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세계지배 시대는 가는가?

2007-09-11     정우택 편집위원 
세계는 지금 보호무역 주의보

2006년 초 아랍에미리트의 국부펀드인 두바이포트월드(DPW)는 미국 뉴욕 항만의 운영권을 사들이려고 했다. 8천7백50억 달러나 되는 엄청난 펀드를 이용, 미국의 자존심인 뉴욕 항만의 운영권을 차지하기 위해서였다.
아랍에미리트 계획에 대해 미국은 깜짝 놀랐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뉴욕 항만을 손아귀에 넣으려 한다니 말이 되느냐’는 것이었다.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지만 미국이 더 고민한 것은 국가 안보였다. 뉴욕 항만을 외국에게 통째로 내줄 경우 국가 안보가 위협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배경엔 자국의 산업과 경제를 보호하려는 보호주의가 깔려 있다고 봐야 한다. ‘보호주의’의 사례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세계적으로 외국인의 직접투자(FDI)를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넓게 나타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각국이 자국의 중요 산업을 지키려는 보호주의 성향이 짙게 작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신문은 중국, 러시아, 캐나다, 인도, 독일 등 주요 국가들은 외국자본이 자국의 기업, 공장, 부동산과 천연자원 등의 취득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 말고도 많은 나라들이 FDI를 제한하기 위해 관련 법규를 고칠 움직임이다. 미국은 이런 현상이 세계 경제성장을 위협할 것으로 우려한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최근 천연자원과 생명과학 기술 등 39개 분야에서 외국인의 소유 제한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초기 단계 무역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국도 외국인의 투자가 ‘경제 안보’에 위협이 될 경우 이를 제한할 수 있도록 했다. ‘경제 안보’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될 정도로 범위도 넓어 정부 마음대로 외국인투자를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계 사모펀드인 칼라일은 최근 중국의 충칭상업은행 주식 지분을 인수하기 위해 시도했지만 결국 정부 규제로 뜻을 이룰 수 없었다. 독일의 자동차 부품회사인 셰플러도 뤄양베아링에 눈독을 들였지만 중국의 전략산업이란 이유로 좌절됐다.

선진국이라 해서 보호주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꼽을 수 있는 게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포트월드의 뉴욕 항만 운영권 인수를 꼽을 수 있다. 또 중국 국영해양석유회사 (CNOOC)가 미국의 유노칼을 인수하려하자 정부가 이를 막은 일도 있다.

독일은 각국 투자펀드가 독일기업을 쉽게 인수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만들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의 경우 외국의 대형 투자펀드, 특히 국부펀드를 규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다. 캐나다도 외국인의 국내 기업 인수에 대한 규정을 엄격히 할 계획이다.

프랑스는 에너지회사 수에즈를 인수하려는 이탈리아 기업의 시도를 막았고 스페인과 폴란드도 외국자본의 자국 에너지기업 및 은행 인수를 막았다. 볼리비아 등 남미국가는 외국자본이 갖고 있는 주요 산업을 다시 국유화하겠다고 서슴없이 말하고 있을 정도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 따르면 2005년 93개국이 FDI 관련법규를 고쳤다. 이 가운데 20%가 외국인투자를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 비율은 1995년 5%에서 1996년 14%까지 올라갔다 2000년엔 3% 정도로 뚝 떨어졌다. 외국인 투자를 제한하기보다 촉진하는 것이었다.

보호주의가 확산되면서 가장 속이 타는 나라는 아무래도 미국이다. 미국은 외국기업과의 제휴나 합병을 통해 세계를 누비고 있다. 규제가 강화되면 다국적 기업 활동이 움츠려들기 때문이다. 다국적 기업 활동이 부진하면 미국에 대한 투자도 줄고 경제성장과도 연관이 된다. 기업과의 제휴나 합병을 통해 커온 미국 기업들에게 타격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로버트 가미트 미국 재무장관이 최근 러시아와 중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세계 경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투자제한 행위가 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것도 투자 장벽을 낮추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볼 수 있다.

한편 FDI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있음에도 인수합병(M&A)은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톰슨 파이낸셜에 따르면 2006년에 1만1천6백건의 국가 간 M&A
가 이뤄졌다. 이는 2005년의 9천8백75건보다 17.8%가 급증한 것이다. 2000년의 M&A건수는 1만2천6백건이었다.


#보호주의 영향은
경제흐름 역행, 독과점 기업 득세할 듯


우선 보호주의는 세계경제 흐름과 역행한다. 세계무역질서가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통해 자유화 쪽으로 가고 있는데 보호주의는 이와 정반대 정책이다. 자유주의를 보호주의로 바꾸는 것은 쉽지만 보호주의를 자유주의로 바꾸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어렵다. 보호주의가 고개를 드는 것은 물길을 막는 것과 같다.

보호주의는 자본흐름을 막는다. 금융시장과 상품이 물 흐르듯 해야 하지만 어느 순간 막힌다. 자금흐름이 막히는 것은 경제가 동맥경화증에 걸리는 것과 같다. 아랍에미리트를 비롯한 중동국가, 중국 등 오일달러가 풍부한 나라는 돈이 넘쳐 주체할 수가 없는 실정이다. 이런 돈이 적절한 곳에 투자되지 않을 땐 은행에 묵혀야 한다.

