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장편소설 제 47 회
6장. 구명시식(救命施食)
2011-08-01 기자
무신론(無神論) 영가의 등장-2
부인이란 말에 그제야 생각이 났는지 빨치산 영가는 허둥지둥 부인의 안부를 물었다.
‘저 여자가 내 마누라입니까?’
‘아닙니다. 아드님의 부인입니다.’
작년에 죽었다는 설명을 듣자 사내의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평생 그렇게 드러내서 눈물을 보인 적이 없던 그였다. 화석처럼 굳었던 분화구가 터지듯 용암처럼 뜨거운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영가가 되어서야 펑펑 울다니……. 그 자신이 그렇게 더욱 서러움에 복받쳐 씻어 내리는 눈물이었다.
눈물은 마음의 치료제라고 했던가. 이상하게도 영가의 복부 상처가 서서히 아물기 시작했다. 현실을 인식하자 비로소 영체(靈體)로 갈아입는 현상이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조박사가 더 문제였다. 부전자전이라 했던가. 조박사도 영혼이나 사후세계는 미신이라고 믿는 과학자 중 하나였다.
“열심히 관찰하시는데, 그래서 지금 오신 영가를 보셨나요?”
“네?”
멍하니 영단을 두리번거리던 조박사는 차법사의 말에 화들짝 놀라 우물쭈물했다.
그는 아내의 채근 때문에 온 자리였다. 만성 복통으로 이 약 저 약 안 써본 약이 없지만 병명을 모르고 시름시름 앓다가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아내의 소원이라도 들어준다는 셈치고 무당굿이나 구경하자고 온 참이었다.
조박사는 영혼 운운하는 사람들에 대해 정신이 나약한 사람들이 환영을 보거나 정신질환을 앓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소위 과학자인 자신이 이런 곳에 참석했다는 사실이 알려질까 조심하고 있던 터였다.
혹시나 영가가 있는가 열심히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지만 그의 눈에는 그저 차법사가 허공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동작도 일종의 ‘쇼’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사실 사람들은 반신반의한 채로 구명시식에 임하기 일쑤다. 차법사의 아내와 어머니조차도 자신을 믿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차법사의 둘째 딸이 막 태어났을 때 일이다. 아기는 밤낮을 바꿔가며 울어댔다.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자 차법사의 아내는 아기 울음소리만 들어도 경기를 했다. 신경쇠약에 걸린 아내는 차법사에게 하소연했다.
“당신이 진짜 영능력이 있으면, 이 애를 좀 고쳐봐요!”
아내가 보는 앞에서 돌아가신 고모님을 위로하는 긴 편지를 써 올렸다. 그랬더니 거짓말처럼 아기가 울음을 그쳤고, 그 후로도 밤잠을 설친 적이 없었다.
차법사의 어머니도 처음엔 자식을 믿지 않았다. 다니던 대기업도 그만두고 만행을 한다고 전국을 떠돌다가 선원을 열자 몹시 못마땅해 하셨다. 그러다가 차법사의 조카가 공사현장에서 사고로 척추가 탈골되는 중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하는 사건이 생겼다. 병원에서는 하체가 마비되었으며, 재활치료를 받는다고 해도 정상인처럼 걸을 수 있는 확률이 몇 백만분의 일이라고 통보했다. 차법사의 어머니는 병원을 다녀온 후 무겁게 입을 열었다.
“네가 그만큼 영능력이 있다면, 좋은 곳에 쓴다 생각하고 조카를 다시 정상으로 만들어봐라. 만약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내 너에게 삼배를 올리겠다.”
그 후 조카는 장가도 가게 되었고, 아기도 낳아 잘 살고 있다. 물론 어머니에게 삼배도 받았다.
차법사가 조박사를 향해 물었다.
“지금 지갑에 5만 3천원 있으시죠?”
“네?”
“지금 확인해보세요.”
조박사는 서둘러 지갑의 돈을 세어보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한 액수였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면서 아버지 사진을 한 장 주셨죠?”
“네.”
참 신기한 일이었다. 처음 보는 사내가 어떻게 그런 사실을 알았을까. 조박사는 설마 아내가 면담자리에서 한 말을 기억하고 들이대는 것이겠지 싶었다. 갑자기 차법사가 조박사에게 물었다.
