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국감 공공기관 A/S: 한국수력원자력 편] 원전시설‧핵연료 관리부실 ‘땜질식’ 후속 조치
- 지진 대책에 수백억 원 투자했지만, 원전 부품 관리에 ‘구멍’
- 느슨한 핵연료 회수 처리…핵연료 장거리 운송 내규 위반도
[일요서울 l 정두현 기자]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탈원전 정책’의 신호탄으로 가동 영구정지 결정을 내린 지 4년 만에 고리원전 1호기가 전면 해체 수순에 돌입할 전망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은 다음 달 고리원전 1호기에 대한 최종해체계획서를 제출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한수원은 월성원전 1호기 폐쇄 사전 감사 건으로 정쟁에 휘말리면서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지난해 산업부중기위 국정감사에선 한수원의 부실한 원전시설‧핵연료 관리체계에 따른 원전사고 발생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또다시 국민들이 미간을 찌푸리게 했다. 이에 본지가 한수원의 원전, 핵연료 관리 실태를 추적해 봤다.
지난해 산업부중기위 국정감사에서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수원이 부·울·경 지역 지진 대책에 수백억 원을 투입했지만, 정작 안전사고와 직결될 수 있는 원전시설에 대한 관리가 부실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바닥 면을 고정하는 앵커볼트가 부식되는 등 관리 상태가 매우 불안정한 것으로 조사됐으며, 한수원은 뒤늦게 원전시설 현황을 전수조사했지만 결과에 따른 후속조치가 즉각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도 잇따랐다.
이 의원에 따르면 한수원이 최초 원전 설치 당시부터 고리 1, 2호기, 월성 1호기 등 총 3기의 원전에 대해서만 원전설비를 기초 건물에 고정시키는 앵커볼트의 ‘경년열화(장시간에 걸쳐 물리적 성질이 나빠지는 현상)’ 조사를 수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011년에 작성된 고리 2호기 경년열화 관리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원전 주요 설비인 가압기 및 증기발생기 지지대에 설치된 앵커볼트 7개가 적정 항복강도 기준인 150 ksi를 초과하고, 20여개가 위험수준인 140~150 ksi인 것으로 확인돼 교체가 필요한 것으로 보고됐다. 실제 지진이 발생해 앵커볼트가 파손될 경우, 원자로 압력 용기나 냉각재 펌프 같은 주요 설비들이 과도하게 흔들리거나 파손돼 심각한 원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땜질식 대처’ 일관한 한수원…후속 대처 ‘전무’
더욱이 한수원은 초기 원전에 앵커볼트 문제가 있음을 확인했음에도 추가적인 경년열화 관리 프로그램을 진행하지 않아, 나머지 가동 원전의 앵커볼트 경년열화 현황도 파악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본지가 한수원을 통해 취재한 결과, 국정감사 이후 지난 21일 현재까지 여전히 나머지 원전 시설에 대한 추가적인 조사연구는 진행된 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수원 관계자는 일요서울과 통화에서 “고리, 월성 원전에 대한 고정부품 조사용역이 마무리되는 대로 나머지 원전에 대한 추가 조사도 순차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라며 “대부분 조사가 끝났지만 아직 진행 중인 용역이 있다”고 밝혔다.
이 밖에 기존에 설치된 앵커볼트의 강도에 대한 측정 및 관리마저 이뤄지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부식으로 인한 파손된 부품에 대해서만 볼트를 교체하는 등 땜질식 처방으로 일관한 정황마저 드러났다.
지난해 국감에서 한수원에 이 같은 문제점들을 질의한 이수진 의원은 본지와 통화에서 “당시 한수원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관련 절차에 따라 앵커볼트의 부식 상태를 정기적으로 검사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정감사 이후 시정 조치 사항을 보고 받은 바 없다”면서 “실제 앵커볼트가 부착된 시설 하부의 부식 상태는 육안으로 확인이 어렵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잇따랐다”고 밝혔다.
또 그는 “대형 재해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지점에서 발생한다”며 “한수원은 조속히 전수조사를 실시한 뒤 전국 가동원전에 적용되는 통합 경년열화 관리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수원, ‘사용 후 핵연료’ 회수 처리에도 미온적
원전시설 관리부실 문제 외에도 사용 후 핵연료에 대한 한수원의 느슨한 대처가 지적되고 있다. 한수원에서 한국원자력연구원으로 반출된 핵연료의 조속한 재반입이 이뤄져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연구원에서 방치되고 있는 것.
지난해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 같은 문제들을 질책하며 조속한 개선을 촉구했다. 조 의원에 따르면 기술개발, 결함 원인규명 등 다양한 사유로 반출된 핵연료들이 연구가 다 완료된 이후에도 아직까지 원전으로 회수되지 않고 있다. 때문에 안전사고 발생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원자력연구원에서 핵연료 집합체를 복원하는 대로 조속히 재반입이 이뤄져야 하지만 일부 핵연료가 여전히 연구원에 보존돼 있다.
조 의원은 국정감사 당시 “현재 원전에서 보유하고 있는 전체 사용 후 핵연료는 48만8676 다발로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보유하고 있는 핵연료 약 8다발도 여기에 함께 보관해 체계적으로 관리돼야 한다”며 “사용후핵연료를 임시 보관소에 장시간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동 금지’ 손상핵연료 장거리 운송 정황도
여기에 한수원은 발전소 내 이동이 금지된 ‘손상 핵연료’를 지난 25년 간 수차례 운송한 정황까지 밝혀지면서, 핵연료 관리 체계의 허술함이 드러났다.
한수원 내부 규정인 ‘발전소 운영 절차서’에 따르면 피복이 손상된 파손연료집합체는 운반할 수 없도록 돼 있다. 이동 과정에서 핵물질이 외부로 노출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조승래 민주당 의원실로부터 제공 받은 자료에 따르면 그럼에도 한수원은 지난 1988년부터 부산 고리원전, 전남 영광 한빛원전, 경북 울진 한울원전에서 총 7회에 걸쳐 손상 핵연료봉 309개를 대전에 소재한 한국원자력연구원으로 옮긴 사실이 드러났다. 손상 원인 규명과 연구개발이 운반한 이유였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손상 핵연료의 이동을 규제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수원 고리원자력본부가 지난 5월 손상 핵연료를 고리 2호기에서 신고리 2호기로 옮긴 게 문제가 돼 안전성 평가를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수백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기도 했다.
한수원 관계자는 “과거 손상 핵연료의 경우 원인 규명과 연구를 위해 일부 운반된 경우가 있었지만 지금은 철저히 내규에 따라 관리가 이뤄지고 있다”면서 “사용 후 핵연료도 마찬가지로 연구소에 잔재한 일부 물량을 올해 전량 회수 처리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