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여류 추리작가 '권경희'의 추리퀴즈-당신의 추리력은? 11] - 어머니의 보물지도 8편 중 1
“애걔걔.”
막내 시동생이 정리해온 부의금 명세서를 살펴보던 윤정순이 명단 중간쯤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장난기와 실망이 섞인 목소리를 냈다. 신혼 시절 샤워를 하고 욕실을 나오는 김명우의 아랫도리를 짓궂게 가리키며 놀리던 때와 비슷했다.
“이규석 선생 말야, 요즘 살기가 어지간히 힘든가 봐요.”
“왜?”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진 김명우와 달리 아내 윤정순은 소녀처럼 달뜬 모습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10만 원씩 부조했는데, 이규석 선생은 2만5천 원을 했어요.”
윤정순은 걸레질을 하듯 부의금 명세서를 손으로 밀며 엉덩이 걸음으로 다가왔다. 나이가 들면서 앉았다가 일어날 때마다 “끄응” 소리를 내더니 이젠 아예 엉덩이 걸음을 할 때가 많아졌다.
“요즘 5만 원이 기본이잖아요. 게다가 2만 원이면 2만 원이고 3만 원이면 3만 원이지, 2만5천 원이 뭐야. 쩨쩨하게.”
윤정순은 어린 소녀처럼 입을 삐죽였다. 그러고 보니 시아버지 상을 치른 이후로 윤정순은 얼굴이 활짝 핀 모습이었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한 톤쯤 올라가 있고, 가끔 콧노래도 흥얼거렸다.
“당신, 시아버지 돌아가신 게 그렇게 좋아?”
김명우는 심통이 나서 윤정순을 향해 퉁명스럽게 말을 던졌다.
“좋다니요. 무슨 말씀을. 아버님이 안 계셔서 얼마나 허전한데요.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는데, 하물며 몇십 년을 모셔온 아버님이 돌아가셨는데⋯”
윤정순의 눈가에 금세 이슬이 맺혔다. 그러나 이내 다시 달뜬 목소리가 되어 물었다. 환갑이 넘어 얼굴에 주름은 졌지만, 신혼 초 잠시 분가해 살던 때의 애교가 되살아나 있었다.
“이규석 선생이 당신네 동창 중에서 제일 똑똑했다며? 그런데 왜 이렇게 됐대요?”
윤정순은 부조 금액이 곧 그 사람의 경제지수요, 행복지수로 여기는 것 같았다. 김명우는 이규석의 경우를 대입해 보면 과히 틀린 시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이규석이 평소보다 어깨가 더 처진 모습으로 김명우의 오피스텔에 찾아왔다. 정년퇴임 후 학교에서 석좌교수직을 주며 연구실도 따로 마련해 주었지만, 김명우는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뒤에 있는 오피스텔을 하나 얻어 별도의 연구실로 쓰고 있었다. 후배 교수들을 위해 학교에서 자신의 자리를 서서히 비울 생각이었다. 물러날 시기에 적절히 물러나 주는 게 선배의 도리란 생각을 예전부터 해 왔기 때문이었다.
광화문 연구실에서 주로 하는 일은 집필이었다. 대학 재직 동안에는 법학 관련 교과서 격의 책을 몇권 썼지만, 은퇴한 지금은 딱딱하고 어려운 전문서적보다 쉽고 재미나게 법과 친근해질 수 있는 책을 기획하고 있었다.
연구실이 서울 한복판에 있다 보니 다른 기능도 하였다. 친구들이 오가며 들러 차 한 잔씩 마시는 사랑방 구실을 하게 된 것이었다. 김명우의 친구들은 대부분 현역에서 물러난 지 오래되었다. 대학 교수의 정년이 제일 긴 덕분에 김명우는 은퇴도 제일 늦을 수 있었다.
