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의 남자’ 원세훈 국정원장 리더십 위기

대북 정보 먹통 “대한민국이 위험하다”

2009-12-15     윤지환 기자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은 지난 2월 10일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엄정하게 정치 중립을 지키는 균형적인 입장에서 원장의 직분에 충실할 것”이라며 “정보의 생명이 진실성과 비편향성에 있다는 점을 되새기겠다”고 말했다. 또 원 원장은 이날 “물샐틈없는 국가안보의 확립이야말로 정보기관 본연의 임무이자 국정원이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지금 원 원장은 당시 했던 다짐과 반대로 가고 있다. 진보·좌파 인사와 야당 정치인 밀착감시 등에 주력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극비리에 추진 중이던 사업내용이 외부로 새 문제가 되기도 했다. 북한의 임진강 댐 방류 가능성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한 것도 문제다. 또 최근 원 원장의 국정원 개혁시도가 논란이다. 개혁시도 그 자체는 좋을 수 있다. 하지만 결과가 문제다. 상당수의 국정원 전·현직 직원들은 원 원장의 개혁에 대해 부정적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정치권과 주요언론은 원 원장을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일부에선 원 원장이 MB정권의 숨은 실세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국가정보원이 원 원장 취임 이후 두 번째 인사를 전격 단행했다. 국정원은 지난 10월 14일 3급 이상 부처장급 이상 인사를 시작으로 같은 달 중순경 4급에서 7급 직원들을 재배치했다. 지난 3월에 이어 7개월여 만이다. 직원들이 업무에 채 적응하기도 전에 또 인사를 한 것이다. 이 때문에 잦은 인사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이번에 인사이동은 한 이들 가운데 3월에 이미 한번 이동한 직원이 상당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앞서 단행된 인사가 충분한 검토 없이 서투르게 단행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효율성과 전문성을 고려해 신중히 단행한 인사였다면 7개월만에 또 사람이 바뀌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에 원 원장의 조직개편은 결코 국정원의 효율성을 고려한 게 아니라는 비난이 여기저기서 들리고 있다. 국정원 인사가 너무 자주 이뤄져 분야별 전문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특정인맥 중용으로 조직 내 위화감이 조성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인사이동의 진짜 목적

국정원 소식에 정통한 한 인사는 “국가 안보에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 일어나고 있다”며 “전 정권 때나 지금이나 인적청산과 조직개편에 혈안이 돼 본연의 업무는 뒷전”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인사는 “지금까지 국정원 인사를 두고 더 나아지기 위한 과정이라고 말하지만 나아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국정원의 정보수집인력은 지금 정치권 동향을 파악하는데 집중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대외 정보력은 한국·러시아·중국·일본 가운데 최하위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이 인사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대북정보라인이 철저히 붕괴됐으나 전혀 복구가 되지 않고 있다. 국정원 소식통의 전언에 따르면 복구의 필요성도 제대로 못 느끼고 있다. 국가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국정원의 대북정보력이 나아지지 않고 있다면 지금의 인사는 무엇을 위한 것일까.

이 의문에 대해 이 인사는 “국정원의 고위급 간부들은 국가적인 중대사안보다 정치적인 문제를 파악하는데 혈안이 돼 있다”며 “이 때문에 내부적으로 전 정권의 인적청산이 선행돼야 제대로 된 활동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정원은 이번 인사이동에 대해 “정기적인 인사일 뿐이며 어떠한 정치적 목적도 없다”며 “그동안 효율적인 조직개편에 대한 논의는 지속적으로 계속됐다. 이번 인사는 이 논의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원의 이 같은 설명에도 불구하고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 적지 않다.

[일요서울]이 파악한 국정원 인사 내용에 따르면 A씨는 국내파트에서만 일을 해왔다. 영어 등 외국어 특기를 가진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는 얼마 전 유럽으로 파견됐다. B씨는 일본통으로 불릴 만큼 일본에 정통한 인사다. 그러나 그는 지금 국내 외곽부서에서 파견근무를 하고 있고 일본에 대해 전혀 모르는 D씨가 일본으로 갔다. 이를 두고 내부에선 “B씨가 만든 일본 정보망이 붕괴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최근 이 예측은 맞아들고 있다. 갑작스런 인사이동으로 인수인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정보 업무 특성상 지역텃새에 눌려 일본에서의 정보수집이 힘든 상태라고 한다.

대북관련 정보도 전문성을 고려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영남권에서 거두로 통하는 한 인사는 “국정원이 야당과 진보·좌파 인사들의 동향을 감시하기 위해 대북전문요원들을 투입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국정원이 주력하는 부분은 이들 인사의 부정축재내역을 파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인사의 말대로라면 대북정보를 파악해야할 인력이 경찰의 대공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북부서근무자들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고 한다.


엉뚱한 곳 보는 국정원

국정원은 이에 대해 “남한 내부에 존재하는 친북세력을 색출해 내는 데 주력하려는 취지”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는 어불성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북한 전문가들의 목소리다. 실제로 90넌대 말 북한에서 남한의 주요 북파요원들이 색출돼 사형됐다. 이때 북한은 정보유출자를 찾기 위해 남한에서부터 역추적을 했다. 결국 주석궁 주변에서 활약하던 북파요원들을 찾아냈다. 이처럼 친북세력 또는 간첩들의 원천이 북한임에도 북한은 보지 않고 남한 내 간첩먼저 잡고 보겠다는 생각은 수도꼭지는 잠그지 않고 바닥의 물만 닦는 겪이다.

