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장편소설 제 15회
3장. 경천동지(驚天動地)
2010-12-14 기자
국혼(國魂)을 불어넣을 때-3
“어디 갔었니. 얼마나 찾았는데.”
“배가 고파서 찔레꽃 따먹었어.”
“빨리 가자, 더 어두워지기 전에.”
멀리 용주사 종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어쩐 일인지 어깨의 통증도 말끔하게 가셨다.
“종소리 들리지? 얼마 안 남았단다.”
네 가족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노래를 부르며 정겹게 손을 잡고 나아갔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이틀 뒤, 100여명의 독립군들이 비암산을 지나 압록강으로 향하고 있었다. 맞은 편에서 말을 탄 척후병이 달려왔다.
“대장님, 시신을 발견했습니다.”
“시신?”
“민간인입니다. 여인이 젖먹이를 업은 채로 죽어 있었습니다.”
“피난민이군.”
독립군들은 모자(母子)의 시신을 정중하게 땅에 묻고 묵념을 올렸다. 출발하려는 찰나 다시 척후병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시신이 더 있습니다. 아이 두 명입니다.”
남매가 손을 꼭 잡고 누나의 손에는 찔레꽃이 쥐여 있었다.
“서로가 길을 잃었나 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신은 부패한 냄새가 고약했지만 손에 들린 찔레꽃은 전혀 시들지 않았다.
네 개의 소복한 돌무덤이 나란히 쌓였다. 독립군들은 압록강을 향해 다시 말을 달렸다.
멀리 아스라이 보이는 일송정 소나무에 네 명의 식구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엄마 내가 불러볼게.”
손에 찔레꽃을 든 여자아이가 고개를 어르며 노래를 불렀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젖을 먹이는 어머니는 흐뭇한 눈으로 두 남매를 바라보며 같이 노래를 불렀다.
불과 수초가 흘렀지만 먼 곳을 다녀온 차법사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극장안의 그 누구도 차법사의 시간여행을 눈치 챈 사람은 없었다.
‘영가시여, 일본은 패망하고 조국은 해방이 되었습니다. 조선은 대한민국이란 국호로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경제대국이 되었습니다. 아직 남북으로 분단이 되고 간도지역을 찾지 못해 완전한 광복은 아니지만요.’
‘일본이 망했군요. 우리는 해방을 했군요. 아, 정말 바라고 바라던 바입니다. 이제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어요.’
‘네, 영가님들과 같은 이름 없는 독립투사들의 염원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편히 쉬시고 새 몸을 받으십시오.’
‘고맙습니다. 간도를 찾는데 좋은 소식이 있을 겁니다. 저희 독립군 영가들도 도울 테니까요.’
영가는 세 아이를 데리고 위패 속으로 스스륵 사라졌다.
차법사는 가무단에게 아리랑을 신청했다. 일송정 가족영가와 이름 없이 스러져간 많은 만주 독립군 영가들을 위무하는 노래였다. 동참자들은 아리랑을 따라 불렀다. 왠지 모를 서글픔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많았다.
한편 객석 뒤쪽에서 차법사의 일거수일투족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꼼꼼하게 바라보는 사내가 있었다. 그는 간간이 수첩에 무언가를 적기도 했다. 그는 차법사가 특별히 초청한 조준동 기자였다.
할렘 마피아와의 대결-1
차법사가 일일이 동참자들의 손을 잡고 배웅하는 동안 조준동 기자는 7층에 위치한 차법사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각종 상패와 감사패를 확인했다. 사무실 벽에는 30여점의 사진 액자가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었다.
화엄사 차혁일 총경비 제막식, 버뮤다 삼각지,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일본 하사히야마 음악제 공동 주최, 이탈리아 피에베 디 솔리고 오페라 공연….
조기자는 검은 테의 안경을 벗어 수건으로 닦으며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이 양반이 그동안 참으로 많은 일을 했구먼. 안 보는 사이 거목이 되었어.”
조기자가 차법사를 처음 만난 건 21년 전인 1991년 여름이었다. 군부정권이 막을 내리고 남북화해 무드가 조성되던 시절이었다.
신문사의 뉴욕 특파원이었던 조기자는 신참인 관계로 선배들에 밀려 백악관은 출입하지 못하고 한인 동포사회의 한인들과 인맥을 쌓고 있었다. 뉴저지에 선원을 세우고 영혼과 이야기한다는 차법사 소식도 간간이 듣고 있었다. 몇 번 동포들의 경조사 자리에서 스쳤던 차법사가 조기자의 뇌리에 박힌 건 온몸으로 공포를 체험했던 마피아 사건 때문이었다.
