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걱정 하지 않게 ‘가장 역할’…몸보신 요리는 ‘주방장급’

2006-03-20     구명석,이범희 
지난 16일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일본과의 경기에서 2승을 통해 4강의 진출의 꿈을 이룬 한국대표팀은 승승장구하며 우승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4강 우승 뒤에는 보이지 않는 아내들의 수고와 헌신이 있었다. 미국 플로리다 반도에 스프링캠프를 차린 한국 대표팀의 선수들은 가족이 이역만리에서 외로움과 시련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의 원천이라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선수생활을 하며 팀내 주전 자리는 물론 메이저리그의 진출을 꿈꾸며 매일 동료들과 ‘소리없는 전쟁’을 치러야 하는 만큼 편안한 휴식을 제공하는 가족의 소중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특히 자신으로 인해 수고하고 고생하는 아내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이런 선수들 뒤에는 남모르게 가슴을 조이며 응원을 하는 ‘아내’들이 있다. 김인식 감독, 선동렬 코치, 이종범, 구대성, 박찬호 이승엽선수 아내들의 남편 사랑법을 알아봤다.

선동렬 코치부인 ‘조용한 보살핌’

야구대표팀의 선장인 김인식 감독은 특유의 리더십으로 승리를 이끌어낸 명장이다. 김감독의 가족들은 그동안 가슴 졸이며 야구경기를 지켜봤다고 한다. 신화를 만들며 우뚝 선 김감독의 든든한 후원자는 역시 가족이었다. 그러나 김감독의 부인인 안명혁씨는 밖으로 드러나는 것을 꺼리고 있다. 스포트 라이트는 남편인 김감독 몫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안씨는 거듭된 인터뷰 요청에도 손사래를 쳤다. 안씨는 드러나지 않는 내조로 김감독을 편안하게 하는 스타일로 알려지고 있다.슈퍼스타 선동렬(43) 선수가 삼성라이온즈 감독이 되기까지 그 뒤에는 보이지 않는 아내의 인내와 헌신이 함께 했다.

아내 김현미(39)씨는 신혼초부터 슈퍼스타 선동열 선수의 안사람으로서 많은 변화를 겪어야 했다. 조용하던 생활은 들썩한 대스타의 등장으로 복잡해졌다. 만난지 두달여만에 결혼한 만큼 신혼초기는 연애시절의 감정이 이어져 꿈같이 흘러갔다. 그러나 곧 ‘남편 선동열’과 ‘야구스타 선동열’을 구분지어야 할 필요를 느껴야 했다. 결혼 1년이 지날 즈음이었을 때였다. 남편에게 사랑만을 원한다면 한국을 대표하는 선동열 선수에게 짐이 될까해서였다. 그래서 이즈음 아내로서 지녀야할 내조수칙 1조를 정했다. 바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 본래 성격도 조용한 편인 김씨는 자신을 가능한 한 베일뒤에 숨기려고 애를 썼다. 자식과 남편 뒷바라지에 모든 것을 쏟는 동양적인 여인상을 가진 것이다. 아직도 남편 사랑에 폭 빠져 있고 싶은 신혼초기였지만 1년이 지나면서 인내하기로 마음먹었다.

일년의 반은 원정경기로 출타중인데다 광주로 돌아와서도 밤이 늦어서야 집에 들어오는 남편이 야속했지만 내놓고 감정을 드러내진 않았다. 결혼한 뒤로 여지껏 딱 한번 야구장을 찾았다. 91년5월11일. 전날 쌍방울전에서 선발로 나선 선동열이 출장하지 않는 경기였다. 처음으로 야구장에 나간 김씨는 가슴이 설레였다. 그런데 남편 곁에 앉아 경기를 보다가 “마운드에 서지도 않았는데 경기에 몰입하는 동열씨를 보면서 아, 내가 야구장에 나오면 나 때문에 더 신경이 쓰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경기가 김씨의 야구장 첫 경험이자 마지막 경험이 됐다.

“이전에는 동열씨가 던지는 모습을 보는 것이 더 좋았지만 이제는 경기결과만 뉴스를 통해 아는 것이 더 편해졌어요.” 최소한의 부담도 줄이려는 세심한 배려였다. 남편 선동열이 최고의 컨디션으로 경기에 나갈 수 있도록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데 모든 정성을 쏟았다. 최고스타의 부인답지 않게, 그리고 동서양을 날아다니던 스튜어디스 출신답지 않게 소박하다. 아들 민우, 딸 민정을 돌보며 식사 때면 선동열이 좋아하는 요리를 하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처음에는 요리솜씨가 서툴러 애를 먹었지만 이제는 선동열이 좋아하는 김치찌개를 비롯해 신선한 육류를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아직도 아내로써 완전한 살림꾼이 아니다”라고 겸손이 말하는 김현미씨.

