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룡들의 운명 결정되는 4월 재보선
이재오·정동영 화려한 ‘복귀’할까
2009-02-10 인상준 기자
4월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이 뜨겁다. 한나라당의 경우 친이 좌장인 이재오 전 최고위원이 3월 귀국을 앞두고 있어 친박과의 갈등이 증폭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이 전 최고위원이 선거결과에 따라 지도부의 책임론이 부각된다면 조기 전당대회를 통해 당 대표에 도전하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민주당도 사정은 비슷하다. 정동영 전 장관은 4월 재보선에 출마할 것으로 예측되면서 당내 신구 주류의 갈등이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정 전 장관의 경우도 당권에 도전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든 상황이어서 자칫 당내 갈등의 기폭제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18대 총선에서 낙선하면서 잠행을 거듭했던 여야의 거물급 정치인 두 명이 이번 4월 재보선을 앞두고 화려하게 복귀할지가 관건이다.
이명박 대통령 친위대를 자처했던 친이 좌장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국내 복귀가 임박했다. 이 전 최고위원은 미국 존스 홉킨스대에서 강의를 하다 현재는 중국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자신을 지지하는 팬클럽 홈페이지에 백두산에 등정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올리면서 귀국 의사를 밝혔다.
우선 이를 반기는 쪽은 친이계다. 구심점 역할을 할 투사형 인사인 이 전 최고위원의 귀국은 갈 곳 잃은 친이소장파들에게는 결집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이 전 최고위원의 귀국에 정치권에서는 4월 재보선 선거 출마를 염두해 뒀다는 의견이 제기됐었다. 자신의 지역구였던 서울 은평을의 문국현 대표가 당선무효형이 확정될 경우 재보궐 선거에 출마한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이는 이 전 최고위원에게 부담으로 작용했다. 복귀와 함께 재보궐 선거에 뛰어든다면 당내 친박계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또한 문 대표의 재판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다른 지역구로 나온다는 것도 이 전 최고위원에겐 부담이다.
그러나 가장 큰 부담은 ‘이방호 효과’다. 지난 18대 총선에서 공천학살로 인해 친박계의 강한 반발이 있었다. 이는 이방호 전 의원이 경남 사천에서 낙선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과 맞붙은 선거에서 박근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민심이 공천파장의 원흉으로 손꼽히던 이 전 의원의 낙선운동으로 이어졌고 결국 강 의원이 박빙의 차이로 승리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이 전 의원이 애써 힘든 길을 갈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미 진보신당 심상정 전 의원이 서울 은평을 출마를 염두해 두고 있는 상황에서 만약 이 전 최고위원이 출마를 하게 된다면 반 이재오 세력인 친박과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는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 이는 지난 18대 총선의 ‘이방호 효과’에서 드러난 바 있다.
이런 이유에서 이 전 최고위원이 재보선보다는 당권도전이나 내각 입각에 무게를 더 두고 있는 것이다.
친이계 의원 관계자는 “아무래도 이 전 최고위원이 귀국하면 당대표나 10월 재보선, 또는 내각에 입각할 가능성이 크다. 어찌됐든 이 전 최고위원이 귀국해서 국내에 있는 것만으로도 친이계의 결집현상은 두드러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이 전 최고위원의 복귀에 반발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 전 최고위원이 복귀하면서 친이계의 구심점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또 다른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바로 친박계 의원들의 반발”이라고 말했다.
친박계 의원들의 반발은 거셌다. 김무성 의원은 대 놓고 이 전 최고위원의 복귀는 “선전포고”라며 반발했다.
친박계는 공천학살의 주역인 이 전 최고위원의 귀국은 당내 갈등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의 경우도 최근발언에서 여당과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법안 상정을 두고 쓴 소리를 내뱉었다. 지난 2일 청와대 오찬 직후 기자회견에서 “2월 임시국회에서 쟁점법안 처리가 예정돼 있는데 이는 국민의 이해를 구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전 대표의 발언은 여권이 쟁점법안들에 대해 속도를 내고 있는 것에 비춰보면 향후 2차 입법전쟁에 대한 우려와 함께 정부의 정책에 대한 설득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을 재주문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박 전 대표의 정치적 무게감을 생각했을 때 이를 묵과하기는 힘들다. 특히 이 전 최고위원이 공식적으로 복귀를 선언한 시점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친박과 친이계열의 대립이 이 전 최고위원의 복귀로 인해 가속화 될 가능성이 있다. 이럴 경우 박 전 대표의 결단에 따라 분당이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우려 섞인 속내를 털어놨다.
