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 오럴 히스토리-공로명 편] 외무부장관 시기 비하인드 스토리-⑨
[일요서울] 국립외교원 외교사연구센터에서 ‘외교’라는 렌즈를 통해 우리 현대사를 조명하기 위해 오럴히스토리사업 ‘한국 외교와 외교관’ 도서 출판을 진행해 왔다. 지금까지 총 17권의 책이 발간됐다. 일요서울은 그중 공로명 전 외교부장관의 이야기가 담긴 책의 내용 중 일부를 지면으로 옮겼다.
김영삼 대통령 유럽 순방
“킨켈 외상, 한국이 빠른 시일 내 독일같이 통일 됐으면 해”
- 체코 다음으로 어느 국가를 방문하셨나.
▲ 월드컵 유치에 독일의 협조를 요청을 했다. “독일 프란츠 베켄바워 FIFA위원을 만나서 지지를 하도록 옆에서 조언을 하겠다” 하고 아주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하면서 “특히 88서울올림픽을 한국이 성공리에 훌륭하게 마친 것을 높게 평가하면서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다음에 “리우-2 세계환경회의가 1995년 3월 베를린에서 열리는데 이때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00년까지 1990년대 수준으로 끌어내리자고 제의를 할 예정이며 그에 대한 한국 정부의 지지를 바란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에 대해서는 “우리 대한민국 정부로서도 리우-2에 적극적으로 참여를 하기 때문에 물론 지지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다음에 양국 간의 현안 문제로는 한국에 들어와 있는 독일의 바스프 제약회사들에 대한 소득세 추징 문제였다. 우리나라에서 이것에 대해서 선처를 요망한다고 이야기를 했었는데, 김영삼 대통령은 “귀국 후 진상을 본 후에 불합리한 처사가 있으면 시정하겠다”는 기본적인 입장을 이야기했고, “양국 간의 과학기술협력금, 조선 문제, 대학의 과학기술연구소 교환 등이 합의가 되었는데 이것을 평가하고 대학 교류를 확대했으면 좋겠다. 또한 양국 민간인을 특사로 임명해서 협력증진을 해나갈 방안을 협의하도록 하자”고, 트랙 2 외교로써 “양측의 기술 협력을 확대해나가는 방안을 생각해보자. 그래서 한국 측이 그러한 특사를 임명하면 알려달라”하는 내용을 콜 수상이 제의했다.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체크를 못했는데 알아볼 만도 한 것 같다. 그다음에 “잠수함 수출 허가는 하겠다”고 적극적으로 잠수한 수출 이야기를 꺼냈다. 한국 측에서 또한 한국 유학생에 대한 비자 발급을 쉽게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독일 유학생 비자 발급이 어려웠던 것 같다. 비자 발급에 대한 요청이 관계 부처에서 있었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했고 이에 대해서 콜 수상은 “더 많은 한국 유학생이 올 것을 희망한다. 조치 후에 결과를 서신으로 알리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양국 외상회담은 정상회담하고 별도로 열렸는데 클라우스 킨켈 외상과 제가 이야기를 나눴다. 킨켈 외상이 북한 정세에 대해서 상당히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 마침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이 사망했을 때인데 사망을 언급하면서 북한 사정을 물어봤다. 그다음에 김용순이 북한 노동당 대남 비서인데, “교회 계통을 통해서 만나자고 요청이 왔지만 거절했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긴밀히 우리와 사전 협의를 해달라. 북한과의 관계 설정에 있어서 더욱 사전 협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로 못을 박아놓았다. 그 다음에 킨켈 외상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판문점에 갔는데, 남북한 간의 암울한 대치상황을 목격했다. 한국이 빠른 시일 내에 독일과 같이 통일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간절히 가진 바 있다” 하는 이야기를 했다.
