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

김영수 장편소설 제 3회 / 일러스트 나은진

2010-09-17      기자

1장. 예언자

예언자를 찾아라-3

“신종 플루 소식입니다. 전염속도가 엄청납니다. 벌써 미 대륙에서만 1000명이 넘게 사망했습니다. 이번 신종 플루는 조류독감이나 사스와 달리 그 기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지부장들의 보고를 종합해보면 올 겨울에 전 세계를 강타한다고 합니다.”
“인류의 대재앙인 병겁(病劫)이 시작된 게야. 할 일은 많은데 내가 이렇게 누워 있으니. 총재자리를 물려주겠다는데도 아들놈은 나타나지도 않고….”

윤총재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세계 최대의 조직망을 자랑하는 종교 교단이었지만, 후계자 문제에서 삐걱대기 시작했다.
윤총재가 세상을 뜨면 그 주변의 즐비한 유수한 석학들을 통제할 만한 강한 카리스마를 가진 후계자가 없었다.
결국 아들을 옹립했으나, 부자세습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그저 윤총재의 눈치를 보며 면종복배하고 있을 뿐 사오분열이 불 보듯 뻔했다.

“아드님은 오늘 외부인사와 만찬이 있어 행사준비중이라고 합니다.”
“미덥지 못해… 유실장, 솔직히 말해보자구. 내가 없어도 신도들이 그 놈을 따르겠나? 당신도 내 아들을 나만큼 믿겠냔 말이야, 유실장?”
“에, 뭐 잘 하시겠죠.”
“여우같은 늙은이들이 득실득실한데, 새파란 놈이 어떻게 견디어내겠어, 쿨럭. 적어도 천지 도수(度數)를 넘나들고 설계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해, 쿨럭.”

윤총재는 기침을 진정하고 눈을 지그시 감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유실장, 그가 필요해. 그에겐 연락이 없는가? 쿨럭.”
“저, 누구를 말씀하시는 건지?”
“어허, 숭례문 예언 몰라?”
“네? 숭례문이요…….”
“숭례문 화재 때 그 사람 칼럼 스크랩하라고 했잖아. 뭐가 쭉정이고 알맹이인지 구별도 못하나!”
“아!”

윤총재는 주섬주섬 노트북을 뒤지는 유실장을 못마땅한 듯 노기 띤 눈으로 쳐다보았다.

“거기 줄쳐 놓은 거 읽어봐.”
“무자년이 시작하는 설날연휴 마지막 날 600년간 서울의 화기를 막아오던 숭례문이 연소된 사실은 불길하다. 서울의 화기(火氣)를 막을 수 없다. 화기라 함은 작게는 화재요, 크게는 전쟁이다. 나는 숭례문 앞에서 불길한 예감이 맞지 않기만을 영계에 기도했다.”
“그리고는 바로 광우병 광화문 촛불 시위가 있었지.”
“네, 그렇습니다.”
“이제 화기는 하나 남았어.”
“…….”
“전쟁!”
“네?”
“촛불 화재는 지나갔으니 전화(戰火)뿐이 더 남았겠어.”
“…….”
“검증하는 것도 좋지만, 늦으면 안 돼. 반드시 우리 사람 만들어. 이게 내 마지막 유언이야, 쿨럭 쿨럭.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 쿨럭.”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 지금 어디 있나? 요즘 뭐해? 예전에 검증해본다고 시간을 달라고 하지 않았나. 쿨럭.”
“예, 사람을 하나 보냈습니다.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유실장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마친 유실장이 즉시 보고했다.

“총재님, 그는 이탈리아에 있답니다.”
“이탈리아? 왜?”

