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장편소설 제 50 회
6장. 구명시식(救命施食)
2011-08-22 기자
자살은 영혼의 타살-2
아들은 아파트에서 그만 몸을 던지고 만 것이다.
그래서일까. 아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간밤 꿈에 나타나 슬픈 표정으로 무언가 말하려는 듯했다.
“법사님, 그렇게 만든 것도 부모의 죄입니다. 자살자는 천도도 안 되어 구천을 떠돌며 영원히 고통 받는다는데 자식이 죽어서도 그런 고통을 받는다는 사실을 부모로서 도저히 가만있을 수가 없습니다. 부모로서 어떤 대가라도 치르겠으니 제발 제 아이의 죄를 덜어주세요. 밤마다 나타나서 고통스러워하는데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도와주세요, 법사님.”
죄책감에 짓눌린 간절한 바람은 보기에 딱할 정도였다. 한동안 허공을 응시하던 차법사가 어느 때보다도 근엄하게 영단을 향해 입을 열었다.
“영가시여. 내 말을 똑똑히 들으시오. 이미 저질러진 일이니 나무라진 않겠소. 하지만 죽은 영가까지 붙잡고 있다는 건 지나친 것이요.”
차법사가 외친 쪽은 아들 영가 쪽이 아니었다. 그 옆에 노기 띤 얼굴로 서 있는 한 사내 영가였다.
‘이 놈도 당해봐야 알아. 이건 인과응보야. 나도 전생에 이 녀석 때문에 그렇게 죽었어.’
“과보는 잘 알고 있소. 그러나 여기 보시오. 아들의 부모가 이렇게 애타게 빌고 있지 않소. 부모가 무슨 죄요. 당신도 부모가 있었을 것 아니요. 이미 과보를 주고 받았으니 죽어서라도 그 아이를 편하게 놔주시오. 상관도 없는 부모 마음까지 아프게 해서 더 이상 업을 짓지 마시오.”
영단 앞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부부와 동참자들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차법사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온 신경을 집중하여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사내 영가는 슬피 우는 부모를 허공에서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당신도 고통에 시달리며 여기에 매달려 환생을 하지 못하고 있지 않소. 결국 원한을 푸는 것은 당신을 위한 것이오.”
사내영가의 살기가 많이 수그러들어 있었다.
‘좋소. 내 떠나리다. 복수도 마쳤으니.’
차법사는 부부를 교문 책상 옆으로 불러 침착하게 이야기했다.
“너무 염려 마세요. 아드님은 그냥 자살이 아닙니다.”
“네? 자살이 아니라구요? 그럼 누가 죽인 겁니까?”
“자살은 자살입니다만 어떤 영가가 자살하게 만든 겁니다.”
자살을 유도하는 영가라니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거나 푸른 물에 뛰어내릴 수 없습니다. 공포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살을 유도하는 빙의영가가 꽃밭처럼 보이게 하거나 새처럼 날 수 있다고 꼬드겨 뛰어내리게 한 겁니다. 그래서 이런 자살의 경우는 육신은 자살이더라도 영혼의 타살입니다.”
부부는 자살이 아니란 말에 안도했지만 영혼의 타살이란 말에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웠다.
“자살을 유도한 빙의영가까지 함께 천도해야 합니다. 서로 과보를 주고받았으니 빙의영가를 원망하진 마시구요.”
“고맙습니다, 법사님, 원망은요. 잘 천도되길 빌 뿐이죠.”
“다행히 이제 아드님은 일찍 태어날 겁니다. 그러니 부모님께서는 너무 걱정 마세요.”
부부의 얼굴은 처음과는 완연히 딴판으로 변해 있었다. 마치 사형언도를 받았다가 무죄로 석방되는 피의자의 심정처럼 세상이 보석처럼 빛나 보였다.
차법사도 구명시식 초기에는 자살자는 자기 몸을 찢은 죄로 고통 받으며 수백 년간 새 몸을 받지 못해 환생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늘 자살자 옆에는 주위를 맴도는 영가가 있었다. 자초지종을 알고 보니 자살자를 자살하게 만든 영가였다. 그 업보의 경중에 따라 받는 과보는 사람마다 천지 차이였다.
획일적 교리나 율법은 영혼의 과보와 너무나 어긋나 있었다. 차법사가 미국에서 겪었던 일만 해도 그랬다.
교포 부부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7살 난 딸을 키우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의 차가 그만 급후진하여 뒤에 놀던 딸을 치여 사망하게 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었다.
부모는 충격과 실의에 빠졌고, 엄마는 거의 실성하여 몸져누워 딸 장례식조차 참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장례식장에서 목사님은 유가족을 위로했다.
“아이는 신의 곁으로 갔습니다. 아이는 죄를 지은 게 없으니 분명 천상에서 천사가 되었을 겁니다. 나중에 부모님께서 천상에 올라가면 천사가 반갑게 맞이할 겁니다.”
