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 성 풍속사 <제45화>

기녀(妓女)가 달리 기녀이랴!

2007-12-20      기자
조선중기 때 문신 홍만종(洪萬宗)의 한문 민담집 명엽지해(蓂葉志諧)의 여러 이야기 중 기녀의 생활습성에 관한 씁쓸한 얘기
가 있어 소개코자 한다.

예나 지금이나 몸 파는 계집의 말은 절대 믿지 말라했다. 사뭇 사내들이란 계집이 엉겨 붙어 코맹맹이 소리로 아양을 떨고 봉긋한 가슴을 출렁이며 사내의 양물(陽物)을 자극시켜 올 때면 아무리 사리분별이 뛰어나고 냉철해도 허물거리는 육체는 계집의 품을 파고들게 된다. 연신 뚫린 입으로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게 되며 그 계집의 노예가 되어버린다. 그렇다면 그 계집은 정녕 자신에게 빠져버린 사내를 사랑할까?

여색탐닉(女色耽溺)에 능한 최생(崔生)이란 선비가 있었다.

최생의 아버지가 함흥 통판(通判)장관의 민정을 보좌하는 벼슬아치로 부임할 때 그는 일도 배우고 공부도 할 겸 따라가게 되었다.

함흥 일대에는 사내의 정기를 빨아먹고 산다고 소문난 자란(紫蘭)이란 기생이 있었다. 자란은 자주 빛이 맴도는 난초를 닮아 사내들의 감정을 묘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최생은 자란을 보자 한눈에 반해 침혹의 경지에 빠지게 되었다.

최생은 주야장천(晝夜長川) 자란의 치마폭에 빠져 허우적이며 자란의 흑곡을 타고 흐르는 이슬을 핥아 목을 축였고 자란이 씹다 뱉어낸 고기로 배를 채웠다.

자란이 미끈한 두 다리를 쩍 벌리고 흑곡의 이슬이 골을 타고 옅은 시냇물처럼 흘러내리면 최생은 부풀어 오르고 단단하게 굳은 양물을 옹달샘 깊이 찔러 넣었다.

“아~ 서방님의 그것은 그 어떤 사내들의 그것보다 절 충만하게 만든답니다. 아아~”

자란이 최생의 귀에 속삭이자 그는 마치 개선문을 들어서는 백만대군의 총사령처럼 의기양양하게 옹달샘의 물을 말려버릴 것처럼 수 없이 찔러 댔다.

그럴 때면 자란의 간드러진 신음은 가야금의 선율처럼 장단의 고저에 맞춰 최생의 귀를 자극하고 몸을 녹였다.

춘삼월의 꽃향기도 한철이라 최생의 아버지가 조정의 부름을 받고 한양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어 최생과 자란은 뜻하지 않은 생이별을 하게 되었다.

달빛에 눈물짓는 자란의 얼굴은 몹시도 곱고 눈물이 타고 흐르는 뺨은 보드라웠다.

최생이 자란의 봉긋한 가슴을 만지며 혀끝으로 눈물을 닦았다.

“한 번 하직하면 다시금 만날 기회가 없을 성싶으니 원컨대 서방님의 신변에 가장 중요한 물건 하나를 선사하시어 서로 잊지 않을 정표로 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자란이 최생의 손목을 어루만지며 흐느껴 울었다.

“눈물짓지 말거라. 내 오늘 너와 이렇게 이별한들 널 어찌 잊겠느냐. 내 깊이 정진하고 공부하여 훗날 너를 다시 찾을 것이다.
다시 만날 때까지 내 이빨을 뽑아 내 마음의 정표로 너에게 줄 터이니 그만 눈물을 거두어라.”

최생은 곧 이빨 하나를 빼어 자란에게 주고는 멀고도 아쉬운 길을 떠났다.

함경도를 벗어나 강원도 어디에 이르러 길가 버드나무 그늘 밑에서 말을 먹이고 남겨두고 떠나야했던 자란 생각에 눈물짓던 순간이었다.

이윽고 곱게 생긴 한 청년이 그 곳에 이르자 눈물을 뿌리며 훌쩍거리는 것이었다.

또 다시 한 젊은 종놈이 그 뒤를 이어 버드나무 아래에 이르자 역시 눈물을 짓는 것이었다.

‘참으로 괴이할세. 어찌 이 나무아래를 지나는 사내들이 눈물을 짓는 것이며 하나 같이 버러진 입속엔 이빨이 빠져있는 것인가? 참으로 이상타!’

최생은 마음속으로 이상하게 여기며 그들을 한참동안 살폈다.

“너희들은 무슨 이유로 우는 것인가?” 최생이 물었다.

“저는 한양 재상가(宰相家)의 종입니다. 일찍이 대감마님을 모시고 함흥을 순시할 때 함흥기생을 사랑하여 가깝게 지낸지 오래였습니다. 그 기생이 통관아들의 꾐을 받았을 때도 오히려 옛 정을 잊지 못하여 틈나는 대로 만나 정을 통하여 왔는데, 지금
은 감사의 아들이 기생과 사랑에 빠져 감금하여 내어 보내지 않아 희망이 뚝 끊긴 제 심정이 너무도 원통하여 우는 것입니다.”

젊은 종이 눈물을 글썽이며 대답했다.

“저는 기생에게 많은 재물을 먹여 밤낮 가리지 않고 만나 서로의 애욕을 채웠고 정 또한 도타왔습니다. 이제 통관댁 도령이 한양으로 돌아갔으니 제가 독점하여 맘껏 즐기려 하였는데 어찌 감사의 아들이 또 기생을 사랑하게 될 줄 알았겠습니까? 그 감사의 아들은 욕심이 많은 자로 기생이 행여나 딴 사람을 만날까 싶어 자기 집에 감금하였고 병졸들로 하여금 기생을 감시케 하여 다시금 만나기란 절망적이었습니다. 분하고 원통하여 심장이 벅차오르는데 도련님께서 눈물지으시니 저절로 슬픈 느낌이 들어 눈물이 어리는 줄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중인청년이 하늘을 보며 대답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일세. 어쩔 수 없이 정인과 헤어져야하는 자네들과 내 마음이 어찌 틀리다 말할 수 있겠는가. 참으로 동병상련(同病相憐)일세 그려. 근데 그 기생의 이름이 무엇인가?”

“자란입니다.” 두 사람이 동시에 대답했다.

“자란!” 최생이 놀라며 이름을 뱉었다.

세 사람은 서로의 눈을 피하며 아무 말이 없었다.

“내 그것에게 속은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원통하기 그지없지만 후회한들 무엇하리요. 이제라도 그 천한 것의 마음을 알았으니 다행인데...”

최생이 혼잣말처럼 말을 뱉다 말끝을 흐리며 따르던 종놈에게 명하여 자란에게 가서 자신의 이빨을 도로 찾아오게 했다.

종놈이 자란에게 가니 자란은 문지방 너머에서 들기도 힘든 포대자루를 던졌다.

“네 상전의 이빨을 어찌 내가 알 수 있겠느냐. 네 멋대로 골라 아무거나 가져가려무나. 호호호” 자란이 재밌는 듯 웃음을 지었다.

종이 다가서서 보니 포대자루 속을 들여다보니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이빨이 거의 서너 말 가량이나 되는 것이었다.

종은 아무 이빨이나 하나 주워들고 웃으면서 물러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