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性 風俗史(성 풍속사)

2007-08-09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요사스러운 계집에게 당해 가산을 탕진하거나 명예를 실추해 웃음거리가 되는 사내들의 얘기는 무궁무진하다. 이 시대에도 요녀의 치마폭에서 놀아나다 모든 것을 잃고 거리를 헤매고 있는 사내들이 적지 않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요녀에겐 대관절 무엇이 있관데, 사내들이 그토록 요녀에게 빠져들고, 한번 빠져들면 쉽게 헤어나지 못하고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 조선조의 설화들을 통해 그 경각심을 일깨우고자 소개한다.

조선 초 한양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평양기방의 기생 목란(牧丹)은 비상한 재주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출중한 용모 때문에 한양기방으로 요즘말로해서 스카우트되어 왔다. 목란의 스카우트 조건은 출퇴근용 전용 가마와 개인몸종 그리고 별도의 거주가옥을 제공받는 조건이었다. 지금이나 그 당시나 참으로 파격적인 조건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러한 대접을 받는 최고의 기생이었기에 목란은 더더욱 재물에 탐닉했고 목표로 정한 인사(人士)가 가진 재물을 모두 탕진할 때까지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진액을 빨아댔다.

목란의 소문이 화류계(花柳界)를 뒤덮던 어느 날이었다. 시골의 한 선비가 중앙관청의 말단 벼슬을 얻어 홀로 상경하여 목란과 이웃하며 살게 되었다. 시골선비는 처가의 도움으로 많은 재물을 지니고 있었는데, 목란이 여러 날을 살피니 옷을 차려입은 품새를 보아 분명 재물이 많을 것임을 알아차렸다. 하루는 목란이 선녀처럼 꾸미고 선비 집에 슬쩍 들러, 선비와 우연인양 마주하게 되었다.

“부인께오선 뉘시온데, 누추한 곳을 찾으셨습니까?” 선비가 목란의 출중한 용모에 넋을 잃고 정중하게 물었다.
“호호호” 간드러진 목란의 웃음에 선비는 자신도 모르게 빙긋이 따라 웃었다.
“소녀, 존귀한 분께서 사시는 줄 모르고 잘못 들렀구먼요.” 목란이 보조개를 머금은 미소를 지으며 과장하여 말하곤 문을 나서 돌아갔다.

선비는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걷는 요염한 목란의 뒤태를 쳐다보며 한동안 그 자리에 못 박혔고 그날 밤 목란의 자태가 아른거려 쉬이 잠들지 못했다. 이튿날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선비는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하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선비님 계십니까?” 선비의 귓가를 속삭이는 달콤한 선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이 아리따운 목소리는!’ 눈을 번쩍 뜨며 일어난 선비는 목란의 뜻하지 않은 방문에 놀라웠고 당황스러웠으나 내심 깊은 곳에서 뻣뻣이 고개 드는 춘심을 느꼈다.
“선비님 안에 계십니까?” 목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선비는 헛기침을 두어번 하고 잠시 기다려 달라 말하곤 의관을 갖추었다.방문 밖으로 나서니 햇살에 눈부신지 목란의 자태에 눈부신지 알 수 없었고, 어안이 벙벙하고 사지가 풀려 제대로 서있기조차 힘들었다.
“부인께오서 어쩐 일이신지요?” 선비가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선비님께 어제의 결례도 있고, 남편이 변방으로 나가 혼자 지내는데, 선비님께옵서도 혼자이시니 외로울 것 같아 서로 위로하러 왔습니다.” 목란이 수줍게 말했다.
“누추하지만 안으로 드시지요.”

선비를 따라 방안으로 들어온 목란은 준비해간 좋은 음식으로 술상을 차려 선비에게 권했다. 술잔이 오가고 몸이 닳아 오르니, 자연스레 두 사람의 경계도 허물어져 오랜 친구마냥 대하게 되었다. 술기운을 이기지 못하는 척 흐느적거리며 겉옷을 벗어던지는 목란의 교태에 선비는 달려들 수밖에 없었다. 선비의 손끝이 목란의 깊은 골짜기를 파고들 때마다 목란은 몸을 부르르 떨며 교성을 질렀다.