이런 상황에서 친이계 공성진 의원은 “이 정권을 반대하면서 순간적인 인기에 연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그런 인기를 빌미로 대권주자가 되려는 것은 잘못됐다”며 박 전 대표를 겨냥해 직격탄을 날렸다.
친박계는 이 같은 발언의 배후에 이 전 최고위원이 있다는 점을 들면서 반발했다. 또한 지난 공천학살과 같은 일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 그동안 자제해 오던 ‘친박’모임 추진을 공식화 하고 나섰다.
김무성 의원은 여의포럼과 선진사회연구포럼 등 친박계 모임을 통합할 필요성을 내비쳤고 현재 준비 작업에 들어간 상태다.
2월 임시국회가 끝나며 바로 통합된 모임을 출발할 계획도 세워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친박연대 관계자는 “지난번과 같이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는 없다. 우리도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 최고위원의 복귀는 정권 핵심 구조를 흔들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에게 집중된 권력 구조가 이 전 최고위원의 등장으로 인해 친이계 마저 양분화 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친이계로 분류되는 초선의원 관계자는 “친박뿐만 아니라 이상득 의원과 이 전 최고위원간의 대립도 당내 갈등 소지가 충분히 있다. 이를 뻔히 알고 있는 지도부에서도 당내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전 최고위원의 복귀는 이처럼 당내 변화를 야기시키기 충분하다. 또한 4월 재보궐 선거 결과에 따라 지도부 책임론이 부각될 수 있고 이는 조기전당대회로 연결될 수 있다. 여기에 내각에 입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부분이다. 당 대표든 입각이든, 아니면 10월 재보선이든 이 전 최고위원에게는 선택의 카드가 많다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정동영 날개 달까
이 전 최고위원과 마찬가지로 귀국의사를 내비칠 것으로 예상되는 정동영 전 장관의 경우 4월 재보선 출마에 무게를 두고 있다.
출마를 저울질하던 모습에서 이제 한 걸음 나아가 전주 덕진을에 출마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또한 당선이 된다면 차후 당대표에 다시 도전할 가능성마저 점쳐지고 있어 향후 민주당의 계파별 힘겨루기가 본격화할 조짐이다.
하지만 이에 따른 진통도 예상된다. 당내에서는 대선까지 출마했던 정 전 장관이 깃발만 올리면 당선되는 호남지역에 출마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너무한다. 재보궐 선거에 나오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은데 하물며 호남에서 나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차라리 수도권에 출마하는 것이 당을 위해 바람직하다”며 비난했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아직 신중론에 가깝다. 정 대표는 “현재까지는 국민에게 호소하는 재보선을 해야 한다는 것 말고는 언급하기에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또한 “한나라당의 공천이 완료된 이후 그에 걸 맞는 인사를 공천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공천논의를 최대한 늦추겠다는 의미의 발언을 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현재는 신중론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정 대표가 정 전 장관의 공천을 주지 않을 수도 있다. 차기 잠룡으로 분류되는 정 대표가 자신의 경쟁자에게 날개를 달아 줄지는 미지수”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당내 반발에 대해 정동영계 이종걸 의원은 성명을 내고 정 전 장관의 출마를 적극 환영했다.
이 의원은 “정 전 장관에 대한 공천심사를 배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민주적 개혁공천에 반대되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민주당내의 갈등에 대해 자숙하자는 목소리도 있다.
민주당 이광재 의원은 정 전 장관의 출마에 대해 “출마를 하겠다는 마음도 이해되고 출마로 인해 당내 갈등이 촉발되는 것도 이해된다”면서 “지도부가 논의해서 합의점을 도출해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정 전 장관에게는 “길고 크게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도 “지금은 공천문제로 당이 시끄러워야할 때가 아니다. 민생경제를 살피기도 바쁜 판에 계파 간 갈등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그나마 국민들의 민심을 조금 회복한 상황에서 또 다시 민심을 등 돌리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잠룡으로 분류되는 이 전 최고위원과 정 전 장관이 이번 4월 재보선을 앞두고 연달아 귀국하면서 정치권 판세의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과연 이들의 귀국이 각 당의 입장에서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