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반도체 시장 대변혁 끌어낼까…메모리 넘어 비메모리 까지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 “파운드리 더 투자해야”…전략적 접근 시사
[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SK가 반도체 시장 대변혁을 일으킬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 지난 3월30일 SK하이닉스는 이사회를 열어 박정호 부회장을 SK대표이사로 선임했다.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큰 그림에서 전략을 세우고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찾는 데 주력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줬다. 그간 중간지주사격인 SK텔레콤을 이끌어온 CEO로서의 능력을 입증 받은 셈이다. 이후 박 부회장은 SK하이닉스가 장기적인 측면에서 메모리 반도체 뿐 아니라 비메모리 영역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이에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의 향후 행보에 대해 촉각을 집중하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파운드리 중요성 부각
대만 TSMC, 삼성, IBM 수준 투자 및 서비스 가능할까…기술력은 가능
박정호 부회장은 지난달 21일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월드IT쇼 개막식에서 “국내 팹리스(반도체 설계) 업체들이 대만의 TSMC 수준으로 파운드리를 해 주면 여러 벤처가 기술 개발을 할 수 있다고 한다”며 “향후 파운드리에 많은 투자를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후 국내를 비롯한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박 부회장의 언급에 대해 저마다 해석을 내놓고 있다. 박 부회장의 역할은 SK하이닉스 기업문화 도약과 글로벌 ICT 협력 비즈니스 기회 모색이다. 자동차용 반도체 등 파운드리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시기에 나온 박 부회장의 전략적 의지가 드러난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자동차용 반도체 시장 공급 위기가 도래하면서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이 생산 속도를 조절하거나 일부 중단하는 사태까지 발생한 바 있다. 자동차용 반도체를 비롯한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중요성이 더욱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 나온 박 부회장의 말에 무게가 실린다.
비메모리 반도체 중요성 부각
현재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 제왕인 대만의 TSMC나 미국 IBM 등은 이미 50여 년을 비메모리 반도체에 집중하며 기술 개발을 이어 왔다. 삼성전자도 20여 년 전부터 비메모리 분야를 확대해 왔고, 2019년과 지난해에 걸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전폭적인 투자 확대와 인력 보충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이렇듯 비메모리 분야 선봉장들이 수십 년을 달려 온 비메모리 반도체 부문에 메모리 분야 D램 부문 글로벌 2위 업체인 SK하이닉스가 투자 확대에 나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다. 국내 언론을 비롯해 글로벌 경쟁사들이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풀이가 나뉜다. SK하이닉스는 그간 비메모리 분야를 약 2~3% 비중으로 꾸준히 들고 왔다. 이런 가운데 잊을 만 하면 SK하이닉스가 비메모리 분야 투자 확대 및 개발에 나서지 않겠는가 하는 의문도 이어졌다.
2019년 4월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SK하이닉스는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 육성이나 추가 투자 계획은 없으나, 새로운 솔루션 제공이나 현재의 강점을 다지는 수준에서 유지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당시 향후 10년간 120조 원을 들여 경기도 용인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건립하고, 이천 본사에는 M16 구축과 연구개발에 20조 원 투입 계획을 공개했다. 이후 충북 청주 M15 공장에 35조 원을 투자하는 등 전폭적 투자 및 개발을 이어오고 있다. 모두 메모리 반도체 중심의 투자 행보였다.
그로부터 2년 만에 박 부회장이 중장기적인 차원에서 투자 의지를 드러낸 것. 당장은 실체가 없고 준비되지 않은 계획이라는 지적도 있으나, 박 부회장의 리더십과 기업 성장을 이끌어낸 배경을 들여다보면 단순히 말로만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특히 2012년 하이닉스가 SK로 주소를 옮기는데 일조한 사람이 박 부회장이다. 박 부회장이 SK텔레콤 CEO로 있으면서 SK하이닉스는 안정화를 거쳐 현재 D램 분야 글로벌 2위 자리에 올랐다.
지난 이사회에서 하영구 신임 의장은 “급변하는 세계 반도체 환경에 맞춰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해 각자 대표이사 체제로 전환했다”며 “SK텔레콤을 4년 여간 경영해온 박정호 부회장은 글로벌 ICT 생태계의 판을 짜고 선도해갈 것으로 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국내 설계회사들 기술개발 가능
반도체 분야 1차 벤더 한 관계자는 박 부회장이 “국내 설계회사들의 기술개발이 가능하다”라고 언급한 대목에 집중한다. 그는 “우리나라 중소 반도체 설계 업체들은 기술력이 있고 삼성이든 SK든 투자와 지원만 이어진다면 얼마든지 경쟁력 있는 제품 개발에 나설 수 있다”고 부연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28일 컨퍼런스콜을 열고 박 부회장의 언급에 대한 기자들의 질의에 한 관계자는 “(비메모리 부문) 투자를 당장 진행하는 것은 아니고, 중장기적인 전략적 접근의 차원”이라며 “하이닉스는 기본적으로 메모리 위주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파운드리 분야를 이어오고 있으나, 현재 비중은 미약하다”며 “다만 시장 대응을 위한 다각화 차원에서 전략적 접근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당장 SK하이닉스가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 전체에서의 점유율은 미미하고 향후 투자를 위한 플러스알파의 전략적 차원에서 바라보라는 분석이다. 기존 시스템 반도체 공장을 확장하거나, 장비를 투자하거나 하는 수준일 것이라는 시각이다. 하지만 자동차용 반도체를 비롯한 글로벌 시황이 좋고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해서는 꾸준히 이어간다는 방침을 부정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