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언 2천억원대 비자금 ‘미궁’속으로

검찰 “박철언 돈 성격 규명 못했다”

2009-09-15     홍준철 기자

박철언 전 체육청소년부 장관의 수천억대 비자금 의혹이 역사속으로 사라질 전망이다. 최근 검찰은 박 전 장관의 비자금으로 보이는 178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기소된 H대학 전 무용과 교수 강씨에 대해 2심에서 원심인 징역 4년6개월을 깨고 징역4년을 선고했다. 문제는 강 교수가 횡령한 돈 178억원의 성격 규명에 대해서 검찰은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6공의 황태자’로 불리던 박 전 장관이 기업들에게 받은 검은 돈이라는 세간의 의혹에도 불구하고 ‘공소시효 만료’에 돈의 성격까지 밝히지 못함으로써 막대한 국민의 세금이 몇 몇 인사들의 사리사욕으로 채워짐으로써 공분을 자아내고 있다.

박철언 전 장관의 비자금이 알려진 것은 2008년 3월 박 전 장관의 김호규 전 보좌관의 폭로로 세상에 알려졌다. 김 전 보좌관은 작년 3월초 본지와 인터뷰에서(일요서울 자매지 일요경제 47호) “박철언 전 장관은 H, S, D, L그룹 등 대기업으로부터 수백억원대의 돈을 받는 등 대략 2000억원대의 비자금을 관리했다”고 폭로하면서 파란을 일으켰다.

김 전 보좌관은 또한 “1988년~89년 당시 박 전 장관은 청와대 정책보좌관 겸 국회의원이던 권력 실세로 선거철마다 대기업들이 뭉칫돈을 들고 찾아왔으며 당시 공천 장사로도 대구지역에서만 80억 이상을 벌어들인 것으로 안다”며 “박 전 장관이 조성한 비자금은 대기업과 공천장사 등 정재계에 걸쳐 전방위적으로 펼쳐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YS 정권시절 금융실명제가 실시되면서 박 전 장관은 지인들과 친인척 명의로 최소 10여명 이상의 차명계좌로 거액의 비자금을 관리해왔다고 주장했다. 특히 박 전 장관이 작년 초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돈 178억원을 관리해온 무용과 강모교수를 검찰에 횡령죄로 고소하면서 검찰의 본격적인 비자금관련 성격 조사가 이뤄졌다.


차명계좌 운영자, 자금 연루자 ‘연락두절’

하지만 최근 서울고법에서 징역 4년을 선고하면서 “강씨는 통장을 위.변조한 뒤 거액을 횡령해 부동산과 외제 승용차를 구입하는 등 무분별하게 사용했다”며 “게다가 박 전 장관에게 입힌 손해 가운데 상당 부분을 회복하지 못해 엄벌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178억원이 노태우 정부 시절 장관 또는 국회의원으로 재직하며 기업 등으로부터 받은 부정한 돈이라는 의혹관련 검찰은 이 돈의 성격을 명확히 밝혀내지 못했다. 검찰측에서는 차명계좌에 입금된 돈의 출처를 추적했지만 은행 입출금 전표가 남아 있지 않아 비자금인지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다.

이에 본지는 김 전 보좌관이 ‘수십명의 차명으로 비자금을 관리해왔다’는 주장관련해 연루자들을 일일이 접촉해봤지만 모두 물밑으로 잠수한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당사자인 김 전 보좌관은 휴대폰 자체를 바꾸고 연락이 두절된 상태였고 최모 보좌관 역시 마찬가지였다. 김 전 보좌관의 친구로 비자금중 일부를 함께 횡령한 것으로 알려진 김모씨 역시 수배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단지 강모 전 비서관의 경우 간신히 연락이 됐지만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일’이라며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다. 실제로 정치자금이라고 하면 공소시효가 3년이 지난 상황으로 돈의 출처에 대해 더 이상 조사할 수 없고 뇌물로 받았다고 하더라도 역시 공소시효 10년으로 처벌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강 전 비서는 “강 교수가 횡령한 178억원이 비자금인지 아닌지 성격을 잘 모른다”며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최 전 보좌관 및 김 전 보좌관 관련 근황을 묻는 질문에도 그는 “김 전 보좌관이 박 전 장관 비자금을 폭로한 이후 전화번호를 바꿔 연락이 두절된 상황이다”며 “잘 모른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178억원 횡령혐의로 2심에서 4년형을 받은 강 교수 역시 연락이 두절된 상황이다. 분당 소재 대형병원에 입원중인 그는 이번 소송으로 인해 정신적 충격을 받아 ‘심리 치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언니인 강모씨와 남편 최모씨 역시 연락을 취했으나 전화번호를 바꾼 상황이었다.

한편 1심직전까지 변호를 받았던 오모 변호사측에서는 “1심 직전 변호사 선임계를 포기했다”며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인터뷰 자체를 거부했다. 강 교수를 박 전 장관에게 소개시켜준 박 모교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박 전 장관측은 여전히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박 전 장관이 소장으로 있는 한국복지통일연구소측에서는 “출근은 자주 하지 않고 있다”며 “지방에 내려가 있다”고 언급했다. 강 교수관련 재판을 묻는 질문에 연구소측은 “노 코멘트하겠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박철언측, 무용과 교수 횡령?
“노 코멘트하겠다”

박 전 장관은 ‘거액의 비자금’ 의혹관련 시종일관 “한국복지통일연구소를 재단법인으로 등록시키기 위해 40년간 돈을 저축했고, 선친에게 물려받은 돈과 가족.친지.후원자 등으로부터 기부 받은 돈”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기자회견을 통해 “수표를 추적하면 다 나오는데 본인은 김영삼 정권서도 대기업 관련 자금은 나오지 않았다”고 투명한 돈이었음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박 전 장관의 친인척인 한 모씨는 이와 관련 “관련자들 모두 박 전 장관에 기대 돈을 횡령한 인사들로 돈을 국고에 환수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김 전 보좌관은 비자금 중 일부를 주식투자해 수십억원을 날렸고 100억원 이상 횡령한 인물”이라고 공격했다.

그는 “왜 박 전 장관이 수십억원을 날리고 거액의 돈을 횡령하고 비자금이라고 폭로한 김 전 보좌관을 고소하지 않는지 의문이 든다”며 “뭔가 두 인사간에 보이지 않는 딜이 있었던 게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 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박 전 장관이 거액의 비자금을 갖고 있다는 점은 측근들뿐만 아니라 친인척들 모두 알 수 있었다”며 “돈이 워낙 거액 이다보니 측근들이나 지인들이 차명으로 관리하면서 다 갖고 날랐고 강 교수 역시 그런 인사들의 한 명일뿐이다”고 지적했다.


#공소시효 [公訴時效]

어떤 범죄사건이 일정한 기간의 경과로 형벌권이 소멸하는 제도. 형사시효의 하나이다. 공소시효가 완성되면, 실체법상 형벌권이 소멸되므로 검사는 공소를 제기할 수 없게 되고, 만약 공소제기 후에 이러한 사실이 발견된 때에는 실체적 소송조건의 흠결(欠缺)을 이유로 면소(免訴) 판결을 하게 된다(형사소송법 326조). 2007년 12월 21일 개정으로 공소시효가 변경되었지만, 이 법 시행 전에 범한 죄에 대하여는 종전의 규정을 적용한다.

[홍준철 기자] mariocap@daily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