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장편소설 제 38 회

5장. 일수사견(一水四見)

2011-05-30      기자

경신년(庚申年) 주인공은 누구

조기자의 맞장구에 지천태는 한층 여유롭게 대답했다.

“호적상 가계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정신적 계승자가 후신이 아닌가요. 티벳의 달라이 라마도 호적이 아니라 환생한 후신으로 평가하지 않습니까.”

오랜만에 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도수로 보자면 차법사님이 차경석이 틀림없네.”

조기자가 거들자 지천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셈이지요. 열석자의 유언이란 것도 ‘진길’이란 이름의 13획이라고 하셨잖아요?”
“지선생께선 짧은 시간에 참 많이도 연구하셨소.”
“증산 사후에 27년간 허송세월을 한다고 되어 있는데 전생에 증산의 제자가 차경석이었듯이, 27년 후에 차혁일과 차진길이 부자지간으로 만나 가르친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

용화는 못마땅한 듯 말이 없었다.

“월곡 차경석의 선고인 차치구는 공주 우금치에서 화형을 당했고, 14살이던 차경석은 그런 아버지 시신을 직접 수습하지 않습니까. 법사님은 공주 곰나루 부근에서 12살에 선친 차혁일 총경의 시신을 수습해야 했잖아요. 월곡은 동학혁명으로 죽은 수많은 원혼들을 위로하였고, 법사님 역시 구명시식을 통해 6·25사변으로 돌아가신 많은 원혼들을 위로해오고 있잖습니다. 법사님께서 구명시식을 하시게 된 계기도 선고 때문이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그런데 지천태의 말을 가로 막은 것은 용화가 아니라 조기자였다.

“형님이 미륵이라는 지선생의 해석도 일리가 있습니다만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열석자 유언에 안 맞으니까요.”
“열석자요?”
“책을 보면 증산은 열 석자로 온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열 석자란 이름 획수가 아니라 예수의 열세 번째 제자를 뜻한다고 봅니다.”
“기독교의 예수님의 제자들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증산도 생전에 성경책을 보았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13이란 숫자는 천상의 숫자입니다. 예수는 열두 제자를 두었습니다. 미완성의 수였죠. 그래서 열세 번째 제자, 즉 기독교의 형태로 온다고 전합니다.”

지천태가 어이가 없다는 듯 조기자를 바라보았다.

“그럼 기독교식 증산의 환생은 누굽니까?”
“세계교의 윤총재가 아닐까 합니다. 또 그분이 공교롭게도 경신년 생입니다.”

새로 등장한 현생 미륵 후보자의 출현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국내에서는 이단 취급받지만 해외에서는 윤총재를 세계적인 종교인으로 알아줍니다. 세계 200여 개국에 지부를 두고 있는 유일무이한 초종교이지 않습니까. 정말 대단한 조직입니다. 증산이 세계를 종말에서 구할 메시아라면 현생에는 그 정도 영향력과 조직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지천태가 의문을 제기했다.

“기독교와는 거리가 있지 않나요? 증산은 불교의 형태를 빌려 온다고 했고 불교라면 오히려 법사님에게 보다 더 가까운 것 아닙니까? 정해년 4월 8일생에게 단주수명서가 전해진다고 해석이 되구요.”

지켜보던 용화는 더 이상은 참지 못하겠다는 듯 단호하고 분명한 어조로 선을 그었다.

“그렇게 아전인수로 해석해서는 안 되지요. 이 단주수명서를 받을 분은 분명 소만부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사(巳)는 12지지의 뱀이면서 천문을 말하는 겁니다. 천문을 받들 분이 소만부에 명시되어 있다는 뜻이지요. 그렇게 단편적으로 견강부회할 게 아닙니다. 현무경과 유서는 상제님께서 치밀하게 행하신 천지공사 도수를 아무도 알 수 없도록 퍼즐처럼 분리해 놓은 겁니다. 마치 청동거울을 몇 조각 낸 것처럼 말입니다. 이 다섯 가지 오행(五行)을 맞추면 종합적으로 공통분모를 추출해서 맞추어야 합니다.”
“용화선생께서는 뭐든지 음양오행의 틀에 맞추시는데, 많은 현무경 중에서 굳이 5장의 천문만이 퍼즐의 전부라고 하는 증거는 뭡니까?”

