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감동 이벤트 ‘준비중’…고건-정동영 분열틈새 ‘노린다’

2006-04-11     이금미 
“호남을 잡아야 대권이 보인다.”지방선거를 앞두고 세 불리기에 나선 고건 전총리와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의 호남 맹주 혈전이 치열한 가운데,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도 가세해 호남에 대한 애정을 거듭 밝히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당내 경쟁자인 이명박 시장을 따돌리고 얼마 남지 않은 대표 프리미엄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박 대표 측근 진영에선 “호남을 잡지 않고는 2007년 대선 승리는 어렵다”는 공공연한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5월31일 지방선거 이전 호남 표심 공략을 위한 ‘빅 이벤트’도 준비됐다는 한 측근의 귀띔에서도 박 대표가 주인공인 ‘호남대첩’이 멀지 않았음이 감지된다. 박 대표의 호남 나들이, 올해 들어서만 벌써 네 번째다. 하지만 잦은 호남 방문을 두고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행보라는 분석은 없다. 호남 지역에서 당선자를 내기보다는 비호남 지역에 거주하는 호남출신 유권자들을 끌어안기 위한 전략이다.

실무진도 모르는 공약 개발

물론, 길게는 차기 대권주자의 입지를 다지기 위한 의도도 다분해 보인다. 지난 대선과 같이 호남지역에서 한나라당 지지도가 한 자릿수에 그친다면 차기 집권은 여전히 요원한 과제이다. 정책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현하는 데서도 이러한 의지가 감지된다. 우리당이 호남고속철도 구간에 ‘공주역’을 신설하겠다고 발표하자, 정치권은 한바탕 난리를 겪었다. 충남도민을 겨냥한 공주역 신설공약은 곧바로 오송역의 기능축소로 이어지기에, 충북도민들의 반발이 일어난 것이다. 급기야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이 호남고속철 관련 간담회에서 서류를 집어던지고 나가버리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지방선거를 앞둔 선심성 공약 남발이 낳은 결과다.

문제는 평소 원칙에 벗어나지 않고, 말을 아끼던 박 대표가 이 틈에 끼여들었다는 것이다. “오송역을 확대 건설하겠다”는 끼워넣기 공약에 실무자들도 모르는 ‘충북 제천 바이오밸리’를 엮는 ‘바이오피아’를 건설하겠는 것. 호남으로 내려갈수록 박 대표가 내놓는 청사진은 장밋빛이다. 호남고속철도 2015년 조기 완공, 광주ㆍ전남 공동혁신도시 건설, 4월중 군산 경제자유구역 지정, 김제공항 건설, 새만금 간척 농지에 기업 유치 등. 여당 대표도 아니고 쉽게 국회를 통과할지도 미지수다. 게다가 대선 공약이라 할 만큼 덩어리가 크다. 그럼에도 박 대표의 호남 사랑은 멈추지 않고 있다.

이벤트도 ‘준비중’

호남표심을 얻기 위해 ‘빅 이벤트’도 준비하고 있다고 한 소식통은 전했다. 잇따른 ‘설화(舌禍)’로 대표 취임 이후 공들인 호남 공략에 차질을 빚어, 이를 만회한다는 계획이다. 박근혜 체제의 한나라당은 김대중 전대통령과의 관계 회복과 동시에 호남의 ‘반(反) 한나라당’ 정서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애써 왔다. 박 대표는 취임 직후 동교동을 방문, “아버지 시절에 여러 어려움을 겪은 것에 대해 딸로서 사과한다”고 했고, 한나라당 대표로서 ‘6·15 남북 공동선언’ 기념 행사에 참석해, 유연한 대북관을 보여줬다.

또 17대 국회 첫 의원 연찬회를 전남 구례에서 열었으며, 의원 전원이 광주 5·18 묘역을 참배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 전대통령 방북에 대해 이회창 전총재의 “시기가 아니라 방북 그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 ‘치매노인’으로 비유하며 6·15 남북공동선언을 폄훼한 전여옥 의원의 실수로 인해 박 대표는 대권주자로서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던 게 사실이다. 때문에 대표직을 수행하는 기간에 김 전대통령과 호남에 대한 사죄의 내용을 담은 이벤트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당내 주장도 있었다. 앞서의 소식통은 “전여옥 의원의 공개 사과”를 선결 과제로 꼽았다. ‘박근혜 사람’이라는 인상이 짙은 만큼 효과도 클 것이라는 계산에서다. 대변인 시절부터 ‘18대 총선 공천 보장’까지 약속할 만큼 전 의원에 대한 박 대표의 신뢰는 높다.

‘강현욱’ 파문 범여권 분열 ‘전주곡’

그렇다면 박 대표가 강수를 띄우며 호남 공략에 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 대표측에선 “여당의 악재가 한나라당엔 기회”라고 말한다. 정동영 의장의 선심성 공약 남발에 이어, 고건 전총리까지 합류해 호남의 맹주를 자처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 사실, 민주당과의 한판 대결도 예측할 수 없는 가운데, 고 전총리까지 나서 판을 흔들고 있어 여당 지도부의 고민은 깊어가고 있다. 한나라당 한 핵심 당직자는 ‘강현욱 전북지사의 불출마’와 ‘납치 해프닝’을 두고 “우리당-민주당-고건으로 이어지는 범여권 분열의 전주곡”이라는 촌평을 내놨다.

여권에 등을 돌린 전통적 지지세력 호남 민심을 다시 결집시키기에는 너무 멀리 돌아왔다는 얘기다. 이는 박 대표의 호남 공략이 단계적이고 치밀한 이유이기도 하다. 박 대표는 지방선거 지원 투어 첫 방문지로 전남 여수와 광주를 택한 바 있다. 이어 일주일 만에 정 의장의 정치적 고향인 전북 전주를 찾았다.


# 이명박도 ‘호남 공략’ 승부수

영남 출신 대권주자들의 가장 큰 고민은 호남 표심을 공략하는 방법일 것이다. 최근 호남 방문이 잦아진 박근혜 대표의 행보에도 이러한 고민이 묻어난다. 그렇다면 같은 영남 출신인 이명박 서울시장은 어떠한 방법으로 호남에 접근하고 있을까. 박 대표가 ‘나들이’를 매개로한 ‘이벤트’로 호남 표심을 노리고 있다면, 이 시장의 호남 공략은 ‘인책(人策)’으로 압축된다. 호남 출신 인사들을 기용해 대선 발판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소통령’으로 통하지만 서울이라는 한계에 부딪혀, 호남을 위한 실현 가능성 없는 선심성 정책을 남발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시장이 호남 출신 거물급 인사와 회동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면, 정객들의 시선이 머물곤 한다. 17대 총선 이전엔 호남 색채가 짙은 K씨가 이 시장의 영입 대상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어찌 됐는지, K씨는 17대 총선 당시 모 정당의 비례대표로 당선됐다. 최근엔 국민의 정부 고위 관료 출신인 J씨에 이 시장이 러브콜을 보냈다는 후문이다. 이 역시 소문만 무성하다. 한편, 이사장은 자처하는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들과도 복잡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게 한나라당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막역한 사이인 모 후보가 같은 영남 출신인 탓에 ‘당선돼도 고민, 안 돼도 고민“이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