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구 챙기려는 의원들… 5초 만에 3조원 증가시켰다
국토해양부 예산안 가결 ‘날치기’의 진실
2009-12-15 맹철영 기자
국토해양부(이병석 위원장)예산안 통과가 5초 만에 초스피드로 이루어졌다. 지역구 예산을 가장 많이 챙긴 국회의원은 이병석 위원이다. 무려 2774억원의 예산을 증액했다. 그 뒤를 이어 민주당 김성곤 의원이 1530억원을 증액시켰다. 국토해양부가 처리한 예산안은 원래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보다 3조 46억원이나 늘어났다. 이는 여야의원들이 지역구 챙기기 차원에서 증액한 것으로 파악된다. “여야가 겉으로는 4대강 예산 얘기를 하지만, 실제는 모두 지역구 예산을 챙기려는 이해가 맞아 떨어져 이런 일이 생겼다”는 뒷말도 나왔다. 국토해양부 예산안 심의 현장을 취재했다.
지난 8일 오후 1시를 넘은 시간. 보통 사람들은 점심을 먹고 휴식을 취할 시간이지만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소속 위원들은 질의와 답변, 토론을 쉬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 갔다. 정국의 핵심인 4대강 예산안 심의 때문이다.
그러던 중 갑자기 이병석 위원장이 “111항까지는 토론 종결하고 의결하고자 합니다. 이의 있습니까? 가결됐음을 선포합니다"라고 기습적으로 의사봉을 두드렸다. 그 시간은 채 5초도 넘지 않았다. 당시 야당의원들은 “이의있다”며 발언권을 요구했다. 이는 곧 묵살되고 정회를 선포했다. 일명 ‘날치기'이다.
‘날치기'의 예전 상황을 돌이켜 보면 야당의원들이 언성을 높이고 격하게 반발했다. 위원장이 퇴실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심지어 ‘날치기 무효'를 주장하며 물리적 충돌까지 벌어졌었다. 하지만 이번 날치기는 예전과 달랐다.
여야 의원 가리지 않고 “이러시면 않돼죠", “왜 이러십니까"라며 다정하게 대응했다. 심지어 웃음을 지어보이는 여유까지 부렸다. 이유가 있었다. 이날 국토해양위에서 통과된 내년 예산에는 4대강 예산 뿐 아니라 여야 의원들의 지역구 선심성 예산이 모두 포함됐기 때문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울산-포항 복선전철, 포함-삼척 철도건설 등에 무려 2천774억원으로 예산을 가장 많이 늘렸다. 이곳은 이병석 국토해양위 위원장의 지역구이자 대통령의 친형인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의 지역구이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여수가 지역구인 민주당 김성곤 의원의 경우 여수 국가산업단지 진입도로 건설을 위해 1530억원을 늘렸다.
민주당 강창일 의원의 경우 제주 국가지원방도 건설을 위해 380억원을 증액했다. 지난 재보선을 통해 국회에 재 입성한 민주당 김영환 의원은 신 안산선 복선전철에 40억원을 증액했다.
한나라당 박상은 의원은 인천 지하철 2호선 건설과 도로건설을 위해 1150억원을 증액했고, 한나라당 신영수 의원은 지역구 도로 건설을 위해 1260억원을 늘렸으며 한나라당 허천 의원은 경춘선 복선전철을 이유로 908억원이 늘어났다. 이날 국토해양위에서만 처리한 내년 예산은 정부안 보다 3조 4천억원 늘어났다. 정부가 제출한 새해 예산은 291조 8천억 원으로 국채 발행 등을 통해 조달해야 하는 적자 규모가 32조 원이나 된다. 의원들의 지역구 선심성 예산으로 적자 규모는 눈덩이처럼 늘어날 전망이다.
일각에선 국회의원들의 이러한 행태에 대해 “국가의 예산은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해 균등하게 처리되어야 한다. 또한 정부의 예산이 초과될 경우 국가경제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지역구민들을 위해 예산증액에 혈안이 되어 활동하는 것은 한마디로 ‘지역이기주의’나 다름없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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