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체추적-박근혜 테러 협박 편지 미스터리 넷

“결코 내 얘기 우습게 여기지 마라” 테러범 배후설도 솔솔

2009-12-08     윤지환 기자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에게 세종시 수정안에 계속 반대하면 신변에 위협을 가하겠다는 내용의 협박 편지가 배달돼 정치권이 술렁이고 있다. 서울 종로경찰서는 박 전 대표의 여의도 국회 사무실에 지난달 23일과 27일 두 차례에 걸쳐 협박 편지가 도착했다고 보좌관이 신고해 와 편지의 발신인 추적에 나서는 등 광범위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지난 1일 밝혔다. 경찰은 일단 수사에 착수한 상태지만 용의자의 신원 파악이 쉽지 않아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편지를 보내 지문 감식을 의뢰하는 등 발신인을 추적하고 있지만, 아직 별다른 수사 단서를 찾지 못했다. 협박편지 내용이 알려지자 그 배경을 놓고 온갖 추측들이 난무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세종시 문제와 관련, 누군가의 지시를 받은 인물의 소행이 아니냐는 추측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A4 1장 반 분량의 편지는 컴퓨터를 이용해 작성됐으며 “정부에서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하는데 왜 혼자 고집을 부리느냐. 계속 반대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주목을 끄는 것은 범인이 극한 표현을 사용해가며 박 전 대표의 신변을 위협했다는 점이다.

지난 2006년 5월 20일 서울 신촌에서 지방선거 지원유세를 하던 중 테러범 지충호씨가 휘두른 흉기에 오른쪽 주위가 11Cm나 찢어지는 부상을 입은바 있다. 이번 편지가 간단치 않은 이유다.

의문의 협박 편지에는 지난 11월 10일자 광화문우체국 소인이 찍혀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편지 도착시점도 절묘하다. 박 전 대표는 10월 23일 세종시 원안+α 입장을 밝혔다. 이에 경찰 내부에선 정치활동을 벌이는 인물이 용의자일 수도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미스터리 1. 광화문 소인 왜?

범인이 왜 하필 목격자가 많이 발생할 수 있는 광화문 우체국을 이용했는지 의문이다. 박 전 대표에게 협박편지를 보내면 당연히 경찰의 추적이 예상된다.

그렇다면 CCTV 추적이 가능한 번화가의 우체국보다 작은 동네 우체국을 이용해야 맞다.

범인이 과감하게 광화문 우체국을 이용한 것은 평소 이곳이 익숙하거나 인파가 많은 것을 이용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편지에서 범인의 타액이 검출된 것으로 미뤄 치밀성은 떨어진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미스터리 2. 애정·애증 가능성

일부에선 협박범이 이른바 성동격서(聲東擊西)효과를 노린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박 전 대표를 위해 고의로 협박편지를 보냈을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범인은 세종시 문제를 언급하며 이명박 대통령의 세종시 정책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이 대통령에 도움을 주기보다 오히려 역효과를 줄 수 있다. 이 대통령의 편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박 전 대표에 지지를 끌어내려는 고도의 술책이라는 것.

지난 2006년 박 전 대표는 신촌 유세하던 중에 지충호에게 테러를 당했다.

박 전 대표는 치료를 끝낸 뒤 곧장 유세현장으로 달려가 한나라당의 승리를 일궈냈다. 이로써 ‘공주 이미지’에서 전사적 이미지로 이미지 메이킹에 성공했다. 과거 박 전 대표 테러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범인은 자신의 행동이 박 전 대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범행을 계획했을 수 있다는 것.

이 같은 시선에 대해 박근혜 측에선 “그것 또한 조작이다. 박 전 대표는 원칙주의자이다. 그런 속임수 따위는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스터리 3. 정치세력의 음모

국회 주변에선 이번 협박편지 사건 배후에 정치세력이 있을 수 있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세종시 문제와 관련, 박 전 대표에 앙심을 품은 누군가가 협박 편지를 사주했을 수 있다는 것인데, 이는 사실 가능성이 높지 않다.

사건의 전모가 밝혀질 경우 그 세력은 정치생명이 끝난다. 이런 위험을 감수하고 협박편지라는 소심한 ‘작전’을 구사할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화문 소인이 찍혀 있는 점과 신원파악이 안될 정도로 치밀하게 움직였다는 점을 들어 정치세력 배후설은 계속 꼬리를 물고 있다. 특히 광화문은 청와대와 종합청사가 인근에 있다. 또한 금호, 교보 등 대기업들이 몰려 있다. 때문에 협박범에 대한 배후설이 제기되고 있다.


미스터리 4. 가족 간의 갈등

육영재단을 둘러싼 가족간의 갈등이 이번 사건의 발단이 아니냐라는 추측도 적지 않게 들린다. 공교롭게도 사건이 있기 직전 박 전 대표의 동생인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의 남편 신동욱 교수가 인터넷에 박 전 대표 비방글을 올려 논란이 일었다. 이 때문에 신 교수가 의심의 눈총을 받고 있다. 박 전 대표에 앙심을 품은 신 교수가 일을 꾸민 것 아니냐는 것이다. 더욱이 신 교수는 인터넷에 익명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박 전 대표 비방글을 올려 의심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하지만 신 교수 측은 “의심 받을 줄 뻔히 알면서 그런 일을 저지를 바보가 어디 있느냐”는 입장이다.


테러 위협에 무대응 입장

한편 박 전 대표측은 이번에 발생한 테러 위협에 대해서는 대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수사 의뢰도 박 전 대표의 지시가 아니라 보좌진 선에서 조용히 이뤄졌으며, 사건이 공개된 것도 경찰 측을 통해서인 것으로 알려졌다.

친박계의 이정현 의원도 “이 시점에 협박 편지가 와서 비서실 차원에서 경찰에 신고했던 것일 뿐"이라며 “이번 사건으로 경호를 강화하거나 그런 일은 전혀 없다"고 전했다.

하지만 정치권의 입장은 다르다. 당내에서 계파를 막론하고 박 전 대표의 경호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친이계의 한 의원은 “과거 면도칼 테러를 당한 적도 있는 만큼 박 전 대표의 자택과 동선 경호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은 “치안당국에 자택경호와 신변 경호를 철저히 해달라”고 요청했다. 박 전 대표의 팬클럽인 ‘박근혜를 사앙하는 모임’은 자체 경호단을 발족키로 했다.

박 전 대표는 현재 유력 대선주자이다. 지금 대선이 치러진다면 대통령 당선은 따 놓은 당상이다. 이런 이유로 박 전 대표에 대한 염산 테러 협박 편지는 쉽게 관가하고 넘어갈 사안이 아니라는 게 여권의 입장이다. 만약 그의 테러가 현실화된다면 국가적 손실이다. 이런 이유로 경호가 강화되고 있다.

[윤지환 기자] jjh@daily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