할렘에서 생선가게를 하고 있는 교포 김씨가 찾아와서 차법사에게 애걸복걸했다.
“법사님, 꼭 말콤을 만나주세요, 제발이요! 안 그러면 가게 문 닫고 저희 가족들은 거리에 나앉게 됩니다. 부탁드려요, 법사님!”
김씨는 미국에서 차법사에게 구명시식을 올리고 아이를 낳았다. 그런데 할렘의 마피아들 때문에 가게 문을 닫게 생기자 맨발로 달려왔던 것이다.
할렘은 맨해턴 스트릿 220여개 중 북쪽 40블록의 흑인 밀집 거주 지역을 이르는 말이다. 흑인문화의 발상지이기도 하지만 미국에서 가장 범죄가 많은 빈민가의 대표적인 이름이다.
억척스런 우리 동포들이 이곳에서 장사를 많이 하고 있었다. 주로 청과상, 의류, 잡화, 가발 그리고 생선가게들 이었다. 그곳의 토박이 흑인 주민들은 워낙 우악스럽고 청결과는 거리가 멀지만 순진한 편이다. 그들은 버는 대로 정확히 말하면 들어오는 대로 쓰는 소비행태를 지니고 있었기에 한인들에게 장사는 잘되는 편이다. 하지만 뒷골목 상권은 마피아들이 좌우하고 있었다.
어느 날 차법사의 명성을 들은 할렘 뒷골목의 보스 말콤은 김씨를 협박했다.
“미스터 차를 내 앞에 불러와라. 안 그러면 장사할 생각 말라.”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차법사는 김씨의 가게 앞에 진을 치고 있던 우락부락한 흑인 덩치들과 함께 무시무시한 할렘으로 향했다. 통역을 위해 조기자가 같이 동행했다. 영문도 모른 채 달려왔던 조기자는 얼떨결에 동행하게 된 것이다.
보스 말콤은 할렘 지역 뒷골목의 황제였다. 유명한 민권운동가 말콤의 이름을 따왔지만 하는 짓은 전혀 딴판인 건달이었다.
한 블록쯤 떨어진 허드슨 강이 보이는 어느 낡은 건물의 3층에 도착했다. 알 수 없는 퀴퀴한 냄새가 기분 나빴지만 소파도 있었고 책상도 있는 사무실의 형태는 갖추고 있었다. 소파에 앉아 있던 거구의 사내가 차법사의 아래 위를 훑어보며 한마디 던졌다.
못해도 150킬로그램은 되어 보이는 거구였다. 그래도 예의는 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이 자동차 타이어만 했다. 손힘이라면 차법사도 져본 일이 없었다.
손을 잡는 순간 말콤은 으스러지도록 힘을 주었다. 차법사는 태연하게 힘의 균형을 맞추고 악수를 끝냈다. 거만하던 말콤의 표정이 움찔했다. 차법사의 손힘이 자신보다 윗길이면 윗길이었지 아래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콤은 성능 좋은 소음 권총으로 무장한 부하들이 곁에 있었다.
말콤은 뚜벅뚜벅 걸어가 책상 옆의 사람 키보다 큰 그림 액자곁으로 가더니 액자를 슬며시 옆으로 밀었다. 액자가 구르듯 스스륵 밀렸다. 시커먼 구멍이 떡하니 입을 벌리고 있었다. 사람 하나는 충분히 들어갈 네모난 모양이었다. 검은 구멍은 깊은 우물같이 밑바닥을 알 수 없었다. 서늘한 기운과 함께 비명소리 같은 아득한 동굴 울림이 들렸다. 어찌 들으면 고양이 우는 소리처럼 들렸다.
“우리는 이걸 블랙홀이라고 부르지. 허드슨 강에 연결되어 있어.”
말콤은 묵직한 크리스털 재떨이를 그 구멍으로 획 집어 던졌다. 재떨이는 깊은 우물 속에 떨어지는 돌처럼 몇 번 벽에 부딪히는 소리를 내더니 아득히 멀어져갔다. 말콤은 사람을 돌에 묶어 던지면 이렇게 된다는 시범을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말콤의 목소리는 한층 더 유들유들해져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