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헤이그밀사’ 간도반환청구소송 ‘내막’
간도밀약 100주년 맞춰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중국 발끈
2009-09-15 윤지환 기자
간도협약 100주년을 맞아 간도반환문제가 국민적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간도협약 무효 소송이 지난 1일 오후 5시(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에 접수됐다. 이에 따라 간도를 둘러싼 중국과 한국의 물밑 신경전이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국제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한 것은 큰 의미를 가진다. 우선 100년이 넘도록 소송을 제기하지 않으면 간도는 영원히 중국 땅이 될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현시점에 소송을 제기한 것은 간도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또 간도소송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경우 한국이 여러 면에서 유리한 점이 많아 승소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차단하는 효과도 볼 수 있다.
간도협약을 체결한지 100년째 되는 지난 4일 서울시내 곳곳에서 간도협약의 무효를 주장하며 간도의 영유권 회복을 촉구하는 대회가 열렸다.
간도반환을 요구하는 이들은 “간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서 움직여야 한다”며 촉구하고 있다. 정부가 국제사법재판소(ICJ)에 간도문제를 정식으로 제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과 갈등이 생기면 득보다 실이 많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다. 당장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뿐 아니라 간도 반환이후에도 중국과는 수교가 끊어지는 등 불편한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경제적 타격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정부가 간도소송에 쉽게 나설 수 없다.
간도소송의 미스터리
이런 정부를 대신해 민족회의통일준비정부(KNCUPG)는 간도협약 100년을 맞아 서울 종로구 중국대사관 인근에서 ‘간도협약 무효선언 집회’를 열고 “민족사 100년 만에 국제사법재판소에 간도 문제를 정식 제소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민족회의의 이 같은 발표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언론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이 말을 있는 그대로 믿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는 일반인들의 민·형사 소송을 처리하는 곳이 아니라 국가 간의 국제분쟁사안을 재판하는 곳이다. 따라서 이곳에는 국가만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민족회의가 국가자격으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민족회의는 국가가 소송대리자격을 부여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국가라고 볼 수도 없어서다.
민족회의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그들은 어떻게 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던 것일까.
민족회의의 한 관계자는 이 의문에 대해 “국제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자격은 UN가입된 국가여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민족의 대표도 소송제기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민족대표를 구성해 소송을 제기할 경우 해당 민족으로 구성된 나라가 UN가입국이면 된다.
이 관계자는 “국가가 나서지 않아 부득이하게 민족대표를 구성해 ‘민족회의통일준비정부’를 세워 소송을 준비해왔다”며 “소송제기 절차와 방법 그리고 소장을 작성하는 요령이 까다로워 여러 면에서 어려움이 많았던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이어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동포들 가운데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줬다”며 “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마 소송을 제기해보지도 못하고 간도문제는 100년을 넘기고 말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족회의 측의 설명에 따르면 김영기 대표와 김영수 부대표등 민족회의 대표단은 100년이 되기 전에 국제 소송을 제기해 훗날 되찾아올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야한다고 결의하고 지난달 28일 국제재판소가 위치한 헤이그로 떠났다. 이어 지난 1일 국제재판소에 간도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데 성공했다.
차길진 법사가 소송의 배후
대표단이 소송을 제기한다고 이것이 재판소에 받아들여진다는 보장은 없었다. 구색을 갖춘 정부 대표단이 아닐 뿐 아니라 민족대표자격으로 소송을 제기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이에 일부 변호사는 국제재판소 정문 통과도 힘들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국제재판소 사정을 잘 아는 이들의 전언에 따르면 국제재판소에는 하루에도 수많은 탄원서가 배달된다. 하지만 이 서신들은 봉투도 뜯겨지지 않은 채 모두 쓰레기통으로 던져진다. 정식절차를 거쳐 접수된 문서가 아니면 철저하게 외면한다는 것이다. 또 서류를 갖췄다 해도 국제재판소 안으로 들어가는 것 역시 쉽지 않다. 철저한 신원검증이 이뤄지지 않으면 정문에서 다시 발걸음을 돌려야 한다. 이런 문제점들을 대표단이 어떻게 뚫고 소장을 접수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해 민족회의 측은 “현지 교민들의 도움이 제일 컸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국민들은 말로만 간도문제를 국제재판소에 맡겨야 한다고 했지 누구도 실행한적이 없었다. 일반인들의 접근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며 “우리가 소장을 성공적으로 접수할 수 있었던 것은 교민들 도움도 컸지만 하늘의 도움도 컸다”고 말했다.
