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현 DJ 전비서실장 “양김 화해 마지막 정치적 숙제”

기획특집 | 분열의 시대 넘어 화합의 시대로

2009-05-19     인상준 기자

올해 74세의 후농 김상현 전 의원은 사단법인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회장을 맡고 있다 새천년 민주당 상임고문으로 정치인생을 접은 이후 김 전 의원의 마지막 정치적 숙제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의 화해다. 하지만 본지와 인터뷰 내내 ‘YS-DJ 화해는 더 어려워졌다’고 연신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는 하루에 담배 2갑 이상을 피는 애연가다. 점심을 먹기 위해 올라탄 자동차 안에는 한보루 이상 담배를 비치할 정도다. 노령의 나이에 애연가이지만 기억력은 여전했고 몸도 건강했다. 그러나 87년 대선을 회상할 때는 안타까움과 후회가 얼굴에 고스란히 나타났다. 후농 김 전 의원을 지난 11일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났다.

김 전 의원은 그의 나이 19살 때 DJ를 만났다. 그때부터 그는 근 50여년 생활을 DJ와 함께 정치생활을 했다. 1956년 그가 대한웅변협회 학생부장으로 있을 당시 동양웅변전문학원 원장으로 있던 DJ와 알게 돼 DJ 자택에 신세를 지면서 ‘형님, 동생’으로 발전했다.

이런 인연으로 1971년에는 제7대 대통령 후보였던 DJ의 비서실장을 지냈고 1980년에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구속돼 10년형을 선고 받아 2년3개월 복역했다. 그는 당시를 회고하며 “DJ는 대통령 후보였기 때문에 안기부에서 고문을 하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나는 서빙고 분실에서 고문을 무자비하게 당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여전히 왼쪽 어깨와 왼쪽 다리가 후유증으로 불편하다고 했다.

그는 YS와 DJ를 평하는 기자의 질문에 “우리나라 정치사에 두분은 민주화의 대들보 역할을 했다”며 “그런 분들을 도왔다는 점에서 기쁘게 생각한다”고 짧게 답했다. 김 전 의원이 아파하는 대목을 물었다. 그는 87년 대선 출마를 위해 탈당해 평민당을 창당한 DJ를 따라가지 않고 YS 후보단일화팀에 남았다. 그가 동교동계의 비주류 삶을 걸어야 했던 배경이다.

그는 “당시 양김 후보 단일화가 우리나라 정치사에 가장 중요한 전략 포인트였다”며 “나는 김영삼 총재와 DJ에게 후보 단일화만이 분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만약에 후보 단일화가 되지 않는다면 결국엔 군사정권인 노태우 정권을 연장시키는데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까지 했지만 DJ가 탈당해 평민당을 만들고야 말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DJ 탈당 정말 잘못됐다” DJ도 시인

이어 그는 “그때가 내 생애 가장 어려울 때였다. DJ 탈당으로 나 또한 탈당하고 따라나가야 하는 지 심각하게 고민했다”며 “탈당하면 결과적으로 노태우 후보를 도와주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개인적으로 존경하지만 따라 나갈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양김이 후보 단일화를 했다면 노태우 정권은 탄생되지도 않았을 것이고 또한 민주세력이 사분오열되지도 지역감정이 이렇게 악화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전 의원은 “양김에 공동책임이 있다. DJ의 탈당은 정말 잘못된 것이다”고 지적했다.

이와관련 DJ 역시 사석에서 자신의 선택이 잘못됐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고 김 전 의원은 밝혔다. 양김의 화해에 대해서 그는 민추협 차원에서 많은 시도를 해왔지만 실제로 성사되기는 힘들다는 입장이다.

그는 “현재로서는 벽이 높아서 둘의 화해가 쉽지 않다. 말과 행동으로 YS가 높고 침묵으로 높은 것은 DJ다”며 “한국 정치사의 비극이자 두 분 모두의 비극이다”고 지적했다.

김 전 의원은 6선의 정치인으로 민중당에서 뱃지를 달은 원로 정치인이다. 그는 민주당은 정동영 정세균으로 나뉘어져 있고 한나라당은 친이 친박으로 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에 대해 ‘한국정치사의 또 다른 불행’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정치 지도자의 큰 덕목은 포용력이다”며 “지도자는 모든 강을 품는 바다와 같은 정치를 해야 하는 데 포용의 철학이 없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도망가는 적에게 황금의 다리를 놔라’는 격언을 통해 현 분열의 정치를 통렬하게 비판했다.

김 전 의원은 “우리 정치를 보면 다리를 다 파괴하고 완전히 몰살시키려는 정치를 하고 있다”며 “왜 황금의 다리를 놔주라는 것이냐면 만약 다리가 없으면 최후의 순간까지 사투를 펼칠 수밖에 없다. 적국의 피해도 크지만 아군의 피해도 불가피하다. 전략적으로 목적만 달성되면 되지 서로가 희생을 할 필요가 없다”고 조언했다.


박근혜 DJ-YS 화해, “현실적으로 힘들어”

그는 역대 지도자가 모두 분열의 지도자만 존재해왔다고 붙였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분열의 지도자다”면서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민주당을 깨고 신당을 만들어 나간 대통령이 역사상 누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민주 세력을 완전히 분열시키고 파괴한 사람이 노 전 대통령이라고 역정을 냈다.

한편 한나라당 일각에서 제기되는 박근혜 전 대표를 매개로한 YS-DJ 화해 역시 요원하다는 시각이다. 그는 “현실적으로 그럴 수 있겠나? 나는 힘들다고 본다”고 내다봤다.

김 전 의원은 마지막으로 ‘로마인 이야기’를 통해 현 정치권 후배 인사들에게 충고를 아끼질 않았다.

그는 “로마인이 1000년을 이어온 것은 지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은 스파르타인보다 못하다. 기술은 또 엑스타인보다 못하다. 이렇게 하나하나 봤을 때는 부족한데 하나의 장점이 바로 포용력이었다”며 “로마인은 정복을 해도 모두 노예로 삼는 것이 아니라 로마인과 똑같이 대해줬다. 이것이 바로 1000년을 이어간 비결이다”고 말했다.

후농 김 전 의원은 최근 50년 정치 생활을 담은 회고록을 탈고해 출간만 남겨두고 있다. 그는 “책 내용이 살아 있는 사람들을 다루고 있어 출간을 연기하고 있다”며 자세한 내용을 밝히길 꺼려했다. 인터뷰를 마친 김 전 의원은 재차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사무실은 담배 연기로 차 올랐지만 그의 가슴엔 더 많은 응어리가 쌓여 있음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