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여류 추리작가 '권경희'의 추리퀴즈-당신의 추리력은? 13] - 어머니의 보물지도 8편 중 3

2021-05-21     온라인뉴스팀

“아빠, 그러면 옥상에다가 텐트를 치고 아빠 방으로 하면 안 될까요?”
철없는 딸의 말에 이규석은 자기 방 갖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유일한 희망은 딸이 시집가는 거야. 다행히 서른 살이 넘도록 시집갈 생각을 않던 딸이 요즘 남자를 사귀고 있는 것 같더라고. 그것도 여섯 살이나 연하를. 언뜻 봐서 날라리 같아서 영 마음에 들진 않는데, 날라리면 어때? 딸만 데리고 가 준다면 감지덕지지.”

이규석은 눈을 반짝였다. 모처럼 보이는 희망의 눈빛이었다.
“불광동 집이 터가 넓잖아? 그것 팔면 꽤 큰 아파트를 살 수 있을걸?”
김명우의 제안에 이규석은 고개를 흔들었다.
“나도 아파트 살고 싶지. 애들도 원하고. 하지만 안 돼.”

이규석의 집은 단층 슬라브 양옥으로 평수가 넓은 편이었다. 주변의 집들은 개발 붐이 일 때 다세대 주택으로 변신했다가 다시 여러 채가 모여 소규모 아파트 단지로 개발되었으나, 이규석의 집은 처음 구입할 때의 모습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어머니 때문이었다.

건축업자들이 이규석의 집터를 탐내 여러 차례 매매를 권유해 왔다. 당시 그들의 권유대로 팔았다면 아파트 두 채는 살 수 있었다. 그래서 이규석이 여러 차례 어머니한테 집을 팔자고 졸랐으나 어머니는 완강히 거부했다.

“나는 아파트는 죽어도 싫다. 전쟁 나서 폭격에 맞으면 아파트는 아무 소용없지 않니. 좁은 땅에 수십 가구가 사는데, 그 땅 나누어 봐야 누워서 잠잘 자리나마 나오겠니?”

어머니는 집을 팔자는 말만 나오면 노기를 띠었다.
“이 집은 폭격을 맞더라도 터는 그대로 남아 있지 않겠니. 내 땅이 있어야 피난 갔다 오면 천막이라도 치고 살 것 아니니. 가족이 난리 통에 흩어지더라도 옛날 번지수 찾아오면 만날 수 있을 거고.”

“아, 그래서 이규석 선생이 부조를 요것밖에 못했구나.”
김명우가 이규석한테서 들은 이야기를 전해 주자 윤정순은 납득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그렇지. 사학 연금 받는 게 꽤 될 텐데?”
윤정순이 다시 의문을 제기했다.
“연금을 일시불로 타서 동생들한테 다 나누어 주었다더군.”
김명우는 이규석의 입장을 대변해 주었다.
“왜애?”

윤정순의 눈이 둥그레졌다.
“어머니가 그렇게 하라고 시키셨대.”

이규석의 어머니는 아들의 생활을 모두 관장했다. 하라는 대로 하지 않으면 머리를 싸매고 드러누워 며칠씩 식음을 전폐하는 바람에 이규석은 꼼짝없이 어머니의 말을 들어야 했다.

이규석이 정년퇴직을 하게 되자 어머니는 연금을 일시불로 타라고 명했다. 그런 다음 자식들을 다 불러 모았다. 자식이라야 이규석과 남동생 하나, 여동생 하나였다.
“이 어미는 현금 재산이 없어 너희들한테 아무 것도 주지 못해 늘 마음이 무거웠다. 이번에 규석이가 연금을 탔으니 그걸 너희들한테 나누어 주마. 이제야 어미의 한이 풀리는구나.”

어머니는 이규석의 연금을 자신의 것처럼 동생 둘에게 나누어 주었다.
“규석이 네가 이 집 가장으로서 동생들에게 변변히 해 준게 없으니 이 어미의 결정을 따르리라 믿는다.”

어머니는 이규석이 입도 벙긋 못하게 쐐기를 박았다. 
“너로서도 이번에 동생들에게 작은 돈이나마 현금을 주었으니 맏이로서의 도리를 조금은 한 게 되어 마음이 좀 가벼워졌을 게야.”

어머니는 이규석이 평생 월급쟁이로 살아오며 쌓아 온 연금을, 억 단위가 넘는 돈을 ‘작은 돈’이라고 깎아 내렸다. 늘 이런 식이었다. 이규석이 하는 일은 무엇이든 평가 절하했다. 그런 어머니 밑에서 이규석은 한없이 졸아들며 살아왔다. 

동생들 앞에서 어머니 말씀을 거역할 수 없어 그대로 따르긴 했지만 이규석은 억울하기만 했다. 사실 동생들은 이규석보다 훨씬 더 잘살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늘 이규석에게 동생들을 먼저 챙기라며 책임을 지우고 채근을 했다.

“규석이가 은퇴하고도 취직해서 돈 버느라 애를 썼는데, 최근에는 그 직장마저 잃어서 무척 쪼들리는 상태야. 2만5천원짜리 부조라도 그 친구로서는 최고의 금액을 낸 거야.”
“애들이 꽤 컸을 텐데요?”

윤정순이 다시 물었다.
“큰애는 장가갈 생각도 않고 아프리카 난민 돕는다고 외국에 자원 봉사하러 가 있고, 딸은 대학원 박사과정을 다니고 있다는군. 지난 학기까지도 규석이가 등록금을 대줬대.”

“아이고... 그분 팔자도 참. 그래서 어머니 돌아가신 친구들을 부럽다고 했군요.”
윤정순이 고개를 깊이 끄덕였다.
“오죽하면 자기 방 하나 가져 보는 게 꿈이겠어?”

그때였다. 김명우의 핸드폰에서 문자메시지 수신 알림음이 울렸다. 이규석의 번호가 떴다.

- 저희 아버님이 오늘 새벽 02시경 별세하셨습니다. 빈소는 대학병원 영안실, 발인은 미정입니다.

“이런!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이런 경우를 말하나?”
문자 메시지를 보던 김명우가 탄식하자 윤정순이 김명우의 핸드폰을 빼앗아 들었다. 
“무슨 문잔데?”

“규석이 어머니가 돌아가셨나봐. 그 친구 정말로 어머니 돌아가신 게 기쁠까?”
김명우가 고개를 흔들며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님이 돌아가셨다고 돼 있는데? 이규석 선생이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고 했잖아요?”

“맞아. 당황해서 잘못 적은 거겠지.”
김명우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서 휴대폰의 단축키 7번을 눌렀다. 이규석의 번호였다. 이규석이 그렇게도 바라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에 대해 어떻게 느낄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여보세요.”
휴대폰 수화기로 낯선 음성이 들렸다. 젊은 여성의 목소리였다.
“이, 이규석 선생 휴대폰 아닌가요?”
김명우는 불길한 예감에 말을 더듬거렸다.
 

[작가소개] 권경희는 한국 여류 추리작가이다. 1990년 장편소설 '저린 손끝'으로 제1회 김내성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 추리소설 '거울 없는 방', '물비늘', 실화소설 '트라이 앵글', 단편으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수십 편이 있다. 수필집 '요설록', '흔들리는 삶을 위한 힌트'등이 있다. 중견 소설가이면서 상담심리 전문가로 <착한벗 심리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