조문객들도 경건하게 기도를 했다. 장례를 마친 아버지가 종교를 넘어 차법사를 찾았다. 그에겐 어려운 걸음이었다. 그만큼 절실했던 것이다.
“처음엔 처가 죽도록 미웠습니다. 그런데 벌써 몇 주째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데……. 법사님께서 구명시식으로 천사가 된 아이를 만나게 해서 애엄마를 위로해 주십시오.”
차법사는 가슴이 턱 막혔다.
“구명시식보다는 지금은 부인께서 안정을 취하실 때입니다. 혹시 모르니 집보다는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으세요. 그리고 되도록 빨리 아이를 잊으세요. 두 분도 죽었다가 덤으로 산다 생각하시고 주위에 많이 베푸시고요.”
“네, 뭐라구요?”
적어도 따뜻한 위로를 원했던 딸의 아버지에겐 너무도 냉정한 충고였다.
그러나 차법사의 눈에는 그 충고가 최선이었다. 죽은 딸의 영가와 엄마와의 과보를 염사하고 내린 진단이었기 때문이다. 차법사가 본 염사결과는 이랬다.
딸의 어머니는 젊은 시절 한 여인에게 몹쓸 짓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여인은 죽으면서 복수를 다짐했고, 놀랍게도 그녀의 딸로 태어난 것이었다. 이를 알 리 없는 어머니는 이국만리에서 지극정성으로 딸을 키웠고, 딸은 온갖 재롱을 다 피우며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그러다 엄마의 눈앞에서 그녀의 손에 의해 처참하게 죽은 장면을 연출했으니, 엄마의 충격은 상상할 수 없었다. 이렇게 전생의 원수가 환생한 딸은 ‘내가 가슴 아팠던 만큼 너도 당해봐라’ 하며 처절한 복수를 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과보는 끝난 게 아니었다. 부인이 우울증에 걸려 자살할 위험에 직면해 있었던 것이다. 차법사가 병원비 아끼지 말고 병원치료를 권했던 이유였다.
“잘 들으세요. 예전엔 나이가 지긋한 노인분이 대뜸 저에게 이런 불만을 터뜨린 적이 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아기 때 죽는 것이 영원히 천국에서 살 수 있는 지름길인가요?’ 하고 말이죠. 그의 말인즉, 지상에서 한 번의 선택이 천상에서 영원을 좌우한다면, 오래 살수록 죄 지을 일이 많아 천국에 갈 확률이 떨어진다는 거였습니다. 보통은 무병장수가 하늘의 축복이라고 하는데 오히려 죄를 더 많이 질 확률을 높이는 거라며, 나이든 자기 입장에선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로선 아이가 당연히 천상에 가야 하지요.”
“그럼 지옥엔 노인들만 있고, 천국엔 아이들만 있을까요?”
“허, 참. 생각해 보니 그러네요. 저는 별 생각 없이 믿어왔는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상계도 크게 보면 영계의 일부입니다. 영혼은 이미 불생불멸합니다. 다만 영혼의 DNA에 업보만 쌓이는 겁니다. 과보가 실현되는 천국과 지옥의 장이 어디에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현실이 바로 과보가 되갚아지는 현장의 하나가 되는 겁니다. 다시 말해 현재 삶은 과거의 업보에 따라 천국도 되고 지옥도 되는 것이지요.”
인간의 지식이나 교리는 정해져 있지만 영혼의 세계는 획일적인 진리나 상식은 없었다. 그 누구도 당사자들의 인과를 알지 못하고 교리나 도덕률을 들이대 속단해서는 안 되는 영역이 영혼의 세계였다. 1인 1업보, 1인 1종교라고 말하곤 했다.
차법사는 다시 요령을 힘차게 흔들었다.
‘땡그랑, 땡그랑, 땡그랑.’
병(病)의 기원-1
차법사가 이름을 불렀다.
“이선자씨.”
“네.”
“많이 좋아졌지.”
“네, 법사님. 감사드립니다.”
그녀는 1년 전에도 구명시식을 올린 적이 있었다. 당시엔 혈액암에 걸려 병원으로부터 6개월 시한부 인생을 통고 받은 상태로 올린 구명시식이었다. 이 병원 저 병원, 좋다는 민간요법까지 한 해본 게 없었지만 악화 되어 모든 걸 포기하고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심정으로 차법사를 찾았던 것이다.
#김영수
▲ 1965년 서울 출생 ▲ 제23회 근로자 문화예술제(근로복지공단, KBS한국방송공사 주최) 문학 분야 입상(2002) ▲ 일간 스포츠에 칼럼 ‘영혼르뽀’ 연재(2007)▲ 한국불교신문에 소설 ‘時中’연재(2008) ▲ 한국불교신문에 소설 ‘무학대사’연재(2009-2010) ▲ 현 인터넷신문 [후아이엠]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