친구들은 다들 현직에 있을 때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를 자신이 다 책임지는 듯 기가 팔팔했지만, 은퇴하고 난 뒤에는 영락없는 뒷방 노인네가 되어 몸도 구부정하고 얼굴 표정도 처량하게 바뀌어 갔다. 그런 친구들한테 김명우의 연구실은 좋은 휴식처이자 정보 교환처 역할을 했다.
광화문 연구실을 가장 자주 찾는 사람은 고교시절 단짝이었던 이규석이었다. 이규석은 학교 다닐 때도 어깨가 처져 있었지만 나이가 들면서는 더 처져서 두 팔이 땅에 닿을 것만 같았다. 마치 고릴라가 팔을 축 늘어뜨린 것 같은 자세였다. 그 때문에 작은 키가 더 작아 보였다.
“명우야, 나 또 왔어.”
몇 달 전에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 오던 이규석이 그날부터 매일 오전 10시면 정확하게 광화문 연구실에 나타났다. 그 때문에 김명우도 일찌감치 집을 나서야 했다.
“실은, 어머니가 아직도 내가 출판사에 다니는 줄 아시거든.”
이규석은 대학을 졸업하자 사립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시작해 정년 퇴임 때까지 그곳에 재직했다. 퇴임한 후에는 제자가 운영하는 출판사의 고문 역으로 한동안 근무했다. 고교생용으로 ‘교과서에 나오는 한국의 명저’ 시리즈를 기획한 그 출판사에서 이규석에게 선정 작품에 대한 해설을 부탁한 덕분이었다. 최근 그 작업이 끝나자 갈 곳이 없어졌다.
“매일 출근하는 척하고 나오긴 하는데, 갈 곳이 있어야 말이지.”
김명우는 이규석이 효자란 생각이 들었다. 마누라 무서워서 직장에서 명예퇴직당하고도 매일 출근하는 척했다는 남편 이야기는 들어봤어도 어머니가 걱정하실까 봐 직장 다니는 척하는 아들 얘기는 처음이었다.
“파고다 공원에 가 있자니 신세가 불쌍하고, 영화라도 보면서 시간 때우자니 돈이 들고⋯ 시내 골목골목 돌아다니는 걸로 소일하는 것도 지쳐서 자네 연구실에 함께 있으면 어떨까 해서⋯ 대신 내가 청소며 차 심부름은 다 할게, 조교라 생각하고 부려 주게.”
이규석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일어서더니 연구실 청소부터 했다. 괜찮다고 해도 듣지 않고 책상과 테이블의 먼지를 닦고 바닥까지 말끔하게 청소했다. 이규석이 매일 그렇게 쓸고 닦아 주는 덕분에 김명우의 연구실은 남자 혼자 쓰는 공간답지 않게 반짝반짝 윤이 났다.
“어머니는 건강하셔?”
김명우는 이규석의 어머니를 처음 본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학부모 면담 때 찾아온 이규석의 어머니의 정갈한 차림새는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 있었다. 머리를 뒤로 넘겨 쪽을 지듯 실핀으로 꽂아 단정하게 마무리했고, 하얀 윗옷에 남색 치마는 다리미 자국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일찍이 어머니를 여읜 김명우는 그런 어머니를 둔 이규석이 부럽기 그지없었다.
“요즘 퇴행성 관절염이 심해져서 잘 걷지를 못하고 지팡이 짚고 다니셔. 그래도 집안 살림 다 하시고 간섭할 것 다 하시지.”
어머니 얘기를 하는 이규석의 눈 밑에 그늘이 서렸다.
[작가소개] 권경희는 한국 여류 추리작가이다. 1990년 장편소설 '저린 손끝'으로 제1회 김내성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 추리소설 '거울 없는 방', '물비늘', 실화소설 '트라이 앵글', 단편으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수십 편이 있다. 수필집 '요설록', '흔들리는 삶을 위한 힌트'등이 있다. 중견 소설가이면서 상담심리 전문가로 <착한벗 심리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