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 文 [천문] 제5회

김영수 장편소설 제 5회 / 일러스트 나은진

2010-10-05      기자

2장. 천지 도수(天地 度數)

석종(石鐘)으로 떨어진 용-3

“천지 도수의 시작을 명나라로 축을 두고 있는데 이건 명백한 잘못이지. 조선이나 명나라의 사계절이 아니라 북두 은하의 사계절부터 시작해야 하니, 조선 팔도가 아무리 봄이라 해도 우주의 겨울엔 꽃이 필 순 없지. 음양오행의 도수는 작게는 인간의 들숨과 날숨에서 시작하여 크게는 우주의 호흡과 짝을 이루어야 해.”

조진사는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바짝 당겨 물었다.

“그럼 우주의 계절로 보면 지금은 어느 계절인가?”
“봄과 여름의 선천(先天), 가을, 겨울의 후천(後天)이라 하지. 지금은 화기운의 극상인 선천의 말미야. 여름의 막바지야. 아니 초가을에 더 가깝지. 무질서의 극상. 나뭇가지는 만방으로 뻗고, 잎사귀는 푸르다 못해 분에 넘게 검고, 씨방에선 덜 익은 열매들이 치고 올라와 꽃잎을 시들게 하고…. 후천이 지나야 비로소 가타부타 쭉정이가 가려지겠지.”
“우주의 가을엔 세상이 어떻게 변하게 되는가?”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지.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대변혁기엔 모든 것이 변하네. 통합의 기운이 왕성해져서, 무성한 나뭇잎이 추풍낙엽에 우수수 떨어지며 단단한 열매가 맺지. 분화 번성하던 시절은 가고 열매 하나로 통합하는 우주의 가을이 도래하겠지.”
“우주의 가을, 통합의 기운….”
“가을엔 영글기 위해 다툼이 많을 게야. 옥석이 가려지며 가혹한 겨울을 견딜 놈들만 살아남아야 하니까.”
“실감이 안 나는구먼.”
“동방(東方)인 목방(木方) 간(艮) 조선 팔도엔 내홍과 전화(戰火)가 극성이겠지.”

‘둥- 둥- 둥-’

별안간 괴이한 소리에 움찔했다. 처음 듣는 소리였다. 북소리 같지만 가죽 북이 울리는 소리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맑은 쇠종소리도 아닌 땅을 뒤흔드는 둔탁한 소리였다.
다음날 금산사 승려들과 인근 마을 사람들이 방등계단에 모여 웅성거렸다. 다름 아닌 지난 밤 처음 듣는 소리는 방등계단 중앙의 돌종에서 울린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 웅성댔지만, 그 종소리가 조선 팔도를 불태울 왜구와 오랑캐가 들이닥칠 징조임을 알아채지는 못했다.

방등계단을 돌고 있는 용화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초저녁별이 하나 둘 반짝거렸다.
‘출생할 미륵 또한 저렇게 세상에 빛나면 얼마나 좋으련만….’

10년 전 용화 선인에게 스승인 동곡(銅谷)선생의 갑작스런 죽음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 미륵의 현신으로 믿고 있던 스승은 20년간이나 증산의 흔적을 연구한 천문(天文)의 대가였다.
그 동안은 증산이 남긴 현무경(玄武經)을 감히 해석하는 자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동곡이 처음으로 현무경에 도수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냈다. 동곡은 현무경이야말로 증산이 후세를 위해 남긴 천문이라고 굳게 믿고 해석에 뛰어들었다.
놀랍게도 천문에는 해방 전후까지 국운이 천지공사 도수로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동곡이 이를 알아낸 것이다.
어느 날 동곡은 따르던 도학들에게 중대한 사실을 실토했다.

“후천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엄청난 변란이 다가옵니다. 지구 전체가 요동치는 변란이에요. 천문 도수에는 이미 미륵이 출세했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세상을 도탄에서 구할 미륵이 출세했다니. 도학들이 출세한 미륵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 몸이 달았음을 물론이다. 동곡은 천기누설이라며 더 이상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런데 동곡도 천문을 완전히 해석하지는 못하였다.

“지난 과거사의 도수는 모두 찾았으나 미래 도수는 아직 불완전해.”

동곡은 그렇게 실토했다. 그리곤 얼마 안 있어 그가 돌연 이승을 떠나고 만 것이다. 따르던 도학들은 천기누설의 과보를 받은 것 아니냐며 돌아서 뒤숭숭해 했다. 스승의 허무한 죽음으로 천문은 완전히 해독되지 못한 채 신성불가침 영역으로 영원히 묻힐 찰나였다.
그러나 완전히 베일에 싸인 건 아니었다. 실마리는 남아 있었다. 임종 직전 동곡은 도학들 중에 가장 총명한 용화를 불렀던 것이다. 용화만 남기고 주위를 물리치고는 아무도 듣지 못하게 귓속말로 비결을 전했다.

