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인천상륙작전
2003-09-18 공문룡 칼럼니스트
미군 제 2사단이 한국에서 철수하기에 앞서 기념행사를 열었다. 이에 앞서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휴전협정이 조인된지 5개월 뒤인 1953년 12월 주한미육군을 2개사단만 남기고 철수한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한국군 증강장기계획을 수립하고 주한미군은 서서히 철수시키는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주한미군은 55년 초까지 2개사단만 남게 됐다.
1997년 9월 12일 "박나리양 유괴·살해범 검거"
박초롱초롱 빛나리양을 유괴한 뒤 살해한 전현주씨가 경찰에 검거됐다. 범인 전씨는 낭비벽 때문에 지게 된 2천여만원의 빚을 갚기 위해 박나리양을 유괴한 것으로 밝혀졌다. 유괴된 뒤 살아있기를 온 국민이 기원했던 박초롱초롱 빛나리양. 곰인형을 좋아했던 8살 철부지 어린이는 10여일만에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왔다. 범인 전씨는 한 아아의 어머니가 될 만삭의 임산부로 밝혀져 국민들에게 충격을 줬다. 구속된지 한 달 뒤 전씨는 옥중에서 딸을 출산했다.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유엔군이 상륙에 앞서 인천에 대한 대대적인 포격을 감행했다. 유엔군의 함포 공격에 인천 앞바다는 불바다가 됐다. 6·25발발 이후 북한군은 남진을 계속했으나 UN군의 참전으로 전선은 120마일의 낙동강에서 교착상태를 맞게 됐다. 유엔군은 북한군의 후방을 공격하고 수도 서울을 탈환하기 위해 인천상륙작전을 총 지휘했다. 유엔군은 작전개시 수시간만에 인천 앞바다에 있는 월미도를 점령했다. 유엔군은 두 번째 목표인 인천과 김포비행장에 상륙해 북한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인천시내가 폐허로 변하는 비싼 대가를 치렀지만 이번 상륙작전으로 서울로 진격할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