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전 대통령에 재산 빼앗긴 ‘최부자 이야기’

KBS드라마 ‘경주 최부자’ 박근혜 죽이기‘신호탄’

2009-11-10     윤지환 기자

세종시 문제를 놓고 친이계와 친박계의 정면대결구도가 선명해지고 있는 가운데 KBS가 방영예정인 한 드라마 제작 소식이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KBS 2TV는 ‘천추태후’를 끝으로 제작이 잠정 중단됐던 대하드라마를 1TV로 이동, 시리즈물 형식의 대하드라마를 선보일 예정이다. 드라마의 제목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나 내용은 만석꾼 경주 최부자 집안의 이야기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부자 집안은 400년동안 막대한 부를 축적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해온 명가로 꼽힌다. 그런 최부자의 드라마가 정가를 시끄럽게 하고 있는 이유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최부자 집안의 재산 일부를 빼앗은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표측은 아직 공식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지만 속내가 편할리 없다. 박사모 인사들은 박 전 대표를 겨냥한 친이계의 비열한 술수라며 분노를 표시하고 있다. 더구나 드라마의 정점인 마지막 부분에서 박정희 정권의 영남대 설립과정을 세세하게 그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향후 친박계 드라마 방영에 대한 반발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KBS 관계자에 따르면 최부자를 소재로 한 드라마는 내년 1월 2일경 1TV를 통해 첫방송 될 예정이다. 드라마의 제목은 ‘명가(名家)’로 잠정 결정됐다.

‘명가’는 16부작 대하드라마로 메인 뉴스 프로그램에 이어 9시 40분대에 방영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주연 배우 캐스팅 작업이 한창인 ‘명가'는 조선시대 후기와 일제강점기가 주요 시대 배경이며, 경북 경주가 주 무대가 될 예정이다. KBS는 서울과 경북 문경, 경주 등에서 드라마 촬영을 진행할 계획이다.

문제는 KBS의 ‘명가’ 제작 소식이 절묘한 시점에서 나왔다는 데 있다. 겉으로 볼 때 경주 최부자 이야기가 드라마로 제작되는 것은 별로 문제될 게 없어 보인다.

최부자 가문은 무려 400년 가까이 대대로 부(富)를 축적해 왔지만 인색하지 않았다. 대대로 빈민구제에 앞장섰고 독립운동자금을 대는 등 그 부를 국가를 위해 아끼지 않았다.

또 나중에는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해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제작 시점과 드라마의 엔딩이 문제다.

방송가 소식통에 따르면 ‘명가’의 끝부분은 박정희 정권하의 최부자집 이야기로 꾸며진다. 특히 박정희 정권이 최부자의 재산을 일부 빼앗으면서 수난을 겪는 부분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유명한 청구대학과 대구대학 통합사건이다. 청구대학은 최해청이 1950년 재산을 출원해 세웠고, 대구대학은 경주 최부자 집안의 최준이 47년에 설립했다. 박 전 대통령은 두 학교를 강제로 통합해 영남대학교를 개교하고 이를 특정인이 관리하게 했다.


친박계 고민 타협 또는 대결

이런 내용이 드라마로 방영될 경우 박 전 대표의 재산문제가 또 다시 불거질 것은 불 보듯 훤하다. 드라마 제작 배경에 정치적 흑막이 깔린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은 최근 세종시 문제로 친이계와 친박계가 갈등을 겪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드라마에 박 전 대통령과 최부자의 악연이 묘사될 경우 본래 제작의도와는 달리 정치색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정치권에선 오래전부터 친이계가 향후 각종 선거를 대비해 친박계를 견제할 카드를 모으고 있다는 말이 나돌았다. ‘명가’의 방영이 ‘친이계의 카드’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그래서다.

친박연대측은 드라마가 방영될 경우 박 전 대표에 악영향을 줄 수 있어 대책을 강구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타협안도 나오고 있다. 지금 상황에 세종시 문제를 놓고 타협을 할 경우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협상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드라마가 본격적으로 제작에 들어갈 경우 친박계는 막판 엔딩부분에 대해 강하게 반발할 것으로 보인다. 상황에 따라선 방영금지 가처분 신청도 불사할 조짐이다.


드라마의 알 수 없는 엔딩

정치적 의도가 숨은 것으로 보이는 이 드라마에 대한 반발기류는 KBS PD협회에서도 감지된다. KBS PD협회는 지난달 “2010년부터 경주 최부자집을 소재로 한 대하사극을 준비하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밝혀 드라마 제작 배경에 석연치 않은 내막이 있음을 내비쳤다.

PD협회 관계자들은 “유인촌 문화부장관이 이번 일에 개입돼 있는 것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유 장관 측은 이런 의혹에 대해 “방송사에서 준비하는 드라마일 뿐 ‘명가’에 대해선 잘 알지도 못한다. 정치적으로 이번 일을 꾸미고 있다는 이야기는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한 방송사 관계자는 “유 장관이 이번 드라마 제작을 지시했다는 정황이 있다. 조만간 사실관계를 확인한 후 공개할 것”이라고 밝혀 귀추가 주목된다.

