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안에서

2006-09-12      
☆ 아가씨
오늘도 이 버스는 콩나물 시루다. 늘 그렇듯이 귀에다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었다.
그런데 등 뒤의 중년남자가 자꾸 몸을 기댄다. 나만한 딸이 있을 지긋한 나인데 과연 그러고 싶은지 해도 너무한다.
☆ 중년남자
역시 서울의 버스는 정말 좋다.
이렇게 많은 여자들이 나를 날마다 회춘을 하게 한다.
늘 그렇듯이 신문으로 손을 숨기고 앞의 아가씨 몸에 슬쩍 기대봤다. 풍겨오는 향수냄새가 나의 말초신경까지 자극한다. 흐~
☆ 아가씨
내가 맡아도 이 프랑스 향수는 향기가 그윽하다.
그런데 중년남자가 몸을 더 압박해온다. 얼핏보니 흰머리도 있었다.
☆ 중년남자
앞의 아가씨의 향수가 너무 죽여준다.
신문으로 가린 손을 아가씨 둔부에 대봤다. 와…정말 좋구나. 입이 안다물어진다.
☆ 아가씨
중년남자의 손이 느껴졌다. 점점 더 노골적이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오른발을 있는대로 처들었다. 그리곤 중년남자의 발등을 찍었다. 있는 힘껏… 아프겠다.
☆ 중년남자
아가씨가 내 발등을 찍는걸 눈치채고 다리를 피했다. 이 정도면 성추행의 명인이라고 불리어도 흠이 없으리라.
옆에 있던 대학생으로 보이는 학생이 괴성을 지른다. 아가씨가 잘못 찍은거다.
☆ 얼결에 찍힌 대학생
간밤에도 나를 성추행범으로 알고 어떤 여자가 내 발을 찍었다.
밤새 부어오른 발등을 찜질하여 겨우 나은듯 했다. 그런데 오늘도 재수없게 또 찍혔다.
아가씨에게 마구 따졌더니 무안해하여 어쩔줄 몰라한다. 이런~~띠 발 #@#$
☆ 아가씨
잘못 찍었다.
간밤에도 어떤 학생의 발등을 잘못 찍었는데… 미안했다.
중년남자는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또 손으로 둔부를 더듬는다. 이젠 더이상 못참겠다. 핸드백 속의 전자 충격기를 꺼냈다.
☆ 중년남자
아…정말 황홀하다. 이맛에 사람들이 이런짓 하나보다. 아가씨가 핸드백에서 뭔가를 꺼냈다.
바늘이나 압정인것 같았다. 재빨리 학생의 손을 그여자의 둔부에 댔다.
☆ 아가씨
2만볼트의 초강력 전자 충격기를 내 둔부에 전세낸 손에다 댔다.
그런데 아까 발등찍힌 학생이 그만 기절했다. 이해가 안갔다. 중년남자는 프로인가보다.
☆ 아까 그 학생
저승사자가 눈앞에 왔다갔다 했다. 옆의 중년남자가 나를 성추행범으로 몰았다. 억울했다. 하지만 내가 반박할 물증도 없었다.
☆ 중년남자
정말 준비성이 많은 아가씨다. 전자 충격기까지 준비하다니…무섭다.
내 친구도 쥐덫에 당해 아직도 통원치료중인데 조심해야겠다.
하지만 또다시 아가씨의 둔부에 손을댔다. 이젠 지도 어쩌지 못하겠지…
☆ 아가씨
정말 꾼한테 제대로 걸렸다.
내려서 택시를 타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리면서 중년남자의 얼굴을 자세히 봤다.
인간의 탈을쓰고 어찌 그럴수 있는지… 정말 재수없게 생겼다.
☆ 중년남자
아가씨가 내렸다. 아…좋았었는데 아까웠다. 아가씨가 내리면서 나를 노려보았다. 지가 노려보면 어쩔건가…약을 올리는 투로 윙크를 했다.
☆ 아가씨
새로 발령받은 회사에 첫출근을 했다. 찜찜한 기분을 뒤로하고 상사에게 인사하러 갔다. 상사는 회전의자에 앉아 먼산만 보고 있었다.
유리창에 반사된 상사를 보니 아까 그 중년남자였다.
☆ 중년남자
미치겠다.
아까 추근댄 아가씨가 우리 회사에 오다니… 무조건 안면몰수 했다.
잘하면 내일 잘리겠다.
아니 오늘 잘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