부풀어 오른 옥경을 찔러 넣으려하니, 목란은 앙탈을 부리며 선비의 오감을 더더욱 자극했다. 그렇게 밤은 깊어갔고 방사(房事)중에 발휘하는 목란의 비상한 재주는 선비의 음희(淫戱)를 극대화시켰고 평생토록 잊을 수 없는 황홀경을 경험토록 했다. 선비는 날이 밝기가 무섭게 모든 짐을 목란의 집으로 옮겼다. 선비는 한시라도 목란과 떨어질 수 없어 관청에 사직원을 내고 방안에 들어앉아 목란의 육체만을 탐닉했다.

며칠 후 목란이 출타하였다 돌아와 선비에게 말하기를,
“이웃 친구의 남편은 금비녀와 비단옷을 사줘, 친구가 좋아하며 자랑하니 매우 부럽습니다” 라고 하며 우울해했다.
“내 어여쁜 당신에게 못 사줄게 뭐 있겠는가, 내 자네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사줄 터이니 우울해하지 말라”하고 선비가 위로하니 목란이 달려들며 온갖 아양을 다 부렸다.
그리고 며칠 후, 구름무늬 비단을 파는 비단장수가 왔다.

목란이 맘에 들어하기에 선비가 자신의 남은 돈을 모조리 털어 그 비단을 사주려하니, 목란은 거짓으로 사양하는 척했다. 선비가 오히려 화를 내며 기어이 그 비단을 모두 사 주었다. 그날 밤 선비가 잠시 나갔다들어오니, 목란과 계집종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이상타 여겨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목란의 모든 짐은 사라지고 방안엔 선비의 도포 한 벌만 걸려 있어 휑했다.

이웃집 사람의 얘기를 듣고서야 선비는 비로소 목란의 술책에 당해 모든 재물을 빼앗긴 것을 깨닫고 배신감에 치를 떨며 목란을 찾아 기방으로 향했다. 선비는 목란을 만나기는커녕 번번이 기방의 건장한 하인들에게 문전박대 당했다. 그렇게 여러 날을 기다려 여러 기생들과 어울려 나오는 목란을 보곤 곧바로 몽둥이를 들고 달려들었다.
“이 요귀(妖鬼)야, 내가 사준 모든 물건을 내놓아라.” 선비가 소리쳤다.
목란은 크게 웃으며 기생들을 불렀다. 이내 기방의 기생들과 지나던 행인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얘들아, 기생에게 사준 물건을 도로 찾으러 온 바보 놈이 있으니 실컷 구경해.” 목란이 비웃으며 모욕을 주자 모였던 모든 사람들이 웃으며 손가락질했다.

선비는 부끄러워 목란을 어찌하지 못하고 사람들 사이로 허겁지겁 도망쳤다. 그 뒤 선비는 거지가 되어 문전걸식하며 처가를 찾아갔으나 소문을 들은 처가에서 욕만 먹고 쫓겨났다. 선비는 온 마을에 웃음거리가 되었다. 옛 성현이 이르기를 ‘사내가 여색을 밝히면 크게는 나라를 망치고 작게는 일신을 망치는 일이 많으니 항상 주의하고 주의하라’하였다.

중국 당기(唐期)의 문인 백거이(白居易)는 ‘인비목석개유정(人非木石皆有情)이니, 불여불우경성색(不如不遇傾城色)이로다’라고 읊었는데, 이 말은 사람이 목석이 아니어서 모두 정이란 것을 가졌으니, 미인을 만나지 않음이 가장 좋은 일이란 뜻이다. 이 설화를 읽고 계신 지금의 발기탱천(發起撑天)한 사내들이여, ‘난 아무리 뛰어난 미인일지라도 당하지 않는다!’라고 자만하지 말라. 사뭇 미색을 겸비한 계집이라 함은 요녀와 같으니 옛 성현의 말씀처럼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길 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