한 북한 소식통은 “국정원은 남북의 왕래가 많이 자유로워졌기 때문에 북한문제보다 남한 내부 문제에 주력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하지만 이는 괴변”이라고 원 원장을 강하게 비난했다.

그는 이어 “대북관련 중요정보를 매번 놓쳐 한반도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는데도 원 원장의 자질론이 한 번도 불거지지 않는 게 이상하다”고 의문점을 제기했다.

원 원장 체제의 국정원이 얼마나 안일한지는 북한의 황강댐 방류로 임진강에 홍수가 난 사건을 보면 알 수 있다. 국정원은 방류 사건과 무관해 보인다. 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게 국정원 전직 직원들의 증언이다. 국정원은 북한의 중요인사와 더불어 주요기관, 주요시설, 주요지역 등의 동태를 수시로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휴전선 부근의 댐은 수공가능성에 따라 주요시설에 해당한다. 하지만 국정원은 방류직전까지도 수위나 수문의 움직임에 대한 파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수문 방류 시 이를 평양에 알리도록 돼 있고 평양은 다시 이를 남측에 알린다. 이번에 평양은 남측에 이를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구체적으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이유야 어떻든 국정원의 대북 정보력은 북한이 알려주지 않으면 모르는 수준인 것으로 보인다.


원 원장 리더십 논란

원 원장은 사건 후인 9월 24일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방류 당시 수위는 댐 만수위에서 10m정도 낮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거기에 대비해야 한다는 판단을 하지 않았다”고 보고한 바 있다. 이는 바꿔 말해 조짐이 없으면 대비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정보원 수장으로서 실망스런 답변이 아닐 수 없다. 6.25 당시에도 침략의 기미는 미미했고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유럽·러시아 침공 때도 침략의 기미나 이유는 없었다.

직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는 직원들도 다르지 않다. 임진강 사건에 대해 한 국정원 직원은 “그것이 우리의 업무와 무슨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북한이 예고도 없이 방류하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아느냐”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국정원의 존재 이유를 되물을 수밖에 없다. 안보를 위해 위협대상의 예고 없는 움직임을 사전에 파악하는 곳이 정보기관이기 때문이다.

국정원의 어설픈 정보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북한이 지난달 말 전격적으로 화폐개혁을 단행했을 때도 국정원의 대북라인은 ‘먹통’이었다. 북한은 지난달 30일 전격적으로 화폐개혁을 단행했고, 이날 오후 국내 한 인터넷 매체의 보도로 이 사실이 빠른 속도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일 저녁까지도 국정원 핵심 간부는 관련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그랬다면 원 원장도 이를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화폐개혁 당일 국회 정보위에 원 원장이 참석했으나 이에 대한 보고나 브리핑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원의 대북정보라인구축 실패 원인을 놓고 원 원장의 조직·인사 개편이 실패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대북정보수집과 해외경제정보수집에 정통한 전문 인력을 제대로 배치하지 못한 게 대북 정보 채널에 큰 구멍을 냈다는 것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무엇을 위한 국정원 업무를 하는 것인지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국정원 관계자
“외부 오해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겠다”

최근 불거진 국정원 편향인사 논란과 대북정보력부재 지적에 대해 국정원 측은 알려진 내용과 사실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또 원세훈 국정원장의 자질논란에 대해서도 국정원 측은 내부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어떠한 문제제기가 없었고, 청와대로부터도 업무미숙을 이유로 질책 받은 적 없다고 답했다. 다음은 국정원 관계자와의 일문일답이다.

- 국정원 인사에 대한 내부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는데.
▲ 사실 무근이다. 이번 인사는 정기인사의 일부다. 인사내용은 조직특성상 외부에 밝히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그래서 오해가 발생하기도 하는 게 사실이다. 어떤 조직이든 인사 후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기 마련이다. 불공평하거나 편향적인 부분은 전혀 없었다.

- 그렇다면 영어도 제대로 안되는 A씨가 어떻게 유럽으로 간 것인가.
▲ 그 부분은 확인해 줄 수 없다. 내 위치에서는 파악이 안 된다.

- 대북파트에 있는 요원들에게 좌파·진보·야당인사의 부정축재와 좌익활동 등을 파악하라는 업무 지시했다는데 사실인가.
▲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그런 내용은 내부인들 끼리도 알기 어렵다. 그러나 대북파트의 요원들이 그런 업무를 한다고 해서 문제될 건 없다. 본래 그런 일을 하는 곳이 대북파트 아닌가.

- 북한의 임진강방류사건에 대해 왜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나.
▲ 그 부분에 국정원의 책임이 있는지 모르겠다. 북한 댐에 대한 관찰은 우리의 업무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 북한의 이번 화폐개혁 정보를 놓쳤다고 들었다.
▲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파악한 바에 따르면 이미 우리는 사실이 일반에 알려지기 수일 전 화폐개혁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 다만 우리가 정보를 놓쳤다는 언론보도에 대해서는 일일이 대응하지 않기로 내부 방침을 세웠기 때문에 해명하지 않았다. 오해를 받더라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알았는지 등을 알리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다.

[윤지환 기자] jjh@daily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