“조박사님 이름이 틀리시네요. 조문호가 아니네요? 본래 성함이 조영우아닙니까?”
조박사는 화들짝 놀랐다.
“네? 그걸 어떻게 알았습니까? 오래전에 개명했는데.”
“영가분이 죽고 난 다음에 개명한 이름은 알 수가 없지요. 영가와 확인해 본 겁니다.”
조박사는 머리를 방망이를 한 대 맞은 것처럼 얼떨떨했다. 정말 영가가 있단 말인가. 영가가 와있단 말인가.
“제가 어떻게 금액을 알아맞히고 옛날 이름을 알 수 있겠습니까. 박사님께서 알 수는 없지만 알 수 없는 세계가 분명 있다는 증거 아닙니까. 이 자리에선 알아서 믿으려 말고 믿어서 알도록 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넋이 나간 듯 당황하던 조박사의 태도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앞에 아버님 영가가 와 계십니다. 인사드리세요.”
조박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아버지’를 외치며 허공에 큰절을 하며 대성통곡을 했다.
법사는 조박사 내외를 가까이 불렀다. 종이위에 아버지 영가의 말을 글로 쓰는 교령문(交靈文)을 시작했다.
‘못난 애비다, 영우야. 산에서 늘 니 생각만 했다. 이렇게 늦게 찾아서 미안하다.’
조박사는 황소우는 소리를 내며 대성통곡했다.
“아버지.”
“자 진정 하시고. 아버지님께 하고 싶은 말씀 하세요.”
“아버지!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어머니 고생 많이 하시다 작년에 돌아가셨어요. 어머니와 같이 왔어야 하는데, 얼마나 만나고 싶어 했는데요, 아버지.”
조박사는 다시 오열했다. 영가도 늙은 아들의 모습을 어루만지며 통곡했다. 차법사는 영가를 위해 염불을 올렸다.
영단 앞에 6·25 사변 통에 변을 당한 다른 영가들도 나타났다. 남루한 차림에 병색이 완연한 영가는 9·28수복 때 인민군에게 납북되어 끌려가다가 황해도 근처에서 병사했다고 했다.
‘놈들이 나를 강제로 끌고 갔소. 이동 중에 폭격을 당해 부상당했소. 그런데 놈들은 치료도 안 해주고 방치했다가 그만……연로하신 어머니를 남겨두고 그렇게 죽었소. 너무 억울하오.’
6·25전쟁은 거대한 이념의 충돌 같지만 결국 한 사람 한 사람의 원한이 오랜 세월 얽히고 설켜 주고받은 결과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의 남북 분단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사람 사람마다 한 올 한 올 마음을 풀어갈 수밖에 없었다.
‘영가시여. 어제에 온 비에는 꽃이 피지만, 오늘 온 비에는 꽃이 집니다. 비가 와서 꽃이 피고 비가 와서 꽃이 지겠습니까? 때가 되니 피고, 때가 되니 지는 것이지요. 인간의 목숨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어디 비 탓이겠습니까. 인민군 탓이다, 국군 탓이다 원망들 하지만 크게 보면 모두 지나가는 비가 아니겠습니까.’
차법사는 유주무주의 동참자들이 다 듣도록 큰 소리로 말했다.
“사람 인(人)자를 영혼과 육체라는 두 개의 획이 합쳐져 형상화 된 것으로 풀이할 수도 있습니다. 긴 획은 영혼이요, 짧은 획은 육신입니다. 즉 육신은 짧고 영혼은 길다는 것. 육신에서 영혼이 이탈하면 육신은 죽게 됩니다. 따라서 영혼이 육신 속에 있을 때만이 육신이 살아 있게 되니까 육신이란 존재의 근원은 영혼일 수밖에 없습니다.”
차법사는 영가를 위로하기 위해 가무단에게 타령을 부탁했다. 딱히 곡목을 지정하지 않아도 가무단은 분위기에 맞게 가무를 펼쳤다.
“탁-”
사물 북의 나무 귀퉁이를 소리를 신호로 가무단들이 일제히 <백발가(白髮歌)>를 시작했다. 씨앗 알맹이의 색은 흰색이듯, 늙어 흰머리 백발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다. 목숨 붙어 있는 것 치고 태어나 죽는 것은 당연지사지만, 인간은 늙어 죽음이 서글프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