이탈리아의 북동부 ‘피에베 디 솔리고’시. 베니스에서 1시간 떨어진 평온한 도시다. 하지만 심심한 전원도시가 아니었다. 베니스가 상업의 도시라면 피에베 디 솔리고는 예술의 도시였다.
십자군 전쟁의 길목이었던 이 시의 베니스 상인들과 피렌체 수공업자들은 엄청난 유럽의 부를 축적했고, 이 자본은 르네상스를 촉발시켰다. 예술가들은 풍광 좋은 ‘피에베 디 솔리고’에 거주하면서 베니스로 공연을 떠났다.
그래서일까. 스트라빈스키, 디아길레프, 에즈라 파운드, 루이지 노노를 비롯해 유명한 음악가들의 마지막 귀향지도 이곳이었다.
젊은 예술가들은 그들이 묻힌 묘지에 추모의 시들지 않는 꽃을 바치며 예술혼을 기렸고, 이곳은 슬금슬금 예술가들의 성지가 되어 갔다. 국립음악대학교가 유서 깊은 이 고장에 위치한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차법사는 그런 피에베 디 솔리고에 머물고 있었다. 그가 이 도시를 찾은 이유는 표면상으론 창작 오페라 ‘카르마’의 갈라 콘서트 공연계획 때문이었다.
차법사가 작시한 아리아 몇 곡이 우연히 이곳 국립음악대 교수에게 알려졌다. 그들은 동양의 해탈적 사랑과 한국의 전통적인 정서인 정(情), 한(恨)에 매료되어 자발적으로 작시의 해설서를 만들고 한국어로 노래를 부르는 갈라 콘서트 형식의 음악회를 마련하고자 했던 것이다. 오페라의 종주국에서 콧대 높은 이탈리아 성악가들이 한국어로 노래 부르는 일은 처음이었다.
하늘은 지중해처럼 푸르고 날씨는 화창했다. 차법사가 먼저 향한 곳은 행사가 열리는 시립극장이 아니었다. 시의 참전묘지였다. 차법사 자신도 왜 발길이 그곳으로 향하는지 궁금했다.
이 고장은 예술의 도시이기도 하지만 1, 2차 대전 중에 가장 참혹했던 격전지 중의 하나였다. 시의 중심가를 흐르는 강 전체가 붉은 피로 물들어 ‘피의 강’이었다. 헤밍웨이가 참전하여 작품 ‘무기여 잘 있거라’의 무대이기도 했다.
미국 9·11 위령제, 북해도의 일제 강제징용 한인희생자 위령제, 백두산 대동위령제를 지낸 적이 있던 차법사였지만 음악회로 피에베 디 솔리고에 온 것 자체가 의외였다. 그러나 묘한 인연의 고리가 드러나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조용한 묘지에 들어선 차법사는 번개를 맞은 듯 한동안 꼼짝할 수 없었다. 둥근 원통으로 조성된 하나의 석상 묘지 위에 나부끼는 깃발 때문이었다.
이탈리아뿐 아니라 헝가리, 독일, 체코,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벨기에 등 전쟁 당시 적국이 포함된 10여개의 깃발이 나란히 나부끼고 있었다.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참전자 모두를 함께 묻어 추모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였다. 차법사 묘지 입구에 서 있는 낯익은 인물의 등장에 얼음처럼 굳어졌다.
그는 다름 아닌 차법사의 선친인 故 차혁일 총경이었다. 말끔한 군복에 비스듬하게 철모를 쓴 차총경은 빙긋이 미소 지었다.
차법사는 깜짝 놀랐다. 영가로서 종종 대화를 나누기는 했지만 이처럼 이탈리아에서 만날 줄이야. 그는 다른 일행들의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직 차법사의 눈에만 보이는 장면이었다.
차총경은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을 사살하며 6·25의 긴긴 전쟁을 마감했다. 정부에서는 창경원에 이현상의 시신을 행인들에게 전시하였다. 유가족조차 빨치산의 시신을 거두길 꺼린 적장의 시신을 차총경은 거의 탈취에 가깝게 운구하여 섬진강가에서 정중히 화장시켜주었다.
관계자가 이 사실을 문제 삼자 차총경은 ‘당신은 죽어서도 좌익이고 우익을 하면서 총질을 할 참인가!’라며 호통을 쳤다.
물론 이 사건으로 차총경은 상부에서 전공(戰功)을 깎이는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했다.
사사건건 남북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한반도 상황에서 죽어서는 아군과 적군이 없다는 피에베 디 솔리고의 참전묘지의 의미는 무엇일까.

‘위대한 예술은 가슴 아픈 시간과 현장의 뒤안길에서 탄생한다.’
허공에서 차총경의 음성이 들렸다. 물론 차법사에게만 들리는 소리였다. 영가는 그 말만 남기고 희미하게 사라졌다.
차법사는 모든 의문이 풀렸다. 이탈리아의 피에베 디 솔리고가 왜 예술의 도시가 되었는지, 왜 이곳에까지 오게 되었는지. 피비린내 나는 전쟁 중에서도 가극을 공연하고 영화를 만들고 고찰을 수호했던 문화경찰인 선친은 어느새 보이지 않는 가이드가 되어 이탈리아 곳곳에 차법사 일행을 안내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2장. 천지 도수(天地 度數)

석종(石鐘)으로 떨어진 용-1

짙은 초록으로 무성한 모악산 금산사. 석양에 쫓긴 산 그림자가 스멀스멀 금산사 앞마당으로 기어들어오고 있었다. 푸른 산과 붉은 석양, 검은 그림자가 경합하는 금산사 허공은 보랏빛 안개로 팽팽했다.
황금빛 석양으로 번뜩이는 웅장한 3층 미륵전은 삼매에 빠진 듯 고요했다. 미륵전 북쪽에 높게 위치한 평평한 방등계단(方等戒檀)도 말이 없었다.
몇 시간째 방등계단 주위를 탑돌이하고 있는 중년의 사내가 있었다. 긴 머리를 뒤로 묶고 개량한복 차림을 한 사내는 한눈에 봐도 선골(仙骨)의 기풍이 휘날렸다. 사내는 혼자 중얼거렸다.

“때가 되었나이까?”

평소 같으면 당연히 미륵전의 삼존불부터 친견했을 테지만, 오늘은 미륵불은 외면한 채, 단숨에 방등계단부터 찾은 사내였다. 간밤의 꿈 탓이었다.
푸른색의 용 한 마리가 하늘에서 유성처럼 떨어지더니 방등계단 중앙의 석종(石鐘) 속으로 쑥 들어가 버리는 게 아닌가. 그리고 돌종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울리기 시작했다. 산을 뒤흔드는 호랑이의 포효 같았다.
이상했다. 금산사의 백미는 미륵삼존불이 모셔진 미륵전 아닌가. 많은 예언가들이 앞으로 도래할 새로운 선경세계를 이끌 인물을 예언하며 가리킨 곳도 바로 미륵불이었다. 그런데 용이 떨어진 곳은 미륵전이 아니었다.

‘기이하다. 왜 하필 방등계단일까? 왜 미륵전을 비껴갔을까? 길몽인가, 흉몽인가?’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