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성 풍속사 <제8화>

2007-03-29      
평양기생 해어화(解語花)

조선후기 순조와 헌종 때의 문신이었던 계서(溪西) 이희준(李羲準)이 지은 계서야담(溪西野談)은 역대 저명인사의 일화에서부터 한문소설이라고 일컬을 만한 이야기까지 폭넓게 수용하고 있다.

계서야담에 수록된 이야기 중, 조선 숙종부터 영조 때의 문신이었던 조태억(趙泰億:1675~1728, 글씨에 능했고, 새와 짐승의 그림을 잘 그렸으며, 영조 즉위의 반교문(頒敎文)을 작성한 인물)의 부인 심씨의 질투심에 관한 설화는 많은 야담집에 수록되어 전해지고 있다.

조공의 부인 심씨는 매우 질투가 심해, 묘령의 여인을 쳐다만 보아도 암팡스레 대들었기 때문에 조공이 감히 딴 여자를 가까이 하지 못했다. 사촌 형인 조태구(趙泰耉:1660~1723, 숙종과 경종 때의 문신으로 소론(少論)의 영수)가 평안 감사로 있을 때의 일이었다.

조공은 승지로서 왕명을 받들어 평양감영에 갔다가 환영연회에서 한 기생의 자색에 매료되고 말았다.

조태구가 조공의 내심을 알아차리고 기생의 천침을 받겠느냐고 넌지시 물으니, 조공은 머뭇거리며 말을 하지 못했다. 조태구 또한 아우 조공의 부인 심씨의 질투심이 유별난지 아는 터이라, 더 이상의 권유는 하지 않았다.

연회가 파하고 침소로 돌아가는 조공의 뒷모습이 어찌나 힘없고 쓸쓸해 보였던지, 조태구는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질 각오로 기생을 불러 조공의 침소에 천침을 들라 명하였다.

봉창으로 보름달은 밝게 떠올라 허전한 빈자리만 크게 비추고, 연회에서 보았던 기생의 자색이 조공의 머릿속을 회오리치며 주인 없는 베개만을 어루만지고 있을 때였다.

“영감, 벌써 침소에 드셨습니까?” 조공의 귓가로 옥구슬이 흐르듯 맑고 청아한 가냘픈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조공은 자신의 쓸데없는 사념이 만들어낸 소리라 여기고 이불을 끌어올려 덮으며 머리를 흔들었다.

“영감, 주무시면 소녀 그만 물러가겠나이다”라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을 때, 조공은 이불은 걷어차며 벌떡 일어나 단숨에 문으로 향하고 벌컥 문을 열었다.

“이 밤에 어쩐 일이냐?”라고 조공이 묻자 기생은 답 없이 문 앞에 서서 까르르 웃고만 있었다. “너 어찌 웃고만 있는 것이냐?”라고 조공이 언짢게 묻자,

“영감의 다급했을 마음을 떠올리니, 절로 웃음이 나옵니다”라고 기생이 대답했다.

“어째서 그러냐?” 조공이 냉랭한 태도로 다시 물었다.

“영감의 늠름한 그것이 소녀를 더욱 반기기에 그렇습니다”라고 다시 대답하자 그때서야 자신의 바지가 흘러내려 단단하게 굳은 음경이 껄떡대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흘러내린 바지를 추슬렀다.

이내 조공과 함께 침소로 들어온 기생은 좌정한 조공에게 절을 올리고 어지럽혀진 침구를 정리하고 겉옷을 벗고 속치마차림으로 조공 앞에 앉았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소녀 해어화라 하옵니다.”

“이 야심한 시각에 어쩐 일이냐?”하며 알면서도 조공이 물었다.

“소녀 감사의 명을 받아 영감의 천침을 들러 왔습니다”하고 살며시 눈웃음치며 해어화가 대답했다.

그 말을 듣고도 조공은 깊은 한숨만 내쉴 뿐 해어화와 호합하지 않았다.

