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만의 귀향길 DJ의 정치적 복심

영원한 호남 맹주 과시…“포스트 DJ는 없다”

2009-04-28     인상준 기자

정치9단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DJ는 4·29재보선을 앞두고 정 전 장관의 무소속 출마 반대 입장을 유지했다. 그러나 정 전 장관은 DJ의 입장과는 달리 민주당을 탈당, 무소속 출마를 강행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전주 완산에 무소속 출마한 신건 전 국정원장과 무소속 연대를 만들었다. 일시에 전주는 정 전 장관의 텃밭이 됐다. 한마디로 쿠데타에 가까운 사건이었다. 이 사건 이후 정치권 일각에선 호남에서조차 DJ의 영향력이 사라진게 아니냐는 시각이 존재했다. 이 시기에 DJ가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이 큰 호남에 가서 재보선과 관련 “민주당이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면서 민주당 후보를 측면 지원했다. 이번 DJ의 발언은 호남에서 DJ의 영향력을 재는 바로미터라는 점에서 정치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14년 만에 고향 길에 나선 DJ. 그의 발걸음에 정치권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민주당은 전주 재보선 선거를 앞둔 시점이어서 더욱 그랬다.

지난 23일 고향 하의도에 가기 위해 호남행 열차를 탄 DJ는 의미 있는 발언을 내뱉었다. DJ는 열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게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무소속이 당선돼 복당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 내용이 언론에 알려진 것은 같은 날 전주 완산 갑 유세현장이었다. 지원유세를 위해 단상에 선 한 전 총리는 “김 전 대통령이 ‘전주 시민들이 뭉쳐 민주당을 밀어줘야 한다. 그래야 민주주의, 남북관계도 좋아질 것’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런 발언에 대해 DJ와 동행하고 있는 민주당 박지원의원은 ‘노코멘트’로 일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DJ의 발언에 민주당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민주당 중진 의원 관계자는 “DJ의 발언은 우리에게 상당한 힘을 보내주는 것이다. 전주 선거에 고전하고 있지만 민심이 움직일 것이다. 덕진을도 이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 당직자도 “아무래도 DJ는 호남에서 상당히 상징적인 인물임에 틀림없다. 비록 예전만 못하다고 해도 무시 못 할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민주당으로선 DJ의 발언에 무척 고무된 입장”이라고 밝혔다.

정동영 전 장관측에서는 곤혹스럽다는 입장이다. 갑작스런 DJ의 발언을 애써 축소하려고 하지만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정 전 장관측 관계자는 “아직 명확하게 DJ의 발언이 전달된 것은 없다. 진위여부를 확인해봐야 한다. 그런 발언을 했다고 해도 선거에는 별 영향이 없을 것이다. 대세는 이미 기울어졌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DJ의 발언의 속내는 과연 무엇일까. 이에 대해 정치권은 제각각 분석을 내놓고 있다.


건재 과시용 발언?

정치컨설팅 전문업체 포스커뮤니케이션 이경헌 대표는 DJ의 발언에 대해 “자칫 무너질 수 있는 야당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 대표는 <일요서울>과의 전화통화에서 “MB정부 들어서면서 남북문제 등 자신의 업적이 희석되는 것을 겪은 DJ가 민주당의 몰락을 가만히 볼 수 없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위기의식을 느낀 DJ가 민주당을 돕기 위해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발언의 영향력에 대해선 “전주 덕진의 경우는 영향이 거의 없겠지만 완산 갑의 경우 일부분 영향력이 발휘될 것으로 예상된다. 신 전 국정원장이 무서운 속도로 추격하는 분위기에서 이런 발언이 나와 추격세에 찬물을 끼얹는 효과를 가져 올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도 비슷한 의견을 내비쳤다. 이 관계자는 “DJ의 발언은 부평과 시흥에도 영향력이 미칠 것으로 예측된다. 이 두 곳의 경우 호남출신 유권자들이 많은 곳이다. DJ의 발언으로 호남출신들이 단결하고 결집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DJ의 발언에 대해 평가했다.

정 전 장관은 이미 동교동측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소속 출마를 강행했다. 이는 더 이상 DJ의 입김에 휘둘리지 않고 이번 기회에 호남맹주의 자리를 넘보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하지만 DJ는 대통령까지 지낸 정치 9단이다. 이를 가만히 두고 볼 DJ가 아닌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발언은 포스트 DJ를 넘보는 다른 잠룡들에게도 일침을 가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란 주장도 제기된다.

정치권의 정통한 소식통은 “DJ는 그리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다. 남들이 한 수 두 수를 미리 본다면 DJ는 열 수 이상은 예상하고 움직인다. 이번 발언은 DY의 무소속 출마에 따른 괘씸죄에 대한 벌이며 자신의 정치적 방어수단인 민주당을 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관계자도 “이번 DJ의 발언으로 포스트 DJ를 노리는 잠룡들이 뜨끔했을 것이다. 선거에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더라도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포스트 DJ를 차지하기 위해 애쓰던 잠룡들도 당분간은 DJ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DJ의 발언 속내에는 또 하나의 노림수가 있다. 바로 내년 지방선거다.

내년 6월에 실시되는 지방선거에서 자신의 영향력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번 재보선 선거에서 민주당을 도와주는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10년 만의 정권교체로 인해 MB정권 초기 DJ의 치적사항들에 흠집이 나기 시작했다. 여기에 현 정부 들어서면서 남북경색 분위기가 심각해지고 있어 더욱 DJ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존재감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라도 목소리를 낼 시점인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의 정계개편이 이뤄질 것이 분명하다. 민주당의 경우 호남맹주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DJ이라는 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포스트 DJ가 되기 위해 잠룡들의 움직임이 활발했다. 이를 감지한 DJ가 자신의 후계구도를 확실하게 하는 동시에 입지를 넓히기 위한 발언으로 해석 된다”고 말했다.

무주공산이라고 생각됐던 호남맹주 자리가 DJ의 발언으로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포스트 DJ를 노리는 잠룡들에게 일침을 가한 DJ. 향후 DJ의 입김이 민주당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