이종범 아내, 아늑한 분위기 연출

과거 ‘바람의 아들’이란 찬사를 받았던 이종범(36) 선수는 일본에 진출한 3년반 동안 부상과 성적 부진으로 마음고생을 심하게 하다 다시 국내에 복귀해 제 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그의 아내 정정민씨(35)를 만나 힘들었던 일본에서의 생활과, 그래서 더욱 깊어진 가족간의 사랑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기아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고 야구경기장에 돌아온 스타다. 그에게 쏟아지는 야구팬들의 환호가 대단하다. 경기마다 수천명의 팬들을 몰고 다니는 ‘이종범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의 좌절과 공백에도 불구하고 ‘바람의 아들’은 여전히 건재했고, 팬들은 뜨거운 환호로 그에 화답하고 있다.

이종범 선수의 부인 정씨는 ‘이종범 열풍’에 대해 의외로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그만큼 그의 복귀는 이종범에게나 가족들에게 힘들고 신중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이종범의 집은 편안하고 깔끔한 분위기이다. 그의 집은 전체적으로 안정된 느낌을 주는 화이트 톤으로 아래층은 아들 정후와 딸 가연이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편안한 공간으로 만들어 놓았다. 디자이너 출신답게 정씨가 인테리어 전문가인 후배의 도움을 받아 ‘스타 플레이어의 휴식과 아이들의 놀이’에 적합한 공간으로 직접 꾸민 것이다.아내와 아이들을 배려하는 이종범의 마음만큼이나 남편을 배려하는 정씨의 마음 씀씀이가 알뜰하다. 정씨는 ‘가족과 최대한 편하게 만나고 즐겁게 지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프로선수의 아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내조라고 말한다.“사실 전 야구를 잘 몰라요. 결혼한 후에야 비로소 사이클링 히트 같은 야구 용어를 알게 됐을 정도죠. 하지만 오빠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팬들에게 가장 멋있는 플레이를 보여 줄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됐죠.”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마당에 돌이키고 싶지 않겠지만 사실 이종범이나 정씨에게 일본에서의 생활은 너무나 힘들었다.

“부상 이후 너무나 힘들었어요. 구단 측이 용병선수들, 특히 아시아계 선수들에게 은연중에 스트레스를 주곤 했는데 올해 들어서는 내놓고 차별을 하는 거예요. 한 마디로 더 이상 일본에 있을 희망이 없어진 거죠.”이렇듯 좌절 속에 있는 남편을 지켜봐야 했던 정씨의 마음고생도 적지 않았다.“저도 힘들었죠. 하지만 오빠만 했겠어요. ‘힘내라’고 편지를 써서 가방에 넣어주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요.”일본에서 힘들 때 정씨가 편지를 써 가방에 넣어주었듯이 요즘은 이종범이 가끔씩 쪽지를 건네주곤 한다는 것이다. 그 쪽지에 빠지지 않는 세마디는 ‘가족이 소중하다’, ‘고맙다’, ‘사랑한다’라는 것. 연애시절을 생각하면 ‘놀라운 발전’이라는 것이 정씨의 이야기다.이종범은 힘이 들수록 경기 이외의 시간 대부분을 가족들과 함께 보냈다고 한다. 몸과 마음이 힘들 때 일본에서 얻은 두 아이로부터 가장 큰 위로를 받았다. 부모님과 자신을 믿어주는 가족이 있기 때문에 결국 고국에서 다시 시작할 용기를 갖게 된 것이다.

구대성 ‘열성내조’ 와이프 자랑

한국인 선수로는 10번째로 빅리그 입성이 기대되는 구대성(37.뉴욕 메츠) 역시 아내 권현정(35)씨와 딸 영은(9)양과 아들 상원(7)군이 큰 힘이 되고 있다.포트세인트루시까지 찾아온 아내 권씨는 구대성의 건강을 직접 챙기며 된장국 등 한국 토종 음식을 내놓고 가끔 가족이 한국식당(서울가든)을 찾아 외식을 하며 낯선 생활로 인한 긴장감을 풀기도 한다.특히 구대성의 진로 결정과정에선 2살 아래의 부인 권씨가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권씨는 구대성과 한양대 동문으로 스튜어디스를 지낸 미모의 여성이다. 지난 2000년말 구대성이 오릭스에 입단할 때의 일이다. 당시 구대성은 오릭스와 투구이닝, 승수 등에 여러 가지 조건을 붙여 별도의 옵션조항을 두었는데 서울시내 한 복판의 호텔에서 열린 오릭스 입단발표 기자회견장에서 구대성에게 옵션내용을 물어보았다. 그러자 구대성은 곁에 있던 부인한테 알아보라고 말했다.