“그 책의 13쪽에 도수를 적어 놓았네. 그런데 내가 풀지 못한 게 하나 있어. 세상을 구할 미륵의 도수지. 생년월일이 몇 군데 나오는 데, 어떤 것인지 모르겠어. 증산 상제님께서는 분명히 구체적으로 명시해놓으셨을 텐데….”

동곡은 그 말만 남기고 그렇게 홀연히 먼 길을 떠나고 말았다.
동곡 스승을 미륵의 현신으로 믿고 따르던 도학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한동안 혼돈 속을 헤매던 용화는 마침내 스승의 유지를 받들기로 결심했다. 용화는 스승이 남겨 놓은 비결 연구서 풀이를 꼼꼼히 챙겼다. 증산계통의 종교 관련자들을 찾아다니면서 떠돌던 현무경 24장을 모두 구해 자료를 보충하며 스승의 연구를 보다 체계화시키기 시작했다.

방등계단 한시를 더듬던 용화가 갑자기 휘청거렸다. 돌벽을 짚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썩은 고목처럼 고꾸라졌을 것이다.
사실 그의 몸은 정상이 아니었다. 몇 해 전만 해도 천기(天氣)수련을 통해 10리를 5분 안에 주파하는 축지 걸음을 자랑했던 철각(鐵脚)이었다. 하지만 올 초부터 현기증으로 몇 번이나 혼절하고 말았다.
양방의원에서는 심한 당뇨라고 했고, 한의사는 기가 너무 머리로 상승한 상기병(上氣病)이라는 진맥결과를 내놓았다. 현무경 연구에 너무 골몰한 탓이었다.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 너무 쇠약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증산의 유언을 전할 자를 더욱 더 찾고 있었는지 모른다. 하루빨리 큰 짐을 덜고 싶어서였다.
용화는 밤새도록 방등계단을 수십 번 돌며 모종의 계시를 기다렸지만 돌종은 무심하기만 했다. 그러던 중 문득 한 생각이 스쳤다.

‘천문을 실행에 옮길 시기가 되었다는 계시가 아닐까?’

사실 용화가 오랫동안 주시해온 인물이 한명 있었다. 세간에 ‘차법사’라 불리는 사내였다. 과연 그 인물이 자신이 점찍은 그 인물인지 확인하고 싶어졌다. 차법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용화는 그를 직접 만나보기로 했다.


증산이 남긴 유서-1

서울 동쪽 송파에 자리 잡은 상가 2층의 조그만 선원. 그 옛날 한강을 정비하기 전 송파는 갈대가 숲으로 둘러싸이고 배가 드나들던 나루터였다.
그날은 차법사가 일반인들에게 인생 상담을 해주는 날이었다. 법당의 법단 중앙에 비로자나 불상이, 옆에는 지장보살 석상이 모셔져 있고 천장에는 짙은 연분홍색 연등이 산딸기처럼 매달려 있었다.
60여명이나 되는 면담 신청자들이 앉아 있었다. 하나같이 삶의 고뇌에 찌든 처절한 표정이었다. 그들은 마지막 한 줄기 희망을 걸고 차법사를 찾은 사람들이었다.
예불 스님이 나오더니 공손하게 양해를 구했다.

“법사님께서 오늘따라 조금 늦으십니다. 죄송한 말씀 드립니다. 곧 도착한다는 전갈이 왔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주십시오.”

용화도 그들 사이에 앉아 있었다. 용화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오만상을 찌푸린 인생 낙오자 같은 사람들 사이에 끼여 있으니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사실 처음부터 실망이었다. 차법사와 만나기 위해 면담을 신청한 지 몇 주가 지나서야 기별을 받았고, 오는 내내 매캐한 자동차 매연으로 목이 칼칼했다. 게다가 이 사람 저 사람 어깨에 부딪히며 길을 헤쳐 도착한 선원을 보자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고즈넉한 암자는 아니더라도 소나무가 청청한 넓은 마당쯤은 기대했는데, 빌라가 밀집한 답답한 건물상가라니.
도대체 이런 갑갑한 도심 한복판에서 차법사란 자는 무얼 하겠다는 말인가. 과연 천문을 받을 만한 인물인가. 마음이 어지러웠다. 용화는 물끄러미 불상을 바라보았다.

용화가 차법사를 점찍은 건 2004년 봄 정읍의 ‘제령봉(帝令峰) 서기(瑞氣)’ 사건 때문이었다.
당시 용화는 동곡 스승이 남겨준 현무경의 도수풀이가 더 이상 진척이 없었다. 현생에 출세한 미륵의 도수가 잡힐 듯 잡힐 듯하면서도 마지막 순간에 까마득한 낭떠러지로 헛디디는 느낌이었다.
그러던 중 증산의 친필 유훈과 진본 현무경이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현무경(玄武經)은 증산이 천지공사를 보면서 직접 그렸다고 알려진 시화(詩畵)다.
많은 사람들이 그 안에 숨은 비밀을 풀기 위해 공부했다. 동곡 스승처럼 평생을 바쳐 현무경 사본을 연구한 이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