 한 지역에서 거래한 부동산 거래건수가 103건에 달한다. 또 이 전 부장의 자녀들이 최대 5000만달러(한화 약 595억7500만원)에 달하는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주장도 같이 보도돼 눈길을 끌었다.
[윤지환 기자] jjh@daily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