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前 서점가 달구는 잠룡들...출판 ‘장외 경쟁’ 치열
‘대선 시즌’ 돌입에 여야 잠룡 관련 서적들 우후죽순 박용진-정치혁명, 정세균-수상록, 이낙연-약속 발간 이광재·김두관·추미애 등 잠룡들 출판기념회 릴레이
[일요서울 l 정두현 기자] 대선을 10개월가량 앞둔 현재 국내 서점가에선 여야 대선 출마자들과 잠룡들에 관한 서적이 우후죽순 쏟아지고 있다. 정가에선 대선 시즌이면 ‘자서전 정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권 행보에 나선 정계 유력 인사들에게 자서전 출간은 모종의 불문율이 됐다.
기존에는 순수 자서전이나 회고록이 주류였다면, 내년 3.9 대선을 앞두고선 대담집, 에세이 등 다양한 형태로 국민들과 눈을 맞추려는 시도가 보인다. 여기에 제3의 시선에서 여야 잠룡들을 해석한 인물집들도 눈에 띤다. 여야를 대표하는 거대 잠룡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이재명 경기지사는 아직 공식적인 출판 계획이 알려진 바 없지만 대권에 가장 근접한 이들을 집중 조명한 서적들은 속속 출판되고 있다. 최근 한 달 사이 ‘이재명 한다면 한다(백승대 저)’, ‘이게 나라다 2022(김세준 저)’, ‘윤석열의 운명(오풍연 저)’, ‘윤석열의 시간(김대우 저)’, ‘별의 순간은 오는가(천준 저)’ 등 5권이 출간됐거나 출간을 앞두고 있다.
특히 이달에는 대권 출사표를 던진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해 김두관 민주당 의원,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등 잠재적 대권 후보들의 출판기념회 소식도 잇따르고 있다. 출판기념회는 정치권에서 만큼은 흔히 ‘대권 출정식’으로 인식되고 있다. 틀에 박힌 토론회나 기자회견과 달리 소탈하고 진솔한 모습으로 국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홍보의 장이 바로 출판기념회다.
지난 19대 대선만 돌아봐도 당시 대권 주자들의 서적 출간으로 서점가는 문전성시를 이뤘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7년 1월 자신의 정책 구상을 담은 대담 에세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 출판기념회를 가졌고, 자유한국당 후보로 나선 홍준표 무소속 의원도 2017년 3월 대담집인 ‘변방에서 중심으로-홍준표가 답하다’를 발간했다. 바른정당 후보였던 유승민 전 의원도 같은 해 4월 자전 에세이에서 20여년 정치 인생과 자기 고백을 담아 냈다.
與 대권 주자들의 ‘장외 경쟁’
대권 출마를 선언한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지난 4월 자전 에세이 ‘박용진의 정치혁명’을 발간했다. 이 책에서 박 의원은 대한민국의 분열을 조장하는 구태 정치와 불평등·불공정에 맞서겠다는 각오와 함께 재벌개혁, 노동법 개선, 남녀평등복무제 제안, 탄소중립 등 전 분야에 걸친 주요 현안에 대한 해답을 제시했다. 아울러 자신이 걸어온 삶에 대해 밝히면서 인간 박용진의 면면도 담았다. 정치인으로서 개혁파적 소신과 민주적 면모가 돋보인다는 평가와 함께 여권 일각에선 ‘내부총질’이라는 비판이 뒤따르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도 지난 4월 에세이 ‘수상록’을 냈다. 수상록은 정계에서도 정평이 난 정 전 총리의 온화한 성품이 반영됐다는 평가다. 유수의 정치인이지만 정치 담론에서 벗어나 가족사, 술, 인형, 영어 등 다양한 일상적 소재들을 녹여 독자와의 간극을 좁히려는 노력이 보인다. 진영 논리와 무관한 그의 진솔한 이야기와 국무총리 재임기 방역책임자로서 코로나19 대응을 지휘하며 고군분투한 뒷 이야기들이 괄목할 만 하다.
다음은 수상록에서 정 전 총리의 겸허한 공직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지금은 이제 국회의원 특권이랄 게 거의 없어졌지만, 이런저런 특권을 없앴다고 ‘오냐 잘했다’며 국민이 국회를 신뢰할까요? 특권을 없애도 국회의원이 자기 할 일을 제때 하지 않으니 이게 더 문제 아니에요? 일하지 않는 국회는 정말 부끄럽고 염치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출간한 대담집 ‘이낙연의 약속’을 통해 이낙연표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다양한 정책 비전을 제시했다. “누추한 청춘이었다”고 회상한 젊은 시절부터 언론인, 노무현 전 대통령 대변인, 전남도지사, 국회의원, 국무총리, 민주당 대표에 이르는 삶의 서사(敍事)도 담겼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이낙연의 약속과 핵심 키워드 27’ 챕터에선 ▲내 삶을 지켜주는 나라 ▲신복지제도 ▲대통령 권력분산 ▲전직 대통령 사면문제 ▲기후에너지부 설치 등 유권자들이 궁금할 만한 이슈들에 대한 이 전 대표의 솔직한 답변이 수록돼 있다. 책머리에서 이 전 대표는 “4.7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은 기록적으로 참패했다. 마음도 몸도 아팠다”며 당시 재보선을 총지휘했던 리더로서 뼈아픈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잠룡들의 출판 릴레이...대권 출정식의 6월
여야 대선 잠룡들의 출판기념회 소식도 이어지고 있다.
‘다크호스’ 김두관 민주당 의원은 오는 9일 서울 백범기념관에서 좌절과 험지 도전으로 점철된 자신의 정치 인생과 정통성, 가치를 전면에 내세운 ‘꽃길은 없었다’ 출판 기념회를 갖고 대권 행보를 본격화한다는 계획이다.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김 의원은 가난한 어린 시절을 거쳐 경남 남해 이어리 이장, 남해군수, 행정자치부 장관, 경남도지사, 국회의원에 이르기까지 험난한 역정(歷程)을 걸어 온 입지전적 정치인이다.
지난 2002~2010년 경남도지사에 당선되기까지 네 번의 고배를 마셔야 했던 아픈 기억도 담담한 소회로 풀어 냈다. 특히 많은 유권자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던 ‘2012년 대권 도전’과 관련해 김 의원은 도지사 자진 사퇴와 당시 경선 라이벌이었던 문 대통령과 정쟁이 본인의 ‘오판’이었다고 인정한 부분이 눈길을 끈다.
지난달 27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광재 민주당 의원은 정책 제안이 담긴 대담집을 출간한다는 계획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보좌관을 지냈던 이 의원은 대표적인 친노계로 꼽히는 만큼, 지난해 노 전 대통령이 새 시대를 열기 위해 던진 질문들을 통해 자신의 이상과 꿈을 투영한 에세이 ‘노무현이 옳았다’를 낸 바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함께 문 정부 검찰개혁의 ‘쌍두마차’로 돌격장 역할을 맡았던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도 이달 대담집 출간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담집 출판기념회 전후로 대권 행보 공식화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추 전 장관 측근에 따르면 대담집에는 법무부 장관 시절 ‘검수완박’을 추진하면서 겪은 검찰과의 갈등 등을 다룬 경험담과 촛불시위에서 배태된 문 정부의 집권 스토리도 담길 예정이다.
여야 양 진영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는 잠룡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도 이달 출판기념회가 예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1일 한 대학 강연에서 김 전 부총리는 “지금은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니다”라며 대권 도전 가능성을 일축했지만, 이달 예정된 출판기념회를 발판 삼아 대권 의지를 드러낼 것이라는 게 정치권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