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밸리 제 89회
2009-11-24 기자
오원수 사범은 도복 앞자락을 손으로 잡아당기며 김병식 일병에게 다가갔다. 키다리 일병은 오기가 나서 ‘새끼, 니가 운동을 했으면 얼마나 했나’ 하고 대련 자세를 취했다.
김병식 일병이 연속 발차기 동작으로 공격 해 오자 오원수 사범은 유연한 동작으로 거칠게 들어오는 상대방의 발길을 가볍게 피하며 왼쪽 발을 받아 차듯이 쭉 뻗었다. 그리고 멈칫하는 순간 잽싸게 돌아서며 오른쪽 발이 전광석화와 같이 상대방의 얼굴로 날아갔다.
파악!
“욱!”
태권도 공인 4단인 통신대 김병식 일병은 단 일격에 얼굴이 수박 깨어지듯 퍼석 소리를 내면 나가 떨어졌다. 하얀 이빨이 옥수수 낟알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오원수 사범의 기술은 정말 뽐낼 만 했다. 이 열 횡대로 정렬해 있던 열아홉 명의 입소 생들은 모두 바싹 얼어붙었다.
“다음은 너!”
“저요?”
“그래 임마, 너 말이야.”
공병 중대 목상수 병장이 이판 사판으로 대련 자세를 취하며 돌려차기로 선제공격을 시작했다. 궁지에 몰린 쥐가 사력을 다해 고양이를 공격을 하는 것이다. 목상수 병장의 공격 솜씨는 일품이었다. 공격 후 착지 시, 몸의 중심이 흩어지게 마련인데 왼발이 착지하는 순간, 어느새 오른쪽 발이 연속적으로 상대방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고단자만이 할 수 있는 몸놀림이었다. 목상수 병장의 동작은 돌고래가 물을 가지고 놀리듯 부드럽고 힘이 있었다.
그러나 오원수 사범은 몇 번 발을 주고받다가 원숭이처럼 유연한 동작으로 스텝을 바꾸며 “싸아!” 하는 소리와 함께 눈 깜짝 할 사이에 상대방의 목을 차 버렸다. 목상수 병장은 “캑!” 하는 괴상한 소리를 내며 창문가에 나가 떨어졌다. 그리고 간질병 환자처럼 온 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발작을 하기 시작했다. 당일 입교한 열아홉 명이 모두 입소 신고라는 명분하에 이렇게 얻어맞았다.
오원수 사범 뒤에는 체중 130Kg의 고릴라 같이 생긴 병장이 거만한 자세로 팔짱을 끼고 입소생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교육관 창문가에는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붙이고 선풍기 바람에 땀을 시키며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앉아 있는 사내가 있었다. 그는 이곳의 관장인 준위 이태수였다. 그는 손으로 발바닥을 쓰다듬으며 처음부터 이 소동을 합법적인 구타 인양 못 본 척하고 앉아 있었다.
“마지막으로 하사, 어이 하사! 너 일로 나와.”
오원수 사범이 김이수 하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그는 깜짝 놀라 등 뒤를 돌아보았다.
“너 말이야 임마, 하사가 왜 이렇게 빌빌해.”
“저 말입니까?”
“그래, 너 말고 또 누가 있나?”
한쪽 구석에 모여 서 있던 입소생들은 김이수 하사가 하는 짓이 너무 처량해서 킥킥거리며 웃음보를 터트렸다. 험악한 인상으로 노려보고 있던 오원수 사범도 하사가 하는 짓이 너무 황당하고 엉뚱해서 쿡쿡 거리며 웃음을 참았다. 그런데 갑자기 하사는 무슨 마음이 들어선 인지 뽀르르 쫓아 나와
“아이쿠 성님!”
하고 상병의 바짓가랑이를 두 팔로 껴안고 넓죽이 엎드렸다. 마치 사지를 뻗은 개구리처럼….
“성님, 살리 주이소! 제발 살리 주이소”
“뭐야 임마, 어-허허헛….”
오원수 사범은 하사의 느닷없는 행동에 웃음을 터트리며 실 컨 비웃었다. 그는 이 말랑깽이 하사를 마음껏 농락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똥개는 미리 겁을 잔뜩 집어먹고 자기 발로 항복을 한 것이다. 그는 파월되기 전에 전방 G .P에 있을 때 그곳 하사에게 된통 으로 당한 일이 있었다. 그래서 하사 계급이라면 이를 북북 갈았다.
“임마, 하사 체면이 있지. 빨리 일어나라, 차려!”
“때리려고요? 몬 일어 나겠심더. 성님, 제발 살리 주이소.”
“차려!”
“아이고 성님요, 와 이래십니꺼. 지는 요, 포대장님이 여게 가면 특과라 캐서 왔심더. 정글 속에서 기다가 죽는 것보다는 안낫겠나 시퍼 왔심더. 제발 살리 주이소, 성님! 엉-엉.-엉…”
하사는 꿇어앉아 두 손으로 싹싹 빌며 넓죽이 큰절까지 하며 울음보를 터트렸다.
“야, 너 몇 단이냐?”
오원수 사범은 교만한 자세로 물었다.
“태권도 ‘태’ 자도 모릅니더, 그저 여기 가면 좋다케서 포대장님께 맥주 사주고 왔심더. 지는 운동에 맹탕이라예, 괜히 포대장님한테 속아서 온거라예. 지는 부대로 돌아 갈람니더.”
오원수 사범은 기가 차서 창가에서 선풍기 바람을 쐬고 있는 이태수 관장을 힐끗 쳐다보았다.
‘새끼는 맹물이다, 그냥 둬라.’
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사인을 보내왔다.
“꺼져 새꺄!”
오원수 사범은 가볍게 앞차기로 하사를 걷어 차 버렸다. 그런데 말랑깽이 하사는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발길질을 벗어나 버렸다.
‘재수 없는 자식.’
사범은 갑자기 자존심이 팍 상해 버렸다. 맹물 하사가 한 방에 뒤로 벌렁 나가 떨어졌더라면 그냥 봐주려고 했는데 이게 겁 대가리도 없이 피해? 독사처럼 약이 오른 사범은 천천히 자세를 바꾸다가 갑자기 돌아서며 전력을 다해 차 버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말라깽이 하사는 어느새 오원수 사범의 등허리를 두 팔로 껴안고
“아이쿠, 할배요! 와 이래 십니꺼? 지가 뭐를 잘 몬 했습니꺼. 살리 주이소, 엉엉엉…”
하고 교육관이 떠나가도록 큰소리로 울어 됐다.
‘뭐야 임마, 이 새끼가 겁대가리 없이 관장 앞에서 두 번씩이나 피해? 쪽 팔리게.’
오원수 사범은 부끄럽고 창피했다. 더구나 관장 앞에서 맹물 하나도 처리 못하면서 어떻게 사범 노릇을 하겠는가? 그는 비장의 특기인 돌려차기로 혼신을 다해 공격을 했다.
‘넌 임마, 끝장이야. 죽지는 않아도 병신은 될 거야.’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