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방문은 내생애 최고의 터치다운”
2006-04-11 이범희,사진=이병화
“바쁘지만 기쁘다”
3일 오후. 입국 게이트에는 워드가 도착하기 수시간 전부터 몰려든 취재진과 인파들, 수백명의 경찰병력들로 인해 북새통을 이뤘다. 공항 관계자들조차 “이렇게 많은 인파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귀국 때 이후 처음이다”, “동해용왕이 입국하는 것 같다”며 놀라는 모습이었다.검은 모자와 갈색 선그라스, 청바지에 헐렁한 회색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모습을 드러낸 워드는 몰려든 인파에 적잖이 놀라는 듯했으나, 이내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고국의 환대를 즐겼다. 15시간에 가까운 장시간 비행으로 피곤했을 텐데도 워드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생후 5개월만에 미국으로 간 그는 고국에 대한 일말의 기억조차 없을 터. 그러나 ‘영웅’이 되어 근 30년만에 고향땅을 밟은 그는 시종일관 여유로운 표정으로 ‘beautiful!(아름답다)’,‘pretty(예쁘다)’를 연발했다.
슈퍼볼 영웅의 표정에서는 고국에서 맞이할 새로운 경험들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교차하고 있었다.다음날 워드는 숙소인 롯데호텔 에메랄드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회견 내내 들뜬 어린아이처럼 환한 미소로 답변해 화기애애했다. “저를 한국인으로 받아준 것에 대해 감사하다”며 “과거에는 한국인이라는 것이 창피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한국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워드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어머니 김씨와 함께 청와대를 방문. 노무현 대통령 내외 및 김명곤 문화관광부 장관과 오찬을 했다. 그간의 성공스토리에 대한 담소를 나눴다. 노 대통령은 스포츠 영웅이 되기까지 기울인 열정과 노력을 격려하고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낸 김씨의 희생과 사랑에 경의를 표했다.
환한미소로 스케줄 소화
이어 5일에는 서울시청에서 워드를 만날 수 있었다. 이명박 서울시장은 “한국인 특유의 정신으로 성공해 국민들로 하여금 자긍심을 키워줬다. 효심에 감동받았다”며 538번째 명예시민증을 전달했다. 쉴 틈 없이 돌아다니던 워드는 항상 웃는 모습이었지만, 이날만큼은 감회가 새로운지 취재진들 앞에 눈물을 보였다. 6일 2시34분경 동대문 이대병원을 찾은 워드. 자신이 태어난 곳에 30년만에 왔다는 기분에 얼떨떨해 보였다. 이날도 많은 취재진에게 ‘thanks(감사하다)’라는 말을 연발하며 병원을 돌아다녔다. 30년전 자신을 직접 받아준 주치의 유한기(65·이대산부인과교수)씨를 만나자 “생명의 은인을 만나 기쁘다. 감사하다”며 취재진을 등지고 다음 일정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워드 일행은 8일 이후의 모든 공식일정을 취소했다. 한국 측 대행사인 리인터네셔널에 따르면 “워드가 한국측 취재진의 지대한 관심에 부담을 느껴 쉬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고 밝혔다. 또한 제주도 일정도 ‘쉬고싶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워드는 귀국 후 일정을 소화하며 방문처마다 모여드는 취재진과 일반팬들의 사인공세에 웃으며 대응했지만 심적으로 큰 부담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 어머니 “김영희”씨 말말말차별한 조국에 ‘뼈있는 충고’
“우리 워드가 유명해지니 관심을 참 많이 가져준다. 부담스럽다.”5일 오후 아들 하인스 워드와 함께 펄벅재단사무실을 찾은 김영희(59)씨는 20여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물만 흘렸다. 워드가 흑인 혼혈 어린이들과 사진을 찍는 동안에도 입을 꼭 다문채 앉아 눈물만 흘렸다. 급기야 혼혈아동들의 엄마들이 상기된 얼굴로 찾아오자 질타의 목소리와 함께 한국 사람들에 대한 속내를 내비쳤다.김씨는 “한국사람 안 쳐다보고, 생각 안 하고 살아온 30년이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애기 엄마, (힘들었을 때)내가 워드 데리고 한국 왔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저 놈 거지밖에 안됐겠지? 여기선 누가 파출부라도 시켜줬을까.”“한국 사람들은 말이야. 좀 그렇지. 미국에서도 한국 사람들끼리 사이가 별로 좋지 않잖아. 이민 온 사람이 우리들을 무시하고 피부색깔도 같은 한국 사람들끼리 인종을 더 차별하잖아. 근데 참 이상해. 우리 새끼들이 피부색 다른 것은 그렇게 싫어하는데, 그렇게 머리는 노랗고 빨갛게 물들이고 다니는지…”라며 말을 흐렸다.또한 김씨는 “내가 그렇게나 힘들 때는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더니, 이제 와서 우리 워드가 유명해지니 관심을 참 많이 가져준다”며 “좀 그래. 부담스럽지 뭐. 세상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니야”라고 했다. “그래도 아쉬움은 진짜 없다”고 김씨는 말했다.