아직 ‘명가’에 대한 소식은 일부만 알고 있다. 그러나 ‘명가’ 제작을 둘러싼 진통은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PD협회 내부에서는 드라마에 정치적 노림수가 들어 있을 경우 드라마제작을 거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아울러 드라마 방영과 관련, KBS가 특정 부분을 수정 또는 삭제하지 않을 경우 투쟁을 불사해야 한다는 강경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KBS측은 일부에게 제기되는 의혹을 부정하고 있다. 드라마 관계자는 “부호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세계적 추세이자 이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 조상들 중에도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인물이 있다는 점을 주목했다”며 드라마 제작 배경을 밝힌 뒤 “또 요즘 경제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다. 이런 점에서 경주 최부자 이야기는 드라마를 위해 아주 좋은 소재”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 드라마 제작 소식이 알려지자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하는데 그렇지 않다. 드라마가 공개되면 밝혀지겠지만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덧붙였다.

한편 현재 드라마의 구체적인 시놉시스와 캐스팅은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명가’는 내년 1월 2일 첫 방송 예정이다.


#영남대의 설립 비화

영남대는 1968년에 민족사학이던 청구대학과 대구대학을 통합해 개교했다. 청구대학은 최해청이 1950년 재산을 출원해 세웠다. 대구대학은 경주 최부자로 유명한 최준이 47년에 설립했다. 그러나 청구대학은 학내비리와 사고, 5·16쿠데타로, 당시 삼성이 위탁해오던 대구대는 삼성의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국가에 헌납됐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학교 통합 후 이름을 영남대로 바꾸고 운영대리권을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에게 맡겼다.

1980년 신군부는 박근혜 전 대표에게 영남대 재단 일을 맡겼다. 박 전 대표는 1980년부터 8년간 이사장과 이사로 일했다. 이 시기에는 사실상 박 전 대표가 학교를 운영했다.


##왜 하필 지금 朴 전 대통령, 日 군관 혈서 나오나

민족문제연구소는 지난 5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주국 군관에 지원하면서 혈서를 제출했다는 내용이 담긴 <만주신문>을 연구소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이 신문 기사가 공개되자 파장은 상당했다. 거의 모든 언론이 이를 마치 대 특종인 것처럼 앞 다퉈 보도했다.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은 공개 이유에 대해 “박 전 대통령의 아들 지만씨가 지난달 28일 ‘친일인명사전’ 게재금지 가처분신청을 법원에 낸 후 사전 발간의 본지가 흐려지고 정치 쟁점화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자료를 공개했다”며 “박 전 대통령 자신의 언행이 담긴 객관적인 원사료를 공개해 불필요한 논란 확대를 막고, 이성적인 토론으로 전환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 사무총장이 밝힌 공개의도를 그대로 믿긴 힘들다. 박 전 대통령의 혈서는 이미 2002년에 문제된 적 있다. 이 해 10월 23일 한겨례21은 제431호에서 <기회주의 청년 박정희!>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필자는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다. 혈서의 내용도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연구소는 왜 새삼스럽게 다시 박 전 대통령의 혈서문제를 다시 수면위로 끌어 올린 것일까. 정치권 일부에선 이명박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를 겨냥한 친이계의 공격이라고 보는 시각이 팽배하다. 그러나 연구소측은 그런 정치적 의도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못 박고 있다. 연구소측의 한 관계자는 “시기가 공교롭게도 묘한 것은 사실이지만 세간에서 말하는 정치적 노림수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말했다.


###경주 최부자는 어떤 가문?

경주 최부자 가문은 400년 동안 9대 진사와 12대 만석꾼을 배출한 집안으로 보통 경주 최부자집 또는 경주 최진사집으로 유명하다.

현재 가옥이 위치한 곳은 신라시대 요석공주가 살았던 요석궁 터라고 전해진다.

경주최씨 최언경(崔彦璥 1743~ 1804)이 이곳에 터를 잡아 정착하여 약 200년을 이어져 내려왔다. 이전까지는 최부자집의 파시조(派始祖)인 최진립(崔震立)부터 약 200년 동안 경주시 내남면 게무덤이라는 곳에서 만석꾼으로 살다가 교동으로 이전한 것이다.

최부자집에서 전해오는 전통은 진사 이상의 벼슬을 금지했고, 만석 이상의 재산을 모으지 말라고 했다.

또 찾아오는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고, 흉년에 남의 논밭을 사들이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며느리는 3년 동안 무명옷을 입고 사방 100리 안에 굶어서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고 했다.

최부자집의 1년 쌀 생산량은 약 3000석이었는데 1000석은 사용하고, 1000석은 과객에게 베풀고 나머지 1000석은 주변에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구한말에는 신돌석 장군이 이 집으로 피신하였고 최익현 선생이 여러 날을 머물러 갔다는 일화가 전해지며 의친왕 이강(李堈)이 사랑채에서 엿 새 동안 머물면서 최준(崔浚 1884~ 1970)에게 문파(汶坡)라는 호를 지어주었다.

최준은 집안의 마지막 부자였는데 백산 안희제(安熙濟)와 함께 백산상회(白山商會)를 설립하여 막대한 독립자금을 제공하였고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였다.

백산상회는 결국 부도를 맞게 되었고 3만 석에 해당하는 빚을 지게 됐다. 해방 후 최준은 김구를 만난자리에서 안희제에게 전달한 자금이 한 푼도 빠지지 않고 전달된 사실을 확인하고 백산의 무덤에서 그를 기리며 통곡하였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후 전 재산은 교육사업에 뜻을 둔 최준의 뜻에 따라 대구대학교(영남대학교 전신)재단에 기부하였다. 최부자집의 가옥부지는 약 2000여 평이고 후원이 약 1만 평이었으며 집은 99칸의 대저택이었다. 이 집에 살았던 하인이 약 100여 명이나 되었다고 전한다.

[윤지환 기자] jjh@daily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