그다음에 독일의 입장에서 아시아·EU·, 한·EU 관계를 언급하면서 “지금 아시아 국가와의 관계를 EU가 촉진하고 있는 데 대해서 한·EU 간에 기본 협력, 공동선언 등이 조속히 체결 서명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이야기했고 “EU외무장관 회담에서 EU국과 동아시아 국가들하고 아세안+3 국가, 대한민국·일본·중화인민공화국을 포함한 협동 포럼과 정상회담을 갖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그 후에 ASEM이 실현되기 때문에 이것에 대한 원칙적인 지지를 이야기한 것이다. 그리고 “호주와 뉴질랜드가 ASEM에 제외된 데 대해서 어떤 입장을 갖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물론 뉴질랜드나 호주가 아세아+3에 들어가서 아세안+5가 되기를 원하는데, 아직은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그것은 우리 단독적으로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아세안의 컨센서스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킨켈 외상이 비교적 아세안 문제에 대해서 관심이 강했다.
양국관계에 관해서는 “안보리 이사국 진출에는 역시 아시아그룹의 합의가 있으면 문제가 없다. 긍정적으로 검토는 하고 있으나 대외적으로 적극 지지하는 입장을 표명하지는 않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다음에 독일의 UN 안보리 상임 이사국 진출 문제. 그때 함찬 UN헌장 개정 문제가 많이 논의되고 있었는데 “이것에 대한 지지를 독일 측이 서면으로 요구했을 때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해 달라”고 말했다. 그다음에 “KEDO 참여를 요구하는 데 대해서는 워싱턴에서 KEDO 관련 회의를 지켜보면서 최종 입장을 정립하겠다. 사태의 진전을 더 지켜보면서 가겠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개별 멤버가 아니라 EU 전체로서 참여했다. 그다음에 독일의 특수한 국내 사정이 외교에 반영되는 이야기인데,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던 미전향 장기수 문제를 그쪽에서 이야기를 꺼냈다. 이들에 대한 석방을 요청하고 장기수 리스트를 요청하면서 우리나라에 선처를 요망했다. 이에 대해서는 북한에 억류된 우리나라 동진호 선원들이라든가 우리나라의 KNA 승무원 등 북한의 조치가 있으면 교환을 생각할 수 있지만 일방적으로는 할 수는 없겠다는 종래의 입장을 전했다.
- 이때가 이인모 송환 전인가.
▲ 1995년인가? 송환 후이다. 이인모 송환은 1992년이다. 그다음에 경제에 관해서는 “독일 차의 한국 수출을 원활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논의를 했는데 제가 지금 우리 시장에서 독일차가 가장 많이 있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다음에 “조선 설비를 증진하는 것을 자제달라”고 했다. 이건 뭐 유럽에서 계속 우리나라에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다음에 “과학기술 교류를 더욱 증진하자”는 것이다. 전체적인 방향으로서 정상회담에서 이야기한 것인데, 그다음에 아시다시피 독일의 도시 간 고속철도가 테제베에 밀려 체결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실망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독일 잠수함 수출에 좀 더 한국 정부의 협조를 바란다”고 했다. 고속철도가 안 되었으니까 잠수함이라도 많이 사달라는 이야기였다. 금융시장과 관련해서는 우리가 OECD 가입을 추진 중에 있으므로 앞으로 개선되고, 유럽산 차량 중 독일차가 제일 많은데 독일의 이해를 요망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다음에 독일 쪽에서 제기한 관심사에 대해서는 우리가 다시 한번 검토를 하고 조치를 취할 수 있으면 하겠다는 식으로 해서 독일과의 회담은 만족스럽게 이루어졌다.
이후에는 베를린 교외에 있는 포츠담시 체칠리엔호프궁전을 방문했다. 1945년 7월 포츠담회담이 개최된 장소였는데, 포츠담회담은 그해 5월의 독일 광복 후에도 항전을 계속하는 일본에 대한 전후처리 문제를 논의했다. 트루먼 대통령, 처칠 수상, 스탈린 서기장 등 정상이 모여 제2차 세계대전 전후처리 등과 1943년 카이로선언에서 천명한 한국의 독립을 재확인했던 회의였다. 그 역사적인 장소를 구경하고 마지막으로 영국을 갔다. 유럽 순방의 마지막이 영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