헤이그로 떠났던 민족회의의 김영수씨는 “하늘이 우리를 도운 탓인지 헤이그에 도착해 우리를 돕겠다는 현지 교민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관용차량도 없고 수행원도 없는 초라한 모습이라 접수가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교민들이 차량을 제공하고 수행원 역할을 대신했다. 또 소장도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현지에서 새로 꼼꼼하게 작성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이번 ‘헤이그 밀사 파견 작전’ 뒤에는 숨은 공로자가 있었다. 이 공로자는 일명 ‘헤이그 작전’을 계획하고 총지휘한 인물로 다름 아닌 차길진 법사다. 차 법사는 <일요서울> 지난호(제 796호 참고)를 통해 “오는 9월에 간도반환소송문제로 사회가 떠들썩해질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차 법사는 과거 영친왕 유물을 일본에서 가져온 데 이어 윤봉길 의사의 미공개 사진을 입수 공개해 파장을 일으켰다. 그런 차 법사가 또 다시 큰일을 해낸 것이다. 그를 아는 이들은 “이번 일은 차 법사가 아니면 누구도 못할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외국에 흩어져 있는 우리 유물을 찾아 와야 한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실행하기는 힘들다. 또 간도문제도 찾아야 한다고 외치긴 쉽지만 찾기 위해 나서긴 힘든 게 사실이다. 차 법사는 외교적 문제로 국가도 못하는 일을 행동으로 옮기도 있다.
중국 헤이그 밀사에 보복조치
그러나 이번 소송은 그리 만만한 게 아니다. 소송이 본격화하면 중국이 가만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차 법사는 “국제법상 영토 분쟁은 제소자에 대하여 피제소인 중국이 대응해야 한다. 만약 중국이 무대응으로 일관할 경우 안건이 분쟁으로 인정받기 힘들 수도 있다”며 “중국은 무대응으로 나올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가 일단 간도를 우리 땅임을 잊지 않았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향후 정부가 정식으로 간도를 문제 삼을 때 이번 소송 제기가 큰 의미를 갖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차 법사의 설명에 따르면 일부에는 특정지역의 실질적 점유기간이 100년을 넘길 동안 다른 주변국가의 이의가 한 번도 없었을 경우 이 지역은 실질 점유국 소유로 넘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100년 동안 이의제기가 없었다면 소송에 매우 중대한 영행을 미친다. 이번 소송제기가 큰 의미를 가진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한편 차 법사는 중국이 겉으로는 무대응 자세를 취하면서도 물밑으론 보복조치를 강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차 법사는 “중국은 이번 일로 나의 중국 방문을 비롯해 중국내 활동 그리고 민족회의 관계자들의 중국 방문 등을 모두 차단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간도협약은 1909년 9월4일 일제가 청나라로부터 남만주철도 부설권을 보장받는 대가로 청나라와 맺은 협약으로, 당사국인 우리의 주장은 무시된 채 간도에 대한 청나라의 영유권이 인정됐다. 그러나 분단국가라는 약점과 중국의 압력으로 인해 100년이 되도록 남북한 누구도 공식적인 제소를 하지 못했다.
#한국 주요 언론들 간도문제 외면
차길진 법사는 국제재판소에 간도협약무효청구소송을 제기한 것과 관련 언론들의 무관심에 탄식했다.
차 법사는 “이번 간도소송을 언론에 알리려 했으나 언론은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땅과 국민은 국가를 이루는 근간임을 감안할 때 우리 영토인 간도를 되찾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도 주요언론은 여기에 관심을 가지지 않아 실망을 넘어 놀랍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지식인들의 국가관이 얼마나 흐릿한지 새삼 알게 됐다는 얘기다.
또 차 법사는 “국제재판소는 일반 법원이 아니다. 민사 형사 사건을 처리하는 곳도 아니고 개인의 민원을 받아 주는 곳도 아니다. 국가 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곳이다. 그래서 소송진행의 절차가 우리 사법기관과 많이 다르다.”고 말했다.
차 법사와 민족회의 측에 따르면 국제재판소는 개인의 탄원서는 받지 않는다. 또 절차를 거치지 않은 국가의 탄원서도 받지 않는다. 이런 서류는 모두 쓰레기통으로 직행한다. 민족회의의 ‘헤이그 밀사’가 국제재판소에 제출한 서류는 엄밀히 말해 우리가 알고 있는 소장이 아니라 탄원서(petition)다. 이런 점을 들어 언론은 민족회의가 소장을 접수한 게 아니라 탄원서를 내고 왔을 뿐이라며 민족회의의 ‘헤이그 밀사’를 그저 국제재판소에 탄원서를 내고 구호를 외치고 온 ‘헤이그 시위단’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민족회의의 김영수씨 설명을 들어보면 국제재판소는 소송을 받아들이는 절차가 다르다. 소장을 제출하면 소송이 진행되는 우리 법원과 달리 먼저 국가나 민족 대표 자격으로 재판소 내 행정관에게 탄원서를 제출해야 한다. 그러면 이것이 그 자리에서 접수 또는 거부가 결정된다. 탄원서가 접수될 경우 이것은 분쟁의 소지가 있는지 검토되고 분쟁의 이유가 충분해 재판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그때 비로소 양쪽이 소명자료를 내고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된다.
민족회의는 국제재판소에서 탄원서를 접수했다는 접수확인증을 갖고 있다. 이는 현재 분쟁여부를 국제재판소에서 심사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따라서 소송을 제기한 것과 거의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은 맞다고 봐도 무방하다. <윤>
[윤지환 기자] jjh@daily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