조기자의 날카로운 눈빛에 용화는 잠시 주춤했다.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반전을 시도했다.

“에, 천지가 음양오행의 산물이니 당연히 상제님께서도 그리하셨을 겁니다.”

지천태가 진지하게 용화에게 물었다.

“법사님께서 출세한 미륵이 아니라면 용화 선생께서 법사님께 천문을 전하는 이유가 뭐지요? 법사님이 전생에 증산의 제자였던 차경석의 후신이라면서요?”

용화는 속이 타서 식은 차를 벌컥 들이마셨다.

“이건 천기누설이라 말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결심한 듯 용화가 입을 뗐다.

“이 천문은 상제께서 갑진년(1904)년에 그린 그림인데, 상제께서 1909년 어천하신 100년 후에서야 그림의 비밀이 완벽하게 풀리게 되었지요. 현무경의 비밀을 풀기 위해서 제 스승이신 동곡 선생님은 무려 20년 동안 연구했고, 그래도 완전히 해독하지 못하고 2007년도에 세상을 떠나셨지요. 저 또한 지난 10여년이 넘도록 현무경을 연구하다가 천신만고 끝에 원본 천문 크기의 사본을 얻어 작년부터 단서를 잡기 시작하여 올 초에야 완벽하게 천문의 비밀을 해독하게 되었습니다.”
“…….”
“그 벅찬 기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으며, 2009년 8월 14일(음력 6월 24일) 증산상제 100주년 화천 기념일에 상제께서 어천하신 장소에 찾아가서 그 기쁜 소식을 보고 드렸으며 술잔을 올렸습니다. 제가 이미 설명은 드렸지만, 성장공사도, 예장공사도, 신장공사도 그림에는 미륵불(彌勒佛)이 천명을 받아 출세하는 연도와 날짜와 시간까지 아주 정밀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하늘의 병풍으로 가린 천문과 제가 설명하지 않는 절문(節文)이 그것입니다. 모두 같은 성씨의 인물을 지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천기 중의 천기에 속하므로 여기서는 밝힐 수는 없습니다.”

진지하게 듣고 있던 조기자와 지천태는 밝힐 수 없다는 말에 맥이 탁 풀렸다.

“천문의 비밀을 풀기 위해서 스승님과 제가 그동안 들인 정성과 노력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 비밀을 풀고 보니 허탈하기도 하고 또한 그 비밀에 따라 일을 추진해야 하는 책임감이 뒤따르는군요. 다만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천문은 미륵의 출생을 위한 정지작업입니다.”

“그러니까 누가 미륵이라고 하시는 겁니까?”

조바심이 난 조기자는 이제 아예 따지는 기세였다.
“제가 여러분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천문을 빨리 전하려는 욕심에 너무 서둘렀나 봅니다. 스스로 공부해서 알아야 하는 데 말입니다. 누가 미륵이냐에 앞서 왜 미륵이 출세할 수 없는가 하는 배경부터 알아야 할 것입니다.”
“좋습니다. 왜 미륵이 출세해야 하는 겁니까?”
“인류의 종말을 막기 위해서지요.”
“예? 인류의 종말?”


인류의 종말은 오는가-1

조기자는 용화의 인류종말 언급에 터무니없다는 듯 포문을 열었다.

“지난 1999년에도 밀레니엄 종말론이 극성이지 않았습니까?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때문에 너도나도 지구가 멸망할지 모른다며, 그땐 정말 지구멸망설이 겁나게 극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나니 모두 사기였습니다. 1998년 IMF까지 터지자 경제적 패배감, 늘어나는 노숙자, 고위층의 자살이 속출하면서 밀레니엄의 컴퓨터 제어 오작동 공포설까지 겹쳐 인류멸망설은 종교처럼 번졌던 겝니다.”

조기자의 반론에도 불구하고 용화는 흔들림이 없었다.

“상제님의 천지공사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괴질병으로 인한 인류 선악심판의 문제입니다.”
“…….”
“이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고 있으며 그 발병 시기를 각 종교단체에서 나름대로 해석하여 혹세무민한 바도 있지요. 증산 상제를 공부하는 대부분의 학인들도 한때 1996년도에 병겁이 시발하는 것으로 해석했었지요.”
“항간에 분분한 2012년 지구멸망설을 말씀하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