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내린 부패공화국? 국세청 대해부
6억 놓고 500억 DC “참 쉽죠잉~?”
2009-10-13 이수영 기자
최근 국세청을 향한 검찰의 칼날이 매섭다. 지난 6일 조성규(55) 前 중부지방국세청장이 재직시절 신창건설로부터 세무조사 무마를 조건으로 수천 만 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직후 대전지방국세청 전·현직 직원 6명이 수억 원대 뇌물을 받은 사실이 발각돼 줄줄이 쇠고랑을 찼다. 이들은 지난 2006년 연고로 한 코스닥 상장기업 ㄱ사로부터 모두 6억5000만원을 받은 혐의다. 역시 해당기업의 세무조사를 무마해주는 대가로 받은 것이었다. 주목할 것은 최근 검찰이 전·현직 관계자를 가리지 않고 국세청을 향해 연타를 날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권력형 비리’와 ‘토착비리’에 대한 단호한 대처를 주문한 탓에 검찰의 ‘비리 공무원 사냥’은 더욱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조 전 청장을 비롯한 국세청에 대한 수사 압박은 그 신호탄인 셈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검찰 수사와 국감을 통해 드러난 국세청의 비위 수위가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고질적인 예산 부족에 시달리면서도 온갖 성과급과 뇌물로 돈 잔치를 일삼은 국세청의 부패행각을 대해부했다.
지난해 말 물러난 조성규 전 중부국세청장이 중견 건설업체 신창건설로부터 수천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아파트 브랜드 ‘비바패밀리’로 잘 알려진 신창건설은 올해 법정관리에 들어간 부실기업이다.
회사 망해도 로비 잘하면 그만?
신창건설 김영수 대표는 지난해 세무조사로 인해 수백 억 원대 세금폭탄을 맞을 위기에 처하자 조 전 청장에 로비를 해 이를 무마하려했다. 이 같은 사실은 신창건설이 법정관리 절차에 들어간 직후인 지난 4월 김 대표가 회사공금 118억원을 빼돌린 혐의로 구속된 뒤 드러났다.
지난 8일 무더기로 적발된 대전지방국세청 직원들 역시 거액의 탈세 의혹을 받고 있는 지역 기업체로부터 뇌물을 받고 500억 원에 달하는 세금을 면제시켜준 혐의다.
특정 공인회계사가 평소 친분이 두터운 국세청 직원을 매수하고, 이 직원이 해당 기업을 담당한 동료에게 뇌물을 건네 청탁을 한 과정은 단순하기 그지없다. 일국의 조세를 담당하는 정부기관의 업무처리가 구멍가게 수준만도 못하다는 얘기다.
서울북부지검 형사6부(김희종 부장검사)에 따르면 공인회계사 김모(63)씨는 2006년 5월 초 세무조사를 받던 대전지역 ㄱ사의 회계감사를 맡은 S회계법인으로부터 6억5000만원을 받았다. 김씨가 국세청 출신 인사와 막역한 사이라는 것을 알고 ㄱ사의 세무조사 무마를 위한 로비자금을 건넨 것이었다.
회계사 김씨는 초등학교 후배이자 전 대전지방국세청 조사국장 최모(59)씨에게 “담당 공무원에게 무마 로비를 해달라”고 부탁했고 두 사람은 받은 로비자금 가운데 2억5000만원씩을 나눠 가졌다.
사주를 받은 최씨는 곧 자신과 가까운 국세청 세무주사 유모(43)씨를 시켜 ㄱ사 세무조사를 담당한 공무원 4명을 수소문했고 이들에게 “세금을 물지 않게 해달라”며 사례금으로 1억원을 줬다. 그리고 한 달 뒤, 세무서 측은 “횡령금 회수노력을 인정한다”는 명목아래 ㄱ사에 대해 ‘비과세 대상’ 결정을 내렸다. 최대 500억원에 육박했던 추징금이 순식간에 ‘폭탄’에서 ‘불발탄’이 돼버린 셈이다.
‘세파라치’에게도 빚지는 주제에…
이렇듯 한번에 수백 억 원씩 묻지마 ‘세금할인’을 남발한 국세청이 극심한 예산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일명 ‘세파라치’로 불리는 현금영수증 신고포상금 제도에 따라 신고자에게 포상금을 줘야 함에도 이를 지급할 돈도 없는 상황. 국세청이 신고자에게 빚진 포상금 규모는 1억5000만원 정도다.
현금영수증 신고포상금 제도는 지난해부터 현금영수증 발급거부 가맹점을 신고한 소비자에게 1인당 연간 200만원 한도 내에서 건당 5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이나마도 세수부족으로 올 2월부터 신고금액의 20%(최소 1만원, 최대 50만원)로 지급 한도가 줄었다.
지난 7일 국세청에 따르면 2008년 회계연도 결산심사를 통해 지난해 5월 이후 신고 된 1만1714건 중 포상금 지급요건에 해당하는 3051건, 1억5300만원이 신고자에게 지급되지 않았다.
황당한 것은 살림살이에 쪼들리는 국세청이 직원용 노트북 구입과 성과급 지급에는 기탄없이 지갑을 열었다는 사실이다.
김광림 한나라당 의원에 따르면 국세청은 직원용 노트북 458대를 구입하는데 들어간 6억3000만원과 직원 성과급 1억900만원을 마련하기 위해 전용이 가능한 모든 재원을 총동원했다.
반면 세파라치 포상금 용도로 전용할 수 있는 재원으로 10억6000만원이 남아있었지만 국세청이 포상금으로 푼 돈은 이 중 6800만원뿐이었다.
이처럼 재직 중 온갖 호사를 누린 국세청 직원들은 퇴직 후에도 대부분 탄탄대로를 걷는다. 상당수 국세청 고위 공무원이 공직을 떠나 회계법인이나 은행 등 관련업계에 재입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7일 국세청이 임영호 자유선진당 의원에게 제출한 ‘2005~ 2009년 8월 국세청 퇴직 공무원 현황’에 따르면 이 기간 퇴직한 2122명 중 73명이 사기업에 취업했다.
이들 가운데 42명은 회계법인이나 은행 등 금융권에 둥지를 틀었고 취업한 73명 중 32명은 4급 이상 고위 간부를 지낸 인사다. 상식적으로 이들이 공직에서 얻은 정보를 해당 사기업에 제공하지 않았을 것이라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물론 공무원이 퇴직 후 2년 안에 자본금 50억 원 이상, 연매출 150억 원 이상의 기업에 취업하려면 공직자윤리위원회 심사를 거쳐야 한다. 최근 5년 간 국세청 퇴직 공무원 중 이 규정을 위반했다는 결정이 내려진 경우도 없었다. 그러나 최근 잇따라 드러난 국세청 비위 백태를 보면 이 같은 심사가 충분한 변별력이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