FDI 규제가 강화되면 국가 간에 M&A가 어려워진다. 자금력이 있어도 외국의 좋은 기업이나 부동산, 천연자원 등을 사들이기 힘들어진다. M&A를 통해 활성화될 수 있는 기업이 자금부족으로 자국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소비자들은 비싼 물건을 써야한다. 외국자본의 투자나 M&A가 활발하면 경쟁이 뒤따르고 그만큼 물가는 떨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투자가 규제를 받으면 자국 안에 있는 몇몇 기업들만 실속을 챙기게 된다. 독과점이 생길 수도 있고, 품질이 떨어지는 물건을 할 수 없이 써야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물건 값이 비쌀 수밖에 없다.


##보호주의 둘러싼 입씨름
국가실리 놓고 동상이몽 빈번


FDI규제 움직임을 두고 나라끼리의 설전도 볼만하다.

대부분의 국가가 정작 자신들은 FDI규제를 상황에 따라 적절히 활용하면서 상대국가에 대해선 그냥 두라고 하고 있다.

중국 상무부 고호성 부부장은 최근 미국이 보호무역주의로 미-중 관계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고 부부장은 중국산제품에 대한 미국의 지나치게 엄격한 검사가 양국 간의 무역관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미국의 이런 조치가 세계 경제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무역대표부는 최근 세계무역기구(WTO)에 지적재산권 보호가 태만하다며 중국을 제소한 일이 있다.

독일, 프랑스 등 EU(유럽연합) 국가들은 중동, 중국, 러시아 등이 갖고 있는 국부펀드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엄청난 양의 달러를 가진 이들 나라가 외국기업 인수에 본격 나서자 이를 견제해야 된다는 소리를 높이고 있다.

미국의 보호주의 바람도 간단치 않다.

겉으로는 FTA를 통해 자유무역을 외치면서도 뉴욕항만 인수와 같은 민감한 사안에 대해선 고개를 흔들고 있다. 기업의 이해가 걸렸거나 나라 간의 이권이 걸린 문제일수록 더욱 그렇다.

EU는 미국의회의 보호주의가 항공자유화 협정을 어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협정이 발효되면 유럽항공사들은 취항횟수와 운항기종에 제한 없이 미국을 상대로 영업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 의회의 새로운 보호주의가 이를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자국 항공사에 대한 외국인투자를 의결권주식의 25%까지만 허용하고 있다.

EU는 이를 49%까지 늘리라고 요구하고 있다. 양쪽 견해 차이가 크게 나타나는 대목이다.

덴마크는 EU의 보호주의정책을 비난하고 있다. EU가 수입품에 대한 보호관세 부과 및 수입규제 등을 통해 보호주의 방향으로 기울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재무장관들이 세계 각국에서 일고 있는 보호주의 움직임에 경고장을 던졌다.

이들은 8월초 호주 쿨럼에서 열린 APEC 재무장관회의에서 보호주의가 세계 경제성장을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나라 간 장벽과 투자를 방해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다며 이의 개선도 촉구했다.


###우리나라와 보호주의
“한국은 M&A 천국” 투기자본 군침


우리나라는 국제통화기금(IMF)을 원흉으로 사실상 무방비 상태다. 외국에서 볼 때 우리나라는 M&A 천국이라고 할 수 있다. IMF가 터진 뒤엔 국내 기업과 큰 건물 등을 외국인에게 팔지 못해 안달이 났던 때가 있다. 달러도 중요했지만 ‘투자유치’란 명분아래 너무 많은 기업들이 외국인 손에 넘어갔다.

대표적인 곳이 국민은행이다. 일반인들은 국민은행이 우리 은행인줄 알고 있다. 하지만 사실은 외국인 손에 넘어 간지 꽤 오래된다. 외환은행도 론스타에 팔렸다가 또 다른 주인을 찾고 있다. 쌍용자동차도 중국에 팔렸다. 서울 역삼동 스타타워 빌딩도 우리 건물이 아니다.

이런 회사들은 국내기업을 언제든지 인수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출자총액한도, 금·산 분리 등 각종 규제를 만들어 국내기업 인수를 사실상 어렵게 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은행 등 주요 기업들이 외국인 손에 넘어가고 만 것이다. 결국 자본과 기술이 고스란히 해외로 빠져나간 셈이다.

좋은 기업, 큰 건물, 은행 등이 외국인 손에 넘어가면 걱정하고 아쉬워하기보다 ‘달러가 얼마가 들어왔느니, 투자를 유치했느니’ 하면서 이를 자랑하고 다니는 게 우리들 모습이었다. 우리 기업과 부동산을 비롯한 중요 시설이 외국인 손에 들어간 것은 생각 않고 투자유치를 공적으로 내세우는 정부와 공직자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우리 시장에 대한 외국인들의 직접투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 바꿔 말하면 외국인이 볼 때 먹을 게 있다는 얘기다. 국내 기업이 인수할 수 없도록 돼있으니 외국기업들이 덤벼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 만큼 투자이익이 보장되는 게 우리나라에 대한 투자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지난 7월 ‘최근 외국 자본 진출에 대한 자국보호주의 확산동향’이란 자료를 통해 자유무역주의 약화가 글로벌 경제시장을 위축시키는 요
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