감사에게 모든 얘기를 들은 해어화가 조공에게 감사의 언질을 전하자 비로소 희색이 만연하며 해어화를 안고 이불속으로 들었다.

조공은 부인이 아닌 여체를 처음으로 취하는지라 흥은 절로 나고 방사를 하였음에도 그것의 늠름함이 시들지 않으니, 그날 밤 조공은 해어화와
수없이 호합하고 세 번째 닭이 울고서야 잠이 들었다.

조공의 부인이 밀정을 통해 이 소식을 듣고 대로하며, 오빠를 뒤따르게 하고는 곧바로 차비(差備)를 차려 평양으로 떠났다.

소식을 들은 감사는 해어화를 당분간 피하도록 권했으나, 해어화는 몸치장 비용만 주면 나가서 조공의 부인을 만나겠다고 했다.

몇 번을 네가 죽을 수도 있다며 말려보았지만 해어화의 뜻이 완강해 비용을 마련해 주었다.

부인이 황주(黃州)를 통과할 때, 감사의 명을 받은 비장(裨將)이 마중 나가 문안드리고 음식을 대접하려 했으나 부인의 화만 더 돋을 뿐이었다. 그런데 부인일행이 재송원(裁松院)을 지나자 늦봄의 기운이 만연하여 십리의 장림은 녹수청산을 이루고, 이름 모를 새들은 아름답게 울어대며
마치 그림 속 경치를 보는 것 같아 부인의 마음에는 조금의 변화가 일었다.

장림을 벗어나니 한 줄기 맑은 강이 성곽을 안고 흐르는 것이 보이는데, 모래는 백옥처럼 희고 물은 거울처럼 맑았다.

부인이 넋을 잃고 경치에 취해 있는데, 멀리서 한 여자가 말을 타고 걸어왔다.

화려한 몸치장은 천상의 선녀와도 같았고, 말에서 내려 다가오는 걸음걸이는 마치 구름 위를 걷듯 가벼이 나는 것과 같았다.

부인은 풍경과 어우러진 기이한 모습에 넋을 잃고 바라만 보았다.

“기생 해어화 부인께 문안 올립니다” 하고 인사하자 부인이 그 기생임을 알아보고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고 자세히 해어화를 살피니, 살결은 희
고 보드라워 보였으며 가늘고 긴 자태는 수양버들처럼 간들거렸고 자색은 천하일색이라 부인은 속으로 찬탄하며 해어화의 나이를 물었다.
“소녀 열여섯입니다”하고 해어화가 대답했다.

“너 같은 절색을 보고 가까이하지 않는 사내가 있다면 그는 분명 졸부(拙夫)이다. 내 너를 죽이려고 여기까지 왔으나 지금 너를 보니 참으로 경국지색이구나. 설령 내가 남자라 하더라도 한 번 너를 보면 당연히 사랑할 생각을 품겠는데, 우리 영감인들 오죽했겠느냐, 내 지금 여기서 그냥 돌아가니, 너는 가서 영감님을 잘 받들거라, 하지만 우리 영감은 숫총각 같으니 지나치게 유혹해 병나게 하면 그땐, 내 너를 그냥 두지 않겠다”하고 돌아서 일행들과 가버렸다.

얘기를 들은 감사가 사람을 보내 감영에서 며칠 쉬어갈 것을 청하였으나 조공의 부인은 듣지 않고 그냥 돌아갔다.

감사가 해어화를 불러 도대체 어떤 재주로 호랑이 같은 부인의 화를 풀어지게 했느냐고 물으니 해어화는 “부인의 질투심을 연약한 제가 어찌 무마시키겠습니까? 오로지 곱게 꾸며 부인의 동정심만 바라고 죽을 각오로 가서 부인께 인사만 올렸습니다”하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감사는 더욱 기이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이 설화는 아무리 두렵고 무서운 것이라도 피하지 않고 맞설 수 있는 당당한 용기가 있다면 그 해결책은 분명히 나타난다고 하는 교훈적 의미를 담고 있다.