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의는 없다 제 22 화
인과응보는 비켜가지 않는다
2011-08-02
부처도 어쩔 수 없는 인과응보
“나쁜 짓을 저질렀다면 결코 방심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악행을 먼 옛날에 저질렀건 남모르게 저질렀건 간에 그 무엇이든 방심이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반드시 그 갚음이 있기 때문이다. 좋은 일을 했다면 안심해도 좋을 것이다. 그것이 옛날에 한 것이든 남몰래 한 것이든 간에 반드시 좋은 결과가 따를 것이니 안심해도 좋다. 그래서 사람은 나쁜 짓을 저지르면 근심이 따르게 마련인 것이다”
불교의 소부 경전에는 인과의 법칙에 대해 설명해 놓고 있다. 착한 업을 쌓으면 착한 과보를 받고 악한 업을 쌓으면 악한 업을 받는다는 ‘선인선과 악인악과’라는 인과응보의 법칙은 석가모니라도 어쩔 수가 없다는 것이 바로 불교의 가르침이다.
원인과 조건이 성숙되면 자신이 지은 업의 결과를 반드시 자신이 돌려받는다. 그래서 자신이 지은 업의 결과를 남에게 강제로 줄 수 없으며, 남이 지은 업을 자신이 억지로 대신 받을 수도 없다.
인과의 법칙은 무서워
그런데도 남이 지은 좋은 결과(과보)를 자신의 것처럼 탐내며, 또 자신에게 되돌아올 괴로운 결과(업보)를 마치 남의 것인 양 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은 인과의 법칙을 모르기 때문이다. 자신의 어두운 부분을 감추고 마음의 위안을 얻고자 신앙에 의존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과의 법칙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지은 죄는 무조건 빈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며, 또 구원을 바란다고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인과의 법칙은 죽어서도, 죽은 후 다시 환생을 한 후에도 작용하는 벗어날 수 없는 무서운 법칙이다. 공자가 ‘주역’의 위대하고 오묘함을 찬탄하며 맨 처음 꺼낸 말이, “선을 쌓는 집안에는 반드시 경사가 남아돌고, 악을 쌓는 집안에는 반드시 재앙이 넘친다”고 했다.
노자도 ‘도덕경’에서 “하늘의 그물은 성글어도 빠뜨리지 않는다”고 했다. 하늘의 도는 싸우지 않고도 잘 이기고, 말하지 않아도 잘 응하고,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오고, 천연히 있으면서도 잘 도모한다.
지혜로운 선인들의 말씀이 옳다고 해도 사람인 우리가 어디 그런가. 사기꾼, 협잡꾼 등 나쁜 일을 한 사람들은 잘 살아가는 데 비해 선한 사람은 왜 손해만 보는가. 친일파, 친미파 등 나라를 팔아먹은 사람들은 호의호식하는 데 왜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가난에 허덕이는가. 오죽했으면 “독립운동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있겠는가. 이렇다면 누가 애국을 하고, 누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는가. 하늘의 그물은 빠뜨리지 않는다면서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하늘도 무심하지’라는 말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죄 지으면 대가 치르게 마련
하지만 하늘은 결코 무심하지 않다. 자신이 지은 죄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풍수지리에서 ‘명당 자리’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죽으면 시체를 매장하여 묏자리를 만드는 것을 풍수에서 음택이라 한다.
선조의 무덤 자리가 산수의 생리에 영합하여 미래에 영향을 끼친다는 풍수지리설을 우리 조상들은 확실히 믿고 있었다. 조선시대의 송사 가운데 무려 80%가 묏자리 때문에 일어났다고 하니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명당 자리를 중요시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아무리 권세가 있고 돈이 있어도 그 사람이 살면서 덕을 쌓지 않으면 명당의 임자가 될 수 없다. 만약에 명당에 덕을 쌓지 않은 사람의 뫼를 쓰면 이변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친일파로 당대 최고의 부자이기도 했던 이OO이란 인물의 묏자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조선 최고의 권세가였던 이OO은 최고의 풍수가들을 동원하여 자신의 묏자리를 미리 준비해 놓았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의 관심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OO이 죽은 뒤 그의 묏자리는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이OO도 자신의 죄를 알고 있었던 것인지, 세상 사람들이 파헤칠까 봐 두려워해서인지 가짜 무덤을 4개나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진짜 무덤은 철저하게 비밀 속에 감추어져 왔다.
그 후 이OO의 묏자리가 세상에 밝혀진 것은 그가 죽은 지 50년 후였다. 조상의 죄상이 부끄럽다며 그 후손들의 손에 의해 파헤쳐지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의 묏자리는 전북 익산군에 위치한 오지로서 신선이 내려와 춤을 추는 형국을 하고 있는 명당에 자리 잡고 있다. 어찌된 일인지 명당 자리는 분명하지만 그의 묏자리는 잡초와 아카시아 뿌리로 엉켜 있었으며 관은 50년이 넘도록 썩지 않았다고 한다. 천하의 풍수가들이 찾은 명당에 자리를 잡아도 땅이 거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