권현정씨 입에서 술술 옵션내용이 나왔는데, “아직 협상이 끝나지 않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지난해 1월 뉴욕 메츠에 입단할 때도 권씨가 많은 부분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권씨는 특히 구대성의 이적시 자녀 교육에 관한 것도 꼼꼼히 따져본다고 한다.부인 권씨가 이처럼 구대성의 진로에 깊숙이 개입하는 것은 구대성 스스로가 복잡한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구대성은 한화시절 특급 마무리로 이름을 날렸는데 종종 만루의 위기에서 세이브를 올린 뒤 인터뷰를 하러 기자실에 들른 구대성에게 “비결이 뭐냐”고 물어보면 “별 생각 없이 던졌다”고 말하기 일쑤였다.그 상황에서 ‘혹시 만루홈런을 허용하면 어쩌나’하는 떨리는 마음으로 마운드에 오른다면 지레 겁을 먹고 쉽게 무너질 수도 있는 게 마무리 투수이다.

그런데 구대성은 어떤 위기상황에서도 태연하게 공을 던졌다. 왼손의 장점에다 바로 이같은 대범함이 상대 타자들을 압도한 것이다. 한마디로 야구도 아주 단순하게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것저것 따지며 신경쓰는 것은 영 어울리지 않는 스타일로 보였다고. 이런 구대성 옆에서 꼼꼼하기 그지없고 계산이 빠른 아내 권씨가 챙겨주고 있으니 가히 환상 커플이다.

박찬호 파워의 원천은 새신부

새 신랑 박찬호(32ㆍ샌디에이고)는 매 경기마다 싱글벙글 표정이다. 아직 박찬호는 아내 박리혜(29)씨와 신혼의 단꿈에 젖어있는 모습이 역력했다. “박찬호의 호투는 바로 내조 덕분이다.” 배우 정준호가 한국 야구 드림팀의 WBC 무패 행진과 함께 박찬호 선수의 호투를 격찬했다. 정준호는 15일 스포츠한국과 전화 인터뷰에서 “박찬호 선수의 WBC 마무리 계투는 최근 가장 돋보이는 용병술이었다. 박찬호 선수가 결혼 후 아내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정준호는 지난 2월 미국에 방문했을 당시 박찬호 부부를 만났던 에피소드를 공개하면서 16일 경기의 승리를 기원했다. 당시 정준호는 박찬호의 집에 초대를 받았는데 박 선수의 아내인 박씨는 자상한 내조에 깜짝 놀랐다. 박리혜 씨는 박 선수가 혹여 입맛을 잃을까 된장찌개 등 한국 음식으로 식단을 꾸미는 등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고 있었다.정준호는 “박찬호 선수가 결혼한 후 워낙 잘 먹어 몸이 너무 건강해지는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며 “결혼한 후 안정을 찾은 덕분에 성적이 갈수록 좋아지는 모양이다”고 말했다.

이송정 “승엽씨는 혼자 밥도 못먹어”

아시아 홈런왕의 자존심을 구기며 일본 진출 첫해 혹독한 실패를 경험했던 이승엽(30. 요미우리). 야구를 포기하고 싶다고까지 했던 그가 1년간의 절치부심 끝에 다시 화려하게 부활했다. 일본 야구에 대한 자신감 회복을 가능하게 만든 ‘부활 사부’가 김성근 코치였다면 아내의 임신은 정신적인 면에서 커다란 힘이 됐다. 낯선 이국땅에서 남편 내조에만 전념한 아내에게 감사하고 있다. 이승엽의 부인 이송정(24)씨는 첫 아이 출산을 코앞에 두고 있지만 일본에 남아 내조를 계속하기로 했다.

이 씨는 이제 출산을 열흘 남짓 앞두고 있다. 보통의 경우라면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이 일반적이다.(일본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국적에 있어 속인주의를 택하기 때문에 일본에서 아들을 낳아도 일본 국적이 주어져 한국에서 군복무가 면제되는 따위의 입에 담기도 낯뜨거운 일은 절대 없다) 첫 아이인데다 모처럼 친정에 머물며 친정식구들의 맘 편한 보살핌 아래 산후조리에 임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그럼에도 이 씨가 일본 잔류를 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 한국에 돌아가면 시즌이 끝날 때까지 돌아오기 힘들다. 남편은 집안일에는 별 소질이 없는 것 같다. 내가 없으면 아마 밥도 제대로 못 챙겨 먹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도 중요하지만 남편 뒷바라지는 포기할 수는 없다라는 이승엽 남편에 대한 이씨의 사랑이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