# 귀하신 몸 ‘특별전담팀 구성’ 최상급 대접
‘슈퍼볼 영웅’ 하인스 워드가 어머니 김영희(59)씨와 함께 3일 입국했다. 10일간의 행복한 모자(母子)나들이는 귀빈급 대우였다. 한국의 정서를 만끽할 수 있는 충분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이번 방한이 ‘어머니와의 약속’이기에 후원업체들은 최대한 어머니 김영희씨의 편의를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10일간 워드 모자(母子)를 위해 준비된 편의시설은 무엇이었을까.
▲ 잠자리는 롯데호텔서울 로열스위트호텔 측의 모든 서비스는 어머니 김영희씨 편의에 맞춰졌다. 이번 여행이 ‘어머니를 위한 것’이기 때문. 워드 모자(母子)는 방한기간 동안 가구와 실내장식이 유럽 전통의 로코코 양식으로 꾸며진 롯데호텔서울의 로열스위트에서 생활했다. 객실 안에서는 아름다운 전경이 내려다보이고 식사도 워드와 어머니가 함께 오붓하게 할 수 있는 객실을 마련했다. 화장실로 이어지는 턱이 높다는 의견에 따라 워드 어머니가 불편 없이 욕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욕실 턱에 보조 대리석을 설치하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또 침실 내에는 ‘웰컴’이란 문구와 하인스워드 이름이 새겨진 베개·침대커버를 특별 주문했고, 한국적 소품을 별도로 준비했다. 이 방은 메이저리거 투수 박찬호 선수가 묵기도 했고, 하루 600만원이 넘는 방이다.
▲ 식사는 조리 전담팀이 ‘해결’ 방한기간 하인스 워드 모자(母子)가 호텔 내에서 먹는 요리는 지난해 방영된 ‘대장금’에서 나올법한 음식들로 차려졌다. 이병우 총조리장을 비롯한 호텔 내에서 최고로 꼽히는 5명의 ‘특별 하인스워드 전담팀’이 구성되어 활약했다.전담팀은 워드가 “갈비와 김치를 먹어보고 싶다”는 말에 따라 최고급 횡성 한우로 만든 특제갈비와 10년 묵은 김치로 만든 김치찌개와 삼계탕, 어머니 김영희씨가 워드에게 끓여줬다던 수제비까지 준비해 워드의 입맛을 사로잡았다.특히 한식당은 한국 전통의 맛을 경험하도록 12가지 코스인 ‘대장금 궁중요리’를 마련. 워드를 감동시켰다. 정문환 한식조리장은 일본의 메리 매컬리스 아일랜드 대통령과 2000년 남북정상회담 시 평양에서 직접 만찬을 준비할 정도로 대가로 꼽히는 인물.
▲ 의상은 ‘하인스 워드 패턴’ 영구보관하인스 워드 모자(母子)가 방한 기간 중 타는 차는 국내 최상위급 승용차인 기아자동차의 대형세단 ‘오피러스 GH380 프리미엄’. 워드 일행이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이 차를 타고 이동했다. 기아차는 워드 일행이 이동할 때는 차량 3대를 제공했다. 워드가 탄 차량은 경매를 통해 판매, 낙찰금 전액을 ‘하인스 워드 장학재단’에 기탁할 예정이다. 옷 역시도 제일모직의 신사복 갤럭시(GALAXY)와 스포츠캐주얼 후부(FUBU)를 입었다. 제일모직 측은 의전용 옷을 제공하기 위해 지난달 25일 디자이너를 하인스 워드의 자택으로 파견. 워드의 치수를 재는 열의를 보였다. 워드에게 제공된 신사복은 ‘하인스 워드 패턴’으로 명명하고 별도의